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꼬인 매듭
고대 프리기아 왕국의 시골 농부였던 고르디우스와 그의 아들 미다스는 “테르미소스에 우마차를 타고 오는 자가 왕이 된다”는 전설에 따라 왕이 됐다. 이후 신전 기둥에 이들이 탄 우마차를 묶었는데,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왕이 된다는 전설이 생겼다.
세월이 흘러 알렉산드로스 3세는 매듭을 풀어보려 했으나 워낙 단단히 묶여 풀 수 없었다. 화가 난 그는 칼로 매듭을 단번에 잘라버렸다. 그는 왕이 됐고, 그의 해법은 현대에도 ‘난해한 문제를 해결한 대담한 방법’으로 표현됐다. 매듭을 풀지 않고 잘라버린 탓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사후 그의 제국은 여러 나라로 분열됐다.
최근 20대 남녀를 둘러싼 정치권의 해석을 보면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떠오른다. 여야는 이들이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보여준 복잡하게 꼬인 매듭 같은 표심을 단칼에 자르는 식의 해법을 내리고 있다. 20대 남녀를 갈라버리는 식이다.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이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해 나온 결과”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에서는 군가산점제 개헌, 여성 군사훈련제를 꺼냈다.
한 번이라도 매듭의 모양을 유심히 살펴본 걸까? 최근 20대 남녀와 함께 표심에 관해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다. 20대 남성은 “조국·윤미향·박원순·오거돈 사건에 LH사태까지 정부·여당에 쌓인 실망이 표로 표현됐다. 72.5% 몰표를 준 것은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대 여성은 “말로만 페미니즘을 외쳤지 민주당이 언제 검찰·언론개혁만큼 성평등 문제를 다룬 적 있었나? 야당을 안 찍은 이유는 뉴미디어본부장의 ‘시대착오적 페미니즘 강요 말라’했던 발언이 컸다”며 “15.1%가 기타후보에 투표한 건 양당 모두 인권 감수성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분노는 서로를 향하기보다 훨씬 더 다층적이고 복잡했다. “4050 기득권이 계층 사다리를 무너뜨리는 느낌이다. 기어오르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과연 내 일자리가 있을까? 그 일자리 주변에 과연 내가 살 수 있는 집은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크다.”
정치권이 오히려 20대 남녀의 분노를 납작하게 바라보고 성별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알렉산드로스식 해결책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느리더라도 정치가 꼬인 매듭을 제대로 풀어주길 바란다.
박해리 정치국제기획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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