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꺼리는 10대.. 다낭성난소증후군 키운다
생리 불순 3개월 이상 지속되고
양 적거나 많아지면 병원 찾아야
고3인 A양(18)은 6개월 전부터 생리 주기가 불규칙해졌다. 월경 주기가 35~40일 간격으로 정상(26~35일)보다 멀어졌다. 언니인 대학생 B씨(20)는 1년간 생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산부인과 진료가 선뜻 내키지 않았고 “곧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며 무심히 넘겼다. 자매는 최근에서야 산부인과 문을 두드렸는데 A양은 ‘희발 월경’, B씨는 ‘무월경’에 해당됐다. 호르몬과 초음파 검사 결과 둘 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을 진단받았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이 가임기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20·30대 여성에게 흔한데, 최근 10대에서도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다. 초경 시기가 빨라지고 서구식 식습관에 따라 과체중, 비만 청소년이 늘고 있는 추세와 무관치 않다.
문제는 학생이고 미혼인 여성들이 산부인과 방문을 꺼려해 조기 발견을 놓치기 쉽다는 점이다. 오래 방치할 경우 당뇨병이나 고혈압, 심혈관질환, 자궁내막암 같은 심각한 합병증에 걸릴 위험이 높고 난임까지 초래할 수 있다. 10대의 경우 특히 우울증이나 골다공증이 문제될 수 있다. 한국 여성의 경우 서양인과 달리 비만하지 않아도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있으면 ‘2형 당뇨병’ 위험이 배 이상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1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다낭성난소증후군 진료를 받은 여성은 2019년 5만2590명으로 2015년(3만879명) 보다 70.3% 급증했다. 연령별로는 2019년 기준 20대가 58.5%, 30대 25.9%, 10대 11.3% 순으로 10~30대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10대의 경우 5년간 52.4%(2015년 3917명→2019년 5969명)나 늘었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은 난소에서 난포(난자 주머니)가 한 달에 한 개씩 잘 자라야 하는데, 못 자란 난포가 여러 개 남아있는 상태를 말한다. 뇌에서 호르몬 분비를 총괄하는 시상하부와 뇌하수체 이상으로 난소의 남성호르몬(안드로겐) 분비가 증가돼 배란이 잘 이뤄지지 않는 증상이다. 월경 불순, 무월경, 다모증, 여드름, 비만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발병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호르몬 불균형, 식습관 문제 등 여러 인자가 관련돼 있다고 추정되고 있다.
정민형 경희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보통 13~14세 때부터 호르몬 밸런스가 무너져 생기는데, 비만이나 입시 스트레스 등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생들은 생리가 불규칙하고 안 해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민감한 시기여서 엄마한테 잘 말하지 않고 또래나 친구들로부터는 잘못된 정보를 접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있으면 장기적으로 복부 비만, 고혈압, 높은 혈당, 고중성지방혈증, 낮은 HDL콜레스테롤(좋은 콜레스테롤)의 5가지 대사성 질환 가운데 3가지 이상이 동반될 가능성이 높다. 정 교수는 “10대 때 치료를 하지 않으면 대사질환뿐 아니라 훗날 임신하는 데도 애를 먹게 된다. 가뜩이나 낮은 출산율이 문제인데, 전체적으로 사회적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적정 체중을 유지하면 고안드로겐혈증으로 인한 다모증, 남성형 탈모, 여드름 등의 발현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당뇨나 심혈관질환, 자궁내막암에 대한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 비만이나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에 상관 없이 정상 체중 여성도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있으면 2형 당뇨병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박현태, 류기진 교수팀은 국민건강보험 표본 코호트(동일 집단) 자료를 통해 15~44세 여성 6811명의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있는 1136명과 그렇지 않은 5675명의 대조군으로 구분해 조사했더니 다낭성난소증후군 여성들은 대조군에 비해 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이 2.6배 증가하는 걸로 나타났다. 반면 BMI나 가족력, 콜레스테롤 등과는 유의한 관계가 없었다. 연구팀은 이런 연구결과를 미국 생식의학회지(Fertility and sterility)에 보고했다.
류기진 교수는 “기존 연구들은 주로 비만한 다낭성난소증후군의 비율이 높은 서양 여성들을 대상으로 시행됐으며 상대적으로 비만 유병률이 낮은 한국 여성 데이터를 통한 연구는 부족했다”면서 “이번 연구가 국내 진료 지침 정비의 근거를 제시한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생리 불순 증상이 3개월 넘게 지속되고 생리 양이 적거나 갑자기 많아진다면 전문의 진료를 통해 정확한 진단과 조기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산부인과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의 경우 대부분 산부인과에서 피임약 처방 등 호르몬 치료를 한다. 10대들은 피임약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많아 산부인과 가기를 꺼린다. 또 청소년기에 피임약 같은 호르몬 치료를 장기간 하게 되면 아직 성숙되지 않은 난소에 강한 자극과 더불어 난소 기능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양·한방 의료를 같이 하는 경희대병원은 한방여성의학센터와 협진 시스템을 통해 여성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적용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산부인과 김영선 교수는 “임상적 근거를 갖춘 한방 치료법만 활용하는데, 청소년의 경우 체지방 배출과 신경내분비 안정을 도와주는 침이나 한약 치료를 통해 호르몬 치료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기간을 단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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