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방미에 드리운 스가 그림자..백신·북핵·오염수 '첩첩난제'
한국과 일본의 대미 외교는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곤 한다. 미국에서 신행정부가 들어서면 정상 간 통화나 회담 순서까지도 국내 여론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15~18일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한 뒤 미ㆍ일 동맹 강화와 백신 추가 확보 등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며 약 한달 뒤 이뤄질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길 걸음이 더 무거워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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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바이든 만남→화이자 접촉→백신 확보
일본 정부는 스가 총리가 미국 방문 중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와 통화해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을 추가로 공급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분량과 도입 시기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백신 접종 업무를 관장하는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담당상은 18일 “9월 말까지는 일본 내 모든 접종 대상자에게 맞힐 수 있는 수량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백신 수급과 관련한 국내적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 역시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백신 협력을 약속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 이유다. 미 행정부가 화이자ㆍ모더나 등 민간 기업을 무작정 압박할 수는 없지만, 일본의 사례를 보면 협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스가 총리의 동선을 보면 일본 역시 이를 노리고 동선을 구성한 것으로 관측된다. 스가 총리는 16일에는 미ㆍ일 정상회담 관련 일정에 집중했고, 화이자 CEO와의 통화는 다음날인 17일 했다. 전날 미ㆍ일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암묵적 지지나 지원을 먼저 얻은 뒤 화이자와 접촉했기 때문에 백신 확보가 수월했던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또 화이자 CEO와 대면 만남도 아니고 통화만 하는 것이라면 도쿄에서도 충분히 가능한데, 굳이 워싱턴에 와서 통화하고 백신 문제를 마무리한 것이 이런 예측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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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확보하려면 대중 협력 필수?
특히 미국은 그간 각국의 백신 요청에 “미국 내 접종이 우선”이라며 선을 그어왔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1일(현지시간) 멕시코 대통령이 화상 정상회담에서 백신 지원을 요청하자 “우리 국민이 우선”이며 “모든 미국인이 백신을 접종하도록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취지로 사실상 단칼에 거절했다. 미 CNN 방송도 이달 초 “국무부는 거의 매일같이 밀려드는 다른 나라의 백신 관련 요청을 ‘미국 상황이 다 관리되기 전에 해외 배송은 없다’는 취지로 처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도 스가 총리는 백신 추가 확보라는 성과를 낸 것이다.
문 대통령은 19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ㆍ미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멈춰있는 한반도 평화의 시계를 다시 돌리기 위한 노력과 함께 경제 협력, 코로나19 대응, 백신협력 등 양국 간 현안의 긴밀한 공조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행정적ㆍ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서 백신 물량을 확보하겠다”(지난 16일 한ㆍ미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는 입장이지만, 결국 관건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 등 전반적인 외교 전략에 한국이 얼마나 호응해주냐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스가 총리가 방미 중 (백신 확보 등)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건 중국 견제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협조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쿼드(미국ㆍ일본ㆍ인도ㆍ호주) 안보 협의체 문제 등에 전보다 협력할 여지를 보인다면 백신 문제 등에서도 성과를 얻을 가능성도 키울 수 있다는 취지다.
사실 이는 백신 외교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다. 청와대가 우선시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 확보도 거저 얻어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관련 사정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마무리 단계인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리뷰에서 핵심은 ▶지금의 제재 체제는 확고하게 유지한다 ▶도발에는 상응하는 대응을 한다 ▶북한과의 협상 등 외교적 관여에도 유연한 태도를 견지한다 등으로 요약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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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견제 ‘한 몸’ 미ㆍ일, 한국은
북ㆍ미 협상 조기 재개 및 싱가포르 합의 계승을 목표로 하는 청와대와는 온도차가 있는 셈이다. 임기 1년여를 남긴 문재인 정부와 짧게는 4년, 길게는 8년을 보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 간 시간표 차이에서 비롯되는 이견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원론적 수준의 공감대 형성 이상을 이뤄내려면 주고받기가 이뤄져야 하는데, 미국이 우선시하는 중국 압박 기조에 한국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미ㆍ일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대만부터 홍콩, 신장, 남중국해, 동중국해 문제 등 중국이 반발할 만한 이슈 등을 모두 망라해 중국을 압박하며 한 몸처럼 움직였다. 한ㆍ미 정상회담에서도 미 측이 노골적인 대중 압박 참여를 요구하진 않더라도 ‘중국이 국제 규범을 훼손하는 행위자’라는 큰 방향에는 한국과 공동의 인식을 달성하려 가능성이 있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 등을 비롯, 한ㆍ일 관계가 어떤 식으로 한ㆍ미 정상회담의 의제로 포함될지도 관심이다. 오염수 문제의 경우 국내적으로는 관심이 높지만, 미국이 이미 수차례에 걸쳐 일본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이 중심이지, 미국이 개입할 생각은 없다고 밝힌 만큼 섣부르게 테이블에 올리는 건 득보다 실이 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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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문제 제기, 득실 고민
역대 최저점을 찍고 있는 한ㆍ일 관계와 관련해서도 이미 일본이 워싱턴 내에서 ‘한국 책임론’을 한껏 끌어올려놓은 상황이라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이 한ㆍ미ㆍ일 안보 협력 강화 의지를 표명하며 적극성을 보이는 방법이 가능하지만, 미국 입장에선 쿼드 안보 협의체 등과 층위 차이를 둘 수도 있다. 실제 미ㆍ일 공동성명에서 양측은 동맹 및 파트너들과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 지역 구축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밝히며 제일 먼저 쿼드를 거론했고, 뒤이어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마지막으로 “한국과의 3자 협력이 공동의 안보와 번영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언급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전략적 목표에 전폭적으로 호응하는 일본과 반응하지 않는 한국에 대해 미국이 공정한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이제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며 “이를 토대로 우리도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한다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오염수 문제는 대미 외교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 하기보다는 한국과 미국 모두에 해당하는 환경, 국제적 공공재의 문제라는 측면에서 보다 글로벌한 시야를 갖고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지혜ㆍ정진우ㆍ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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