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딱 감고 을남이 구하기'만 하는 로스쿨생들

박은선 2021. 4. 1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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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노무현의 로스쿨은 죽었다. '수(數) 통제' 앞에서.. (3)

[박은선 기자]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하는 무사유가, 인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는 '무사유'의 위험을 이렇게 지적한다. 아렌트는, '사유하는 인간' 아닌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지식을 비판 없이 저장하는 인간'을 만드는 사회는 어느 순간 '무사유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될 수 있고 급기야 유대인 대학살 같은 집단범죄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독일의 지배계층이 아우슈비츠를 만든 것 역시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유가 없어서'라고 결론 내린다.

'무사유 엘리트' 배출하던 사법시험
 

우리 사회에서 '무사유 엘리트'가 가장 활발히 육성된 분야는 법조계가 아니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협력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나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해 판결을 조작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모두 사법시험 출신 엘리트다. 그들은 단순암기 중심의 경쟁적 시험에 특화되었기에 사법시험을 높은 점수로 패스할 수 있었지만 이들의 인권과 정의에 대한 무지는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2016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국정농단 방조 혐의로 수사받는 모습은 놀라웠다. 뒷짐을 지고 고고한 자세로 검사들을 지시하듯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은, 수사받는 피의자 아닌 후배들을 가르치는 전관 내지 고위간부의 그것이었다. 그에겐 '검사의 특권 의식'이 매우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작성된 검찰 내부의 비공개 인터뷰 자료집 <핵심검사 인터뷰 기반 계층별 인터뷰 분석>에서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나는 (평검사 시절인) 스물세 살 때도 마흔다섯(살)인 계장(수사관)을 수족처럼 부렸다"거나 "(지방)경찰청장도 내 가방을 들어주고 그랬다"고 말한 것이 확인된다.

특권 의식만이 문제는 아니다. 사법부의 수장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사건을 마음대로 배당하고 판결문도 조작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사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 많은 사건의 판결이 정권의 입맛에 맞춰 왜곡됐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뇌물공여 2심 재판도 특정 판사에게 의도적으로 배당되어 집행유예와 감형이 선고된 바 있다.

시험 잘 보는 기술로 높은 곳에 올라 수사관을 수족처럼 부리며 살아온 검사. 그리고 판결을 마음대로 조작해도 된다고 믿어온 판사. 그들은, 시험특화적 지적능력을 활용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높이 올라가는 것에만 전념하느라 '정의'란 두 글자를 뜨거운 무엇으로 새겨본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저 암기하고 그저 경쟁할 뿐 법조인이 법을 활용해 해선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사유한 일은 없었기에 그와 같이 민주사회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들을 벌인 것은 아닐까?

그럼 로스쿨은?

우병우, 양승태가 치른 사법시험이 폐지된 지 벌써 몇 년이다. 이제는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이 법조인이 되는 유일한 통로다. 그럼 로스쿨에선 우병우, 양승태와 완전히 다른, 정의와 인권을 '사유'하는 법조인들이 양성되고 배출되고 있을까?

변호사시험 과목 중 '형사법 기록형 시험'이 있다. 공소장과 피의자신문조서, 압수조서 등 가상의 사건 기록을 바탕으로 형사재판에 필요한 서면을 작성하는 시험이다. 그런데 그 서면 중 피고인의 무죄(또는 면소, 공소기각)를 주장하는 변호인의견서가 다소 당혹스럽다. 시험에서 피고인이 늘 '이을남', 정확히는 '유죄가 너무도 의심되는 이을남'으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을남이는 절도도 하고 횡령도 하고 사기도 치며 때로는 상해, 살인 같은 강력범죄까지 저지른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을남이가 했다. 공범도 을남이와 함께 범행을 저질렀음을 자백했고, 때로 을남이가 자백한 기록까지 있다. 수사기관에서 한 말들을 보면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고, 어쩌면 증거를 그리도 잘 흘려뒀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피해자의 아픔을 생각하면 을남이는 제대로 처벌을 받아야 할 듯하다. 아, 하지만 나는 '을남이의 변호인'이다.

반전이 있다. 사실 로스쿨생 대부분 '을남이 변호인' 역할에 큰 어려움이 없다. 유죄가 분명해 보이는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에 익숙하단 얘기다. 비결은 별거 없다. '눈만 감으면' 된다. 자백조서는 채택하지 않으면 되고, 압수된 칼은 경찰이 압수조서 없이 가져갔거나 야간에 가져갔다는 등을 이유로 증거로 쓸 수 없게 해버리면 된다. 그리고 을남이에게 유리한 부분들만 모아 잔뜩 나열한 뒤 "유죄를 인정할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이 부족하므로 피고인 이을남은 무죄"라고 하면 된다.

나의 의뢰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아무리 유죄 같대도 눈 딱 감고 무죄 주장을 펼치는 것. 어쩌면 그것은 현실 변호사의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숙명인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법조인 교육의 과정에서는 그와 같은 무죄 주장의 옳고그름 등에 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로스쿨에는 '법조윤리' 과목이 있다. 그 과목 수업시간에 위와 같은 문제에 관해 깊이 있게 토론하고 고민하는 것은 예비법조인의 자질 함양을 위해 당연하고 또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비록 변호사시험 형사 기록형 시험에 대비해 '(유죄이건 말건) 을남이 구하기'에 전력을 다한대도 로스쿨생들은 적어도 '법조윤리'와 같은 수업을 통해 '유죄가 분명한 의뢰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 옳은가', '현관에게 로비해서라도 의뢰인을 구출해야 하는가' 등을 고민하며, '변호사의 기술'뿐 아니라 '변호사의 윤리'를 위해서도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테다. 하지만 로스쿨의 '법조윤리' 시간은 그런 시간이 아니다. 그 수업 시간은 그저 쉬어가거나 견디는 시간, 몰래 숨어 다른 공부를 하는 시간일 뿐이다.

로스쿨생들이 '사유 없이' '을남이 구하기'에만 목매는 이유
 

왜 로스쿨생들은 '법조윤리' 과목에 무심할까? 답은 어렵지 않다. '변호사시험'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변호사시험은, 사법시험 1차시험(객관식 시험)과 2차시험(주관식 시험), 연수원에서 치르던 서면작성 시험을 모두 합해 4박5일간 한꺼번에 치르는 시험이다. 최근의 발표에 따르면 변호사시험엔 무려 2만 개가 넘는 판례들이 등장한다.

아니, 무엇보다 변호사시험은 허수 없는 응시자들 가운데 무조건 절반만 합격하는 엄격한 정원제 선발시험으로 치러진다. '너 아니면 내가 죽는' 변호사시험을 앞둔 로스쿨생들에게 '법조윤리'는 사치인 것이다. 

양승태 사법농단 당시 모 대학 로스쿨 교수가 로스쿨생들이 관련해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것을 꾸짖는 칼럼을 썼을 때 로스쿨생들은 당황했다. 눈 감고 귀 막고 시험공부에만 전념하라고, 세상이 어찌 되든 옆에서 누가 죽어 나가든 상관하지 말라고 가르친 이들이 바로 로스쿨 교수들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 시험에만 전념하려 뉴스조차 보지 않아 그 교수의 칼럼은 물론이요. 사법농단 자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로스쿨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법조인을 '교육을 통하여' '양성'하기 위해 로스쿨을 설립한 이상, 로스쿨의 교육과정은 단지 이을남을 구하는 기술만 익히도록 기획되지는 않았다. 을남이를 구할지 말지, 구하는 경우의 문제는 무엇이고 이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등등을 고민하는 '사유'의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기획됐다.

설립 초기 많은 로스쿨에선 인권수업과 인권동아리 활동이 장려됐고 리걸클리닉 수업을 통해 로스쿨생들은 지역사회 무료법률봉사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현재 로스쿨에선 인권법 수업은 폐강되기 일쑤고 인권동아리는 껍데기만 남았으며 리걸클리닉 수업을 활용한 무료법률봉사도 거의 없다. 그리고 위와 같이 법조윤리 과목조차 그저 '잠시 견디는 시간'으로 활용될 뿐이다.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육이념은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풍부한 교양,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윤리관과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을 갖춘 법조인의 양성에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 제2조에 담긴 로스쿨 설립 취지다. 여기서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윤리관' 부분은 이제 그만 삭제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지금 로스쿨에선 인간에 대한 이해나 정의 등과는 무관하게 '무조건 을남이 구하기'에만 전념하는 법조인들이 길러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 중에서 제2의 우병우, 제2의 양승태가 나온대도 전혀 놀랍지 않을 정도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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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로스쿨 교육 정상화 및 법조문턱낮추기' 운동을 하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인 시민기자입니다. 출판예정인 <노무현의 로스쿨은 죽었다>(가제)의 일부를 연재합니다. '제10회 변호사시험'의 합격자 결정 및 발표가 2021년 4월 21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모쪼록 이 연재가, 제10회 변호사시험을 시작으로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의 정상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법조계와 시민사회 모두를 위한 로스쿨 개혁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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