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고 쌍둥이 "'미술, 오예~100점'은 시험후 채점 증거"

이유정 2021. 4. 1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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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ON] 숙명여고 쌍둥이 부정시험 의혹 재판①

‘2017~2018년 숙명여고 교무부장으로 재직하던 아버지 현모 씨가 중간ㆍ기말고사 답안지를 유출했고, 중상위권이던 쌍둥이 자매는 아버지 도움으로 1년 만에 문ㆍ이과 전교 1등이 됐다.’

‘입시 1번지’ 서울 대치동을 뒤흔든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이같이 판단했습니다. 아버지 현씨의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징역 3년을 확정지으면서입니다. 쌍둥이 자매도 지난해 8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총 네 차례 법원의 판단은 세 부녀가 유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는 여전히 전혀 다른 얘기를 합니다. ‘희대의 부정시험 스캔들’이 아니라 ‘간접 증거만으로 범죄자로 몰린 세 부녀의 이야기’가 진실에 가깝다는 겁니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5-3부(부장 이관형) 심리로 열린 첫 항소심 공판에 출석한 쌍둥이들은 ‘전부 무죄’를 재차 호소했습니다. 변호인들은 오는 6월 공판에선 파워포인트(PPT) 자료로 유죄 판단의 근거를 하나하나 반박하겠다고도 했습니다.

「 형사소송 절차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법정에서 피고인들의 주장을 최대한 펼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법정 연재물 ‘法ON(법온)’을 통해 숙명여고 쌍둥이들의 항소심을 최대한 충실하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 쌍둥이 자매 1심 판결문과 아버지 현씨의 세 차례 판결, 이번 항소심을 시작하며 쌍둥이들이 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서상의 주장들을 비교해 사건의 쟁점을 정리했습니다.


◇‘깨알 정답’은 컨닝페이퍼?

숙명여고 시험문제지 유출 사건 수사 결과가 발표된 지난 2018년 서울 강남구 숙명여자고등학교 앞에서 공교육살 리기학부모연합 등 학부모단체 대표 등이 숙명여교 교장과 교사의 성적조작 죄 인정 및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우선 1심의 주요 판단 가운데 쌍둥이들이 시험지·수기 메모장에 적어둔 ‘깨알 정답’ 부분을 볼까요. 편의상 언니를 A, 동생을 B라고 지칭하겠습니다.

“A의 2017년도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영어독해와 작문 과목에서 시험지 22번 문제 옆부분에 4줄의 숫자열을, 가정과학 과목 시험에서도 시험지 19번 아랫부분에 3줄의 숫자열을 작고 연한 글씨로 적어두었으며…B의 수기 메모장에는 2018학년도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의 전 과목에 관한 정답이 기재 돼 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살피건대 반장이 실제로 불러준 답과 피고인들이 적은 숫자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고 오히려 그 부분이 사전에 제출된 정기고사의 모범 답안과 일치하는 점…피고인들이 시험 전에 알게 된 정답을 외워 뒀다가 이를 잊지 않기 위해 시험지에 기재했다고 보는 것이 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된다.”
아버지 현씨의 재판에서도 이 ‘깨알 정답’이 유죄의 근거가 됐습니다. “B는 자연계열 문학Ⅰ과목 서술형 문제 3번 ㉮의 답안을 수기 메모장에는 ‘기표를 위한’이라고 적었는데, 반장이 불러준 실제 모범 답안은 ‘순수한 마음으로 기표를 도와주는’이었다” 며 “반장이 불러준 것을 적은 것이 아닌 게 확실하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쌍둥이 측은 법원이 간접 증거 중 본인들에 유리한 내용은 배제했다고 반박합니다. “사건이 세간에 알려질 때부터 언론에 자극적인 내용만 보도됐고,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법원은 피고인들에게 불리한 정황증거만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일례로 A의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지구과학 시험지에는 11~28번까지의 정답만 적혀 있고 1~10번의 답은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영어 시험지에는 21, 22번 답은 빼고 나머지만 기재돼 있다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 변호인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미리 외운 답안을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적었다면 중복하거나 빠뜨리고 적는 게 부자연스럽다. 오히려 반장이 불러주는 답안을 적고, 일부는 (적지 않고) 눈으로 확인했다는 쌍둥이의 해명이 자연스럽다.”
B의 경우 2학년 1학기 미술 과목 ‘깨알 답안’은 포스트잇에 적혀 있었는데, 답안 옆에는 “미술~오우 예~100점”이라는 내용도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변호인은 이 부분 역시 이렇게 주장합니다.

“유출 답안을 적어놓은 메모지에 굳이 다시 채점 소감을 기재해놓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반장이 불러준 답을 적어 놓았다가, 자신의 답안과 대조해본 뒤 소감을 적었다고 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
시험 성적이 좋게 나오자 “쌤에게 감사하다고 연락드려라”는 아버지 현씨와 A의 대화도 “사전에 정답을 유출한 사람들의 반응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변호인들의 주장입니다. 쌍둥이 측은 “해당 문자 대화는 검찰이 찾아 법정에 제출하기 전까지는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던 내용”이라고도 했습니다.


◇정정 전 오답은 우연?

쌍둥이 딸에게 정기고사 시험 답안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현모씨. [뉴시스]

쌍둥이들이 정정 전 ‘오답’을 적어내 의심을 샀던 부분도 1심 법원은 모두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B의 2018년도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자연계열 화학Ⅰ의 ‘서술형 문제 1번 (2)’의 시험 직전 수정이 이뤄지기 전 답안은 ‘10:11’이었습니다. 해당 답안을 적어낸 건 전교에서 한 명뿐이었는데, 공교롭게도 B였습니다. 법원이 답안 유출이라고 판단한 결정적 근거가 됐습니다.

1심은 “해당 문제 출제자인 화학 교사는 특별한 이유없이 단순 오기로 정답을 잘못 기재했다고 진술했다”며 “피고인들이 교내 정기고사에서 정정 전 정답을 쓴 경우가 변호인들 주장에 의하더라도 최소 6건 이상이라 우연으로 보기에는 적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현씨 판결도 이 부분에 주목했습니다. “피고인과 변호인의 주장은 이해할 수 없는 정정 전 정답 기재 사유를 억지로 맞추는 추상적인 가능성의 주장에 불과하다”고 봤습니다.

반면 쌍둥이들은 “간단한 서술형 답안을 틀린 적도 있고, 수학 답안의 경우 값은 같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재한 서술형 답도 있었다”며 법원이 쌍둥이들에게 불리한 증거만 주목했다고 반박합니다. “똑같은 답안을 입수하고도 여러 공통 과목에서 A와 B가 적어낸 정답이 다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도 했습니다. 직접 푼 게 아니라면 굳이 여러 형태의 정답을 고안할 이유가 있느냐는 겁니다.

또 쌍둥이들은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수학시험의 정답이 정정되자 억울해하면서 “교육청에 알리자”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변호인들은 “피고인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면 교육청에 이를 알리자는 대화를 감히 어떻게 나눴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급격한 성적 상승은 이례적인가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에게 거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 뉴스핌]

쌍둥이의 1심 판단은 아버지 현씨 판결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변호인들은 숙명여고를 포함한 주변 10여개 여고의 3년간 재학생 성적 상승 사례에 대한 사실조회를 요청했는데, 재판부는 그 결과를 오히려 아버지 현씨의 유죄 판단 근거로 삼았습니다.

1년 만에 중상위권에서 전교 2등으로 올라간 사례가 C여고 딱 한 명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성적 향상은 ‘매우 이례적’이고, 쌍둥이들의 실제 실력이라기보다 외부 요인이 더해진 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쌍둥이들은 자력으로 성적을 끌어올렸다는 주장을 고수합니다. 쌍둥이들은 시험 전날까지 예상 문제들을 문자 메시지로 주고받거나,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답안을 입수했는데 시험에 나오지도 않을 문제를 밤늦게까지 풀며 시간을 허비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게 변호인들의 주장입니다.

또 법정에서 “쌍둥이들이 성적을 낼 실력이 된다”고 증언한 증인들도 있었는데, “실제 실력은 성적에 못 미친다”는 증언들만 채택된 것도 부당하다는 입장입니다.


◇복사ㆍ촬영 흔적 없는 유출 사건

서울중앙지법 전경. [뉴스1]

이 사건의 특이한 점은 결정적인 물증이 나오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아버지 현씨가 교무실에서 답안을 유출했다면 이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었다거나, 복사기로 복사한 내용이 있어야 하는 데 그게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현씨의 3심 판결문은 물론, 쌍둥이 1심 재판부조차 “간접 증거에 의한 판단”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아버지 현씨의 유죄 판단을 확정지으며 “원심이 형사재판에서 유죄 인정에 필요한 증명의 정도, 간접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쌍둥이 1심 재판부도 “피고인들이 사전 유출로 보이는 여러 행동을 했으며, 아버지 현씨는 출제 서류에 접근했고 아버지 외에 쌍둥이가 답안지를 다른 경로로 입수했을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현씨의 주거지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문서 파쇄기도 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대해 쌍둥이 측은 “50세가 넘은 미술 교사였던 아버지 현씨가 어떤 방법으로 언제 유출했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반박합니다. 특히 전과목의 서술형 답안을 짧은 시간 외우거나 동료 교사의 눈을 피해 수기로 베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쌍둥이들은 또 1학년 2학기부터 2학년 1학기 중간ㆍ기말고사의 ‘전과목 유출’이 인정됐는데, 답안 유출의 흔적이나 의혹이 제기되지 않은 과목들도 포함됐다고 주장합니다. 변호인들은 “특정 과목의 유출이 명백히 인정된다면 전과목 유출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을 법원이 한 셈인데, 이는 증거재판주의를 위반한 것이고 위법한 사실 인정”이라는 입장입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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