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에 뜬 거대 코스모스, 이런 사연이 있었다니
[오창경 기자]
백마교를 건너는 길에 우연히 돌아본 구드래 둔치에 거대한 무엇인가가 보였다. 페루 나스카 평원의 지상화 같은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마침 내가 운전을 하지 않아서 보인 것이었다.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아서 지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를 돌리기로 했다. 도시보다 시골이 자동차 생활이 더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걸어서 다리를 건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백마교 중간에 내려서 사진을 찍고 걸어서 다리 건너편에서 기다리는 지인들과 합류하기로 했다.
부여 사람인 내가 백마교를 걸어서 건너기는 처음이었다. 아직도 백마강을 나룻배를 타고 건넜던 옛날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백마강에 부여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다리가 백마교였다.
발밑으로 도도하게 흐르는 백마강의 모습을 직시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백제의 한과 역사가 푸른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거기에 거대한 초록색 꽃잎 한 장이 떡하니 펼쳐진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알라딘이 푸른 카펫을 타고 날아다니다가 살짝 내려앉은 듯했다.
순간적으로 그 푸른 카펫이 네 잎 클로버일 것이라고 단정을 해버리고는 사진을 찍어댔다. 다리 위에서 찍어야 보이는 거대한 그림이었다. 경비행기를 타고 가서 내려다 봐야 보인다는 페루의 나스카 지상화를 우리나라에서 보는 느낌이었다. 처음 발견한 자의 우월감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 백마강변 구드래에 내려앉은 청보리 카펫 코스모스 관광명소인 구드래에 조성한 거대 코스모스 꽃잎 |
ⓒ 오창경 |
▲ 비안개가 자욱한 백마강변 구드래 둔치 신비로운 비안개 속에 청보리를 배경으로 조성된 거대 코스모스 꽃잎 정원 조경 |
ⓒ 오창경 |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 초록색 카펫이 구드래 둔치에 왜 생겨났는지 실체를 파헤치지도 않고 잘못된 정보를 퍼트린 것은 아닌지 후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백마교 다리 밑으로 직접 내려가서 확인해 보지도 않고 뜬구름만 잡은 것 같았다. 군청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실체를 파악해보기로 했다.
부여군청 산림녹지과(과장 이성복) 담당 주무관과 전화가 연결되었다.
"초록색은 청보리과의 누리 찰보리를 심은 거예요. 꽃잎 부분은 코스모스를 심은 거고요. 부여 구드래가 코스모스 관광 명소로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직경 70미터의 거대 코스모스 꽃잎을 형상화해서 심은 거예요."
네 잎 클로버라고 자의적으로 판단을 해버린 참사였다. 이미 일은 저질러져 버린 후였다.
"어쩌지요? 제가 페이스북에 거대한 네 잎 클로버가 백마강변에 떴다고 행운이 찾아올 거라고 잘못된 정보를 퍼트려버렸네요."
욕심이 과하면 이런 실수를 하는 법이다. 부여군청 산림녹지과 팀원들이 코스모스 성지인 백마강변 구드래에 매년 코스모스를 새로 식재하면서 올해는 코스모스 꽃잎을 형상화한 거대 장식물을 기획한 것이었다.
정확한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은 채 보이는 것만으로 주관적인 정보부터 퍼트려버린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니 알게 모르게 경쟁의식도 있었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선점했다는 의욕이 너무 앞선 거였다.
다음날 시간을 내서 백마강변 구드래 둔치에 가보았다. 안개비가 내리는 날이라 백마강은 신비로운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 백마강 속에 살고 있다는 전설의 용이 승천할 분위기였다.
▲ 구드래 둔치에서 안개비를 맞으며 촬영한 거대 코스모스 정원 청보리를 배경으로 코스모스 꽃잎을 형상화해서 거대한 정원 조경에 대한 아이디어는 담당 부서인 산림녹지과 직원들에게서 나왔다 |
ⓒ 오창경 |
▲ 구드래 둔치에서 올려다 본 백마교 청보리를 심지 않은 곳에는 코스모스 어린 싹이 돋아나 있다. |
ⓒ 오창경 |
코스모스 꽃잎 부분을 두둑을 높여서 도드라지게 해놓은 곳에는 코스모스 새싹들이 조금씩 삐져나오고 있었다. 이 새싹들이 자라면 연한 초록색으로 보일 것 같았다. 바깥쪽 청보리가 바탕색이 되어 다른 변화된 모습을 예고하고 있었다. 코스모스 꽃이 피면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거대 꽃잎의 코스모스가 생기는 것이었다.
코스모스가 피기 전에는 청보리의 푸른빛으로 시각적 효과를 내고, 가을에는 꽃잎에 심은 코스모스들이 자리를 잡아서 거대 코스모스 꽃잎으로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이중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 청보리를 심지 않은 곳에는 코스모스 씨앗을 뿌렸다. 코스모스가 자라고 꽃이 필때까지 거대 코스모스 조경은 다양한 모습으로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
ⓒ 오창경 |
부여의 코스모스 재배 노하우는 다른 지자체에서 한 수 배워갈 정도이다. 비대면 시대에 오히려 구드래에 끝없이 핀 코스모스를 드라이브 스루로 감상하는 데 최적화된 공간으로 더 잘 알려지기도 했다. 작년 가을 구드래에는 백제문화제를 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브 스루 관광객은 더 몰려들었다.
그런 여세를 몰아서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주고 '부여'라는 네임 벨류를 높이기 위해 담당 공무원들은 머리를 짜낸다. 드넓은 구드래에 코스모스만 밋밋하게 심기보다는 변화를 주고, 다녀간 후에도 여운이 남는 곳이 되게 하기 위해 보이지 않은 손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그 결과가 지자체마다 자랑을 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공무원들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인 줄도 모르고 눈에 보이는 대로 해석을 해버린 나의 경박함이 부끄러웠다.
'깨방정을 떨다가 잘못된 정보를 퍼트렸네요. 거대 네 잎 클로버가 아니라 코스모스를 형상화한 거라네요'라고 자백을 하는 문구를 다시 올려놓았다. 다시 댓글과 '좋아요'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 댓글들 속에 '이번에는 거대 코스모스라고 제대로 써주실 거죠?'라는 글이 보였다. 부여군청 산림녹지과 팀원이었다. 그 한마디가 나를 구드래를 벌판으로 이끌었고 안개비 속에 뛰어다니며 청보리를 직접 확인하고 사진을 다시 찍고 기사를 쓰는 원동력이 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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