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욱] 슈퍼리그 대 UEFA, 유럽 축구 헤게모니 싸움의 승자는?

서형욱 기자 2021. 4. 1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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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유럽 축구계에 2021년 4월 19일은 어떤 날로 기억될까? 유럽 축구가 한 계단 도약하는 혁명의 날? 빅 클럽들의 실패한 쿠데타? 개인적으로는 그 중간쯤 어딘가에서 합의점을 찾게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물론, 이것은 아주 낙관적인 견해다. 현실은 예측 불허, 특히나 이번 일은 더 그렇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든, 서로의 피해가 막심하다. '슈퍼리그'라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킨 빅 클럽들도, 이들을 놓치고선 존립이 어려운 유럽축구연맹(UEFA)도, 서로의 존재를 외면하고선 미래를 논하기 어렵다.

UEFA에서 벗어나려는 빅 클럽들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이 고개를 수그리기도 힘든 상황이다. 긴 시간 칼집을 만지작대며 참을만큼 참아온 빅 클럽들은 코로나로 인한 위기를 기회 삼아 마침내 칼을 꺼내 들었다. 이왕 꺼낸 칼, 무우라도 베어야 하는 법. 아무런 소득없이 도로 칼집에 집어넣을 요량이면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관건은 오래 묵힌 칼날이 얼마나 잘 벼려졌느냐다. 어쩌면 단 한 번 밖에 쓸 수 없을지 모를 '슈퍼리그 창설' 선언을 하필 지금 꺼내들었다면, 충동적인 급발진은 아니어야 한다. 

슈퍼리그에 참가하는 12개 클럽들의 각오는 결연하다. 발표 날짜부터가 아주 도전적이다. 슈퍼리그가 D-DAY로 잡은 19일은 UEFA의 중대한 발표가 예정된 날이기도 했다.

UEFA는 빅클럽이 주도권을 잡은 유럽클럽협회(ECA)와 챔피언스리그 개편안을 오랜 시간 협의해왔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합의에 도달했다. ECA가 요구한 여러 조건들, 이를테면 참가조건을 강화해 한 시즌의 성적보다 다년간의 누적 성적에 따라 출전권을 할당하는 것, 상위 리그에서 더 많은 팀들이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는 것, 마케팅 권한을 각 클럽들이 일부 갖게 하는 것 등에 UEFA가 이전보다 큰 폭으로 양보를 택한 덕분이다. UEFA는 이러한 합의 내용을 바탕으로, 기존의 32개팀 리그에서 36개팀 리그로 대회 포맷 변경을 포함한 개편안을 19일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에 따르면,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는 팀들은 기존보다 더 많은 경기수가 보장되며 당연히 수익도 증대될 예정이었다.

'빅 클럽' 12개 구단의 역습
 



하지만, ECA를 이끄는 빅 클럽들로 구성된 슈퍼리그는 UEFA와의 합의를 전면 부정하기로 한다. 잉글랜드의 TOP6(리버풀, 맨시티, 맨유, 첼시, 토트넘, 아스널),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탈리아의 AC밀란, 인터밀란, 유벤투스가 슈퍼리그 설립 멤버에 합류했다. 당초 합류할 것으로 예상되던 파리생제르맹(PSG), 바이에른, 도르트문트(이상 독일)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당초 '슈퍼리그'는 UEFA의 챔스 개선안 발표 직후 독립 리그의 창설을 공표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어쩌면 의도했던대로) 슈퍼리그 창설 발표 계획이 하루 일찍 언론에 새어나갔다. 유럽의 모든 언론은 슈퍼리그 창설 뉴스로 도배됐다. 결국, 슈퍼리그 측은 UEFA의 발표 이전, 현지시각으로 18일에서 19일로 넘어갈 무렵 리그 본부와 12개팀 모두의 동시 발표로 리그 창설을 공표했다.
 


유럽 축구계가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슈퍼리그에 참가한 12개 클럽의 수뇌부를 제외한, 축구계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즉각적인 반대 의사를 밝혔다. '스카이스포츠'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맨유 레전드' 개리 네빌은 "40년간 맨유팬이었지만 (슈퍼리그에 참여한) 맨유가 역겹다"며 적극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네빌은 맨유의 라이벌인 리버풀을 향해서도 날선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You'll never walk alone.이라더니 팬들을 위한 클럽이라는건 위장이었나?" 여론은 크게 악화됐다.

슈퍼리그에 참여한 12개 클럽의 팬들조차 반대 일색의 여론을 형성했다.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야.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슈퍼리그 가입을 공표한 토트넘 핫스퍼 구단의 공식 SNS 계정에는 수 많은 '화나요'와 함께 비난으로 가득한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나머지 11개 클럽의 SNS 역시 비슷한 반응을 겪는 중이다. 당장 가장 큰 위기에 처한 조직들, 이를테면 UEFA나 각국 축구협회와 리그 사무국 역시 슈퍼리그 창설에 거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는 문구에서는 비장함이 느껴졌다.

축구계의 극심한 반대 여론

현지에서는 UEFA가 자신들의 편에 선 FIFA와 함께 슈퍼리그 참가 클럽 소속 선수들의 A매치 출전 금지를 에서 뛸 수 없도록 조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직 공식화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진행 중인 UEFA 주관 대회들, 즉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에서 해당 팀들이 당장 실격 처리될 것이라는 루머까지 도는 중이다.

물론, 아직 구체적으로 이뤄진 조치는 없다. 유럽 축구의 틀 자체가 바뀔 수 있는 사안이므로 좀 더 현실성있는 실행안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현지의 부정적인 여론에도 12개 클럽의 스탠스는 요지부동이다. 예상했던 바이고,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동안 UEFA에 꾸준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주문했다. 유럽 축구가 지금의 위상을 갖고 또 산업화되는 데에, 슈퍼리그 참가를 결정한 빅 클럽들의 공이 지대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러한 공로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사례를 원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 입장에선 '공평한' 기회를 요구했다고 해야한다. 자신들이 투자한만큼, 가진만큼, 기여한만큼, 더 많은 것을 가져가길 원한다. 충돌은 여기서 빚어졌다.

빅 클럽들의 욕심과 권리 사이

UEFA의 '공평'과 빅 클럽들의 '공평'은 같은 단어지만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UEFA는 유럽 축구 전체의 발전과 공존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 프랑스 출신의 미셸 플라티니 회장은, 오랜 시간 UEFA의 권력을 쥐고 있던 요한손 체제를 꺾기 위해 축구 약소국들의 표를 노렸다. 그리고 약소국들의 챔피언스리그에 출전 기회를 조금 더 보장해주었다. UEFA의 이러한 기류는 현 회장인 슬로베니아 출신 알렌산더 체페린 체제에서 더 강화되었다.

체페린은 플라티니 집행부가 도입한 FFP를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이러한 변화들은 빅 클럽들이 UEFA의 우산을 벗어나는 데에 결정적인 동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슈퍼리그 구상이 20세기말부터 오랜 시간 다듬어져 왔다는 점에서, 이번 '독립 선언'이 아무런 소득없이 번복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UEFA와 국제축구연맹(FIFA)가 내밀 수 있는 위협이라는 것은 결국 슈퍼리그 참가 클럽들이 예상하는 수준 안에서 이뤄질 수 밖에 없고, 슈퍼리그는 그러한 불안요소를 감내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이처럼 다소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자신감의 근거는 결국 어마어마한 경제적 이익이다. 슈퍼리그는 한마디로 빅 클럽들의 '낙원'이다. 전년도 성적이 어떻든, 빠짐없이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최악의 경우 6경기만 하고 탈락할 수 있는 챔피언스리그와 달리, 슈퍼리그는 매 시즌 18경기를 보장해준다. 단순 계산으로도 최소 보장 금액이 세 배에 달한다.

'머니 게임'에서 앞선 슈퍼리그

구체적인 액수를 살피면 슈퍼리그 참가팀들의 '모험'에 조금 더 공감할 수 있게 된다. 현지 언론들은 JP모건의 투자 유치 등을 통해 슈퍼리그가 연간 46억 파운드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상금을 이미 확보했다고 보도하는 중이다. 우리 돈 7조원이 넘는 거액이다. 이에 따르면 슈퍼리그에 참가하는 팀들은 참가비(팀당 2억~3억 파운드)를 선불로 받는 것 외에, 전경기에 패배하고 꼴찌를 기록하더라도 매년 1억 3천만 파운드, 약 2천억원의 상금을 추가로 보장받는다. 올 시즌 기준으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전승 우승하는 팀이 가져가는 돈은 대략 1천억원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니 실로 어마어마한 차이다.

하지만 슈퍼리그의 발족은 집단이기주의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슈퍼리그로 더 많은 돈을 벌어 자국 리그나 풀뿌리 축구 발전에 기여하겠다는게 슈퍼리그 참가팀들의 주장이지만,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슈퍼리그는 기존의 유럽 축구 시스템을 파괴하는 아주 독립적인 시스템이다. 유럽 축구는 상하 교환이 가능한 '열린 체제'를 바탕으로 짜여진 피라밋 구조를 통해 성장해왔다. 리그로 구분되고 격차도 크지만, 멀리서 보면 결국 하나의 구조물 안에 존재하는 동등한 관계였다. 하지만 슈퍼리그는 기존의 피라밋과 스스로를 완전히 구분짓는 시도다. 슈퍼리그 내부자들의 동의와 양해가 없이는, 그 어떤 팀들도 이 안에 들어설 수 없다. 당연히,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의 성명서에 적힌대로) 하부 리그 팀들이 '더 높은 곳을 꿈꾸는' 축구의 이상도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레스터 시티의 동화나 아탈란타의 이변은 이제 어려운 수준이 아닌 불가능한 경지로 넘어갈 수 있다. 약소국 리그 소속 선수들이 빅 클럽으로 '점프'하는 일들 역시 지금보다 크게 줄어들 것이다. 빅 클럽에서 유스 출신들이 기회를 얻는 것 또한 아주 드물어질 전망이다.

유럽 축구의 '근본'을 바꾼다?

손흥민처럼 이미 검증이 끝난 선수들의 몸값은 치솟겠지만, 앞으로 대한민국처럼 유럽 바깥 리그에서 영입되는 선수들의 숫자가 어떻게 될 지는 예측이 쉽지 않다. 슈퍼리그가 외국인 선수 출전 기준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UEFA의 감독을 받지 않기로 작정한 이상, 외국인 제한 요건을 크게 약화시킬 수도 있다. 

슈퍼리그가 기존의 유럽 축구 시스템과 가장 다른 점은 승강이 가능한 열린 체계가 아닌, '고인물' 리그라는 닫힌 체계다. 전체 20개팀 가운데 '창립 멤버' 15개팀(아직 3개팀 미정)은 전년도 성적과 상관없이 늘 자리를 지킨다. 미국 스포츠 시스템의 도입이라는 점만으로도 비호감인데, 노동자들의 스포츠에서 시작된 상향식 '근본'이 훼손되는 것에 대한 반발심 역시 만만찮다. '슈퍼리그'가 미래 어느 시점에 탄생할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연착륙보다는 코로나19를 빌미로 과격하게 발을 내딛으려는 꼴이 되었다는 점에서 지금의 구상 그대로 슈퍼리그가 출범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양측의 협의 과정을 좀 더 지켜봐야할 일이다. 

MBC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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