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천안함 폭침 아닌 좌초" 나랏돈으로 이걸 캐려했다
신씨 주장 반영해 "부검 군의관 참고인 조사"
"실무자 서명 규정 어기고 조사계획서 작성"
당초 '진정 반려' 통보 사실도 문건으로 드러나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의 '천안함 재조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신상철씨(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ㆍ당시 민주당 추천)가 주장해온 '좌초설'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조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18일 드러났다.
규명위가 국민의힘 하태경ㆍ한기호 의원에게 제출한 '조사개시 결정안'(지난해 12월 14일 작성)에 이런 내용의 '조사계획서'가 담겼다. 계획서에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 잠수정 어뢰 공격으로 인한 폭발에 의한 것인지, 좌초 후 충돌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 검증 및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적혀 있다. 이는 천안함 폭침 사건(2010년 3월 26일) 이후 신씨가 11년간 펼쳐온 ‘음모론’을 나랏돈(국방부 예산)을 들여 재조사하려 했다는 의미다.
또 계획서는 "천안함 생존 장병과 사건 당시 부검 군의관 등을 참고인으로 조사할 예정"이라고 명기했다. 이 역시 "군의관 시신 검안 보고서에는 46명 전원 사인이 '익사'로 돼 있어 어뢰 폭발로 사망했다는 것은 논리상 타당하지 않다"는 신씨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규명위의 서모 조사총괄과장과 나모 조사기획팀장이 작성한 이 계획서는 고상만 사무국장과 탁경국 상임위원이 결재해 위원회에 보고됐고, 이를 토대로 '조사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이와 관련, 규명위 조사과장을 지낸 김영수 청렴사회를 위한 공익신고센터장은 "규정상 실무를 담당한 조사관 2명이 서명하게 돼 있고, 그렇지 않은 조사계획서는 본 적이 없다"며 "이런 정황을 볼 때 내부 실무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규명위 일부 간부들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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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인 요건 안돼→진정인 자격 있음 번복
규명위가 당초 내부 법률 검토를 통해 신씨의 진정을 반려한 사실도 문건으로 확인됐다.〈중앙일보 4월 6일자 6면〉 규명위가 신씨에게 보낸 '진정서 반려 안내 통지문'에는 진정 신청 3일 뒤인 지난해 9월 10일 조사총괄과 법무팀이 작성한 '법적 검토' 결과가 첨부돼 있다. 이 서류는 "(신씨가) 진정인의 요건을 갖추지 않았고, 진정 사유로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고 의심되는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진정 사유와 관련해선 "국방부에서 민군합동조사단(2010년 3월 31일)을 구성해 조사결과를 발표(2010년 5월 20일)한 사안"이라고 명시했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반려 통지서는 이인람 규명위 위원장 명의로 신씨에게 발송됐다.
그런데 진정이 접수된 이후엔 같은 사안을 놓고 규명위의 판단이 달라졌다. 사전조사를 맡았던 규명위 조사기획팀이 작성한 '천안한 진정사건 처리방안 검토 보고서'(지난해 12월 7일 위원장 보고)에선 신씨를 두고 "군의관, 생존자(목격자) 등으로부터 사고사(폭발) 처리 관련 합리적 의심 정황을 인지한 자"라며 "군사망사고를 목격한 사람에게 그 사실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사람에 해당한다"고 적었다. 즉 신씨가 진정인으로 적격하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국가인권위원회 등 다른 조사기관은 제3자 진정에 대해 피해자가 조사를 원하지 않는 경우 각하하도록 돼 있으나, 규명위는 이와 같은 규정이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런 규명위의 해석에 대해선 천안함 전사자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이 강력히 규탄하며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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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정 때 '천안함 사건'으로 보고
신씨의 진정이 반려된 뒤 다시 접수 처리되는 과정도 석연치 않다. 규명위가 한기호 의원에게 서면 답변한 자료에 따르면 신씨는 반려 통보를 받은 이후 진정에 대한 아무런 보완 조치를 하지 않았다. 다만 규명위의 모든 진정 접수가 공식 마감되고 한 달 뒤인 지난해 10월 14일에야 신씨가 진정 접수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고상만 사무국장은 중앙일보에 "내가 신씨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튿날 이를 보고받은 이인람 위원장 등이 접수를 처리토록 지시했다는 것이 규명위의 해명이다.〈중앙일보 4월 12일자 10면〉
한편 규명위 속기록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4일 조사개시 결정을 한 정기 회의 때 '천안함 사건'으로 보고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위원 7명(위원장, 상임위원 포함) 중 사전에 이를 보고받지 않았던 비상임위원 5명이 이를 눈여겨보지 않고 간과했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당시 속기록에는 "○○○ 외 45명 사건에 대한 조사개시 결정안"이라며 "이 사건은 일명 천안함 사건으로서 희생자가 상당수 나온 사건이고 본 건 진정인은 특별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진정인 적격이 갖춰져 있다"고 적혀 있다. 규명위 위원들은 언론 보도(중앙일보 4월 1일자 12면)로 관련 사실이 알려지자 지난 2일 위원회 긴급회의를 열고 천안함 재조사를 각하 처리했다.
김상진ㆍ박용한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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