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진부한 명제를 깨는 게 '동화'는 아니다

김용현 2021. 4. 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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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의 힘은 무섭다.

이 부부를 다룬 진모영 감독의 다큐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가 480만명을 스크린 앞에 앉게 만든 힘은 여기 있었다.

결혼식 단골 멘트로 등장하는 '백년해로'는 동화 속 이야기로 치부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난 1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님아 :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는 '사랑을 포기한 사람들'에게도 용기만 있다면 이 노부부들의 바로 옆을 지켜볼 수 있는 특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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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리뷰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미국편 진저와 데이비드 부부. 넷플릭스 제공

다큐멘터리의 힘은 무섭다. 이 세상에는 없을 거라고 여겼던 동화 같은 이야기를 우리의 눈앞에 데리고 온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라는 진부하지만 믿고 싶지않은 명제를 최근 깬 건 76년간 함께 산 강계열·조병만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다. 이 부부를 다룬 진모영 감독의 다큐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가 480만명을 스크린 앞에 앉게 만든 힘은 여기 있었다. 이 ‘님아’가 여섯 나라의 여섯 빛깔 사랑으로 다시 퍼져서 돌아왔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진 지난해에도 21만4000쌍이 결혼하고 10만7000쌍이 이혼했다(통계청 통계). 2명이 결혼하면 1명이 이혼하는 꼴이다. 게다가 혼인 지속기간이 30년 이상이 넘은 부부간의 이혼은 전년 대비 10.8%가 늘었다. 결혼식 단골 멘트로 등장하는 ‘백년해로’는 동화 속 이야기로 치부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한국편. 넷플릭스 제공

지난 1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님아 :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는 ‘사랑을 포기한 사람들’에게도 용기만 있다면 이 노부부들의 바로 옆을 지켜볼 수 있는 특권을 준다. 신기하게도 이 특권에 대한 영화의 답은 ‘동화처럼 살라’는 아니다. 이들의 삶은 매일 밭을 갈고 주름살이 늘어나는 고된 ‘현실’이었고, 그렇기에 진 감독은 이 삶들이 ‘사랑의 교과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인도편. 넷플릭스 제공

4~50년 동안 서로의 옆자리를 지켜온 이들에게 주름살만큼이나 아픔도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일본편 남편 하루헤이는 한센병으로 온몸이 망가지면서 요양소에서 15년간 있었다.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학교에서조차 쫓겨났던 게 그의 한이다. 그를 요양원에서 구해냈던 아내 키누코에겐 몸에 종양이 생겼다. 스페인편 남편 아우구스토는 심장에 이상이 생기고, 한국편 정생자 여사는 허리가 아픈데도 일을 쉴 생각을 안 한다. 인도편 사티아바마와 사트와 부부는 기후변화로 목화 농사가 힘들어지자 자식들이 도시로 떠나간다. 남의 밭을 갈며 자식 농사를 해온 순간도, 그들이 떠나가는 순간도 고되다.

평생을 함께한 이들의 표현은 다소 투박하다. 하지만 이들의 고된 삶의 황혼기에서도 진흙에 싸인 진주 같은 순간이 건져 올려지기도 한다. 일본편 남편 하루헤이는 “혼자 살면 힘들지만, 둘이 노력하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말에 한센병을 안고 아내 키누코의 옆을 지켰다. 아내의 생일에 꽃을 주고 케익에 초를 붙인다. 그리곤 “느끼한 게 싫다”는 아내의 말에도 “내 인생의 절반은 당신의 사랑으로 살 수 있었다”는 말을 건넨다. 인도편 아내 사티아바마는 남편이 밀어주는 그네를 타면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일본편. 넷플릭스 제공

결국, 그들의 사이를 일평생 이어주는 다리는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다. 가부장제가 근본이 되던 과거 사회의 모습에도 이 부부들은 남편이 자기주장을 어느정도 내려놓는다. 부드러움을 견지하고 소리높여 화내지 않는다. 미국편 장례방식과 유언장을 쓰는 과정에서 아내 진저가 결정하고 데이비드는 그걸 묵묵히 먼저 듣는다. 인도편 아내 사티아바마가 친정어머니를 집에 모시고 싶다는 말에 남편 사타와는 먹을 게 없다며 반대를 하다가도 아내가 강하게 밀어붙이자 수긍한다. 한국편 남편 조영삼은 아내 정생자가 몸이 아프면서도 일을 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또 옆에서 몸을 챙길 뿐 먼저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에서 빠져나오면 이들의 삶은 대단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어디선가 봤던 장면 모습이기도 하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이 좋을 때의 모습이자, 우리가 사랑을 시작할 때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섯 노부부가 하지 않는 행동과 말을 생각해본다면 떠오르는 것들도 분명해진다. 50여 년 동안 그들이 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 ‘포기’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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