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 백역산, 고대산, 옥련산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
[송영우 기자]
어떤 대상에게 사회적인 혐오가 끓어넘칠 때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입장을 취한다. 하나는 남들과 똑같이 혐오의 대상에다 욕을 날려 자신도 당신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리는 경우다. 욕까진 아니더라도 세 치 혀로 거드는 일도 적극적 동조에 속하기는 마찬가지고 침묵 역시 결과적으로는 혐오의 확산에 기여하는 것과 같다. 반대의 입장은 당연히 혐오에 맞서는 모든 행동이다.
다시 마주하는 위험한 혐오의 신호들
남북 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가장 기승을 부리는 것이 북한에 대한 혐오다. 위기에 몰릴 때마다 쓰는 벼랑 끝 전술이 못마땅하고, 핵 개발이 못마땅하고 이유 불문하고 한반도 평화가 깨지는 것이 모두 북한 책임이라는 태도에서 혐오는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분단구조에 기생해 자신의 기득권을 확장해 온 수구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합리적이라 일컬어지는 일부 식자층에서도 냉담해질 때가 있다. 정치적으로 따져 그 이유를 탐구해 추적할 생각은 않고 그냥 싫다는 것이다.
▲ 로저 셰퍼드(Roger Shepherd, 뉴질랜드) 분단 이후 한반도 백두대간 구간을 최초로 종주한 외국인 |
ⓒ 송영우 |
그런데 지리산을 필두로 백두대간을 거침없이 오르던 그에게도 복병은 있었다. 한반도의 허리에 드리워진 철조망이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2011·2012년 평양 소재 '조선·뉴질랜드 친선협회'의 협조로 북한을 방문해 백두대간의 북측 구간을 종주하면서 아름다운 산하와 북측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사진으로도 남겼다. 그리고 2013년에는 2006년부터 지리산 등을 다니며 찍은 남측 구간 사진까지 모아 첫 사진집을 출간했다. 그의 사진에는 한반도를 관통하는 백두대간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더불어 허리가 끊어진 비극적 민족사의 한도 서려 있다.
▲ 백두대간 사진들 관람객들이 로저 셰퍼드의 사진전을 관람하고 있다. |
ⓒ 송영우 |
푸른 눈의 외국인이 본 백두대간의 사계
▲ 백두대간 사진전 포스터 경주와 대구를 거쳐 안동으로 이어진다. |
ⓒ 송영우 |
사실 로저는 이미 많이 알려진 작가다. 백두대간 종주 과정에서 찍은 사진으로 다수의 사진전을 열었고, 또 남북의 다양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책을 집필하는 등 남북의 문화교류에도 힘써 왔다.
서구인들에게 한국의 산을 소개하는 하이크코리아(HIKE KOREA) 대표이사로서 세계 각지에 백두대간을 소개하는 영문 안내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남북 관계가 나날이 경색되고 있지만 그는 요즘도 평화 전도사가 되어 백두대간의 아름다움을 전파하고 남녘의 구석구석을 걷고 또 걷고 있다.
앙리코 마샤스(Enrico Macias)의 '녹슨 총'(Le fusil rouille)을 즐겨듣는 편이다. 한 병사가 숲 속 깊은 곳 어디에선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려둔 녹슨 총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노랫말이 참 감미로워서다. 지친 마음에 평화의 숲이 들어서 자유롭게 숨 쉴 수 있어서다. 마찬가지로 나는 권정생 선생님의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을 떠올린다. 애국의 이름이 아니라면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드는 대신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있는 세상.
이 사진전을 여는 마음도 같다. 혐오와 대결을 지운 자리에 평화의 강이 흐르게 하기 위해서다. 어렵게 일군 상호 협력과 공동 번영의 약속을 포기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어서다. 부디 많은 이들이 찾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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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대구 노동히어로(http://www.dgworkhero.org)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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