[글로벌 아이] 뉴로셸 어젠다
맨해튼에서 북동쪽으로 차를 타고 30분쯤 가면 뉴욕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인 뉴로셸과 만난다. 신교도 위그노를 지켜주던 낭트 칙령이 1685년 폐지되자 박해를 피해 프랑스 서부 라로셸을 떠난 이주민들이 정착한 곳이다. 세계적으로 120여 차례 제작된 영화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1912년 초기 개봉작 촬영지이기도 하다.
지난해 3월 10일 뉴욕 주 코로나19 감염자 170여 명 중 100명 이상이 뉴로셸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도심 유대교 회당에 다니던 50대 변호사가 슈퍼 전파자로 지목됐다. 회당 반경 1.6㎞ 내 학교와 교회 등 공공시설에 2주간 미국 내 첫 봉쇄 명령이 내려졌다. 뉴욕을 휩쓴 코로나 재앙의 서막이었다.
1년 남짓 만에 다시 찾은 뉴로셸은 코로나의 상흔이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시청사 앞 상가는 두어 곳 건너 한 곳씩 폐업 상태였다. 자영업을 한다는 로리 셰링턴 씨는 “지역 경제의 50~60%가 직격탄을 맞았다”고 허탈해했다. 그러나 “백신 접종으로 점차 나아지고 있다”며 “시간은 걸리겠지만,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희망을 보였다.
뉴욕 주민 중 백신을 한 번이라도 맞은 사람이 800만 명을 넘어섰다. 10명 중 4명꼴이다. 30% 가까이는 접종을 완료했다. 지난 1일부터는 해외 입국자를 빼곤 방문객에 대한 코로나 검사와 의무 격리 규정이 폐지됐다. 다음 달엔 뉴욕시 공무원 8만여 명이 재택근무를 끝내고 사무실로 복귀한다. 코로나 극복의 자신감이 담긴 상징적 조치들이다.
뉴욕발 희망의 이면에는 그러나 또 다른 어둠이 도사린다. 대낮에 맨해튼 도심에서 거구의 흑인 남성이 인종차별적 욕설을 내뱉으며 날린 발길질에 60대 아시아계 여성이 맥없이 나동그라지는 장면은 경악스럽다. 보고도 못 본 척 돌아서는 바로 앞 빌딩 보안요원들의 모습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런 봉변 소식은 한국계 여성 4명이 희생된 애틀랜타 총격 사건 이후 하루가 멀다고 전해진다.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인 3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종차별을 바이러스로 규정했다. 잽싸게 변이해가며 지구 공동체를 뿌리부터 좀먹고 있다는 진단이다. 잇단 아시아계 증오 범죄에 당국은 초비상이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와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 모두 역겹고 극악무도한 짓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하고 철저한 대응을 천명했다.
뉴로셸도 인종 정의 실현을 위한 4대 어젠다를 공표하고, 고위 공무원부터 반인종차별 교육을 받기로 했다. 악성 병균 앞에서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관건은 실천과 그 사회의 공감 능력이다.
임종주 워싱턴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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