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공 마지막 길, 여왕 처음으로 약한 모습 보였다"

정은혜 2021. 4. 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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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 홀로 앉아 힘겹게 배웅
가족 30명만 참석, 영국 1분간 묵념
여왕 화환엔 '당신의 사랑 릴리벳'
국방색 운구차 필립공 20년전 기획
운구 행렬이 런던 교외 윈저성 내 성조지 예배당에 들어서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필립공(에든버러 공작)이 73년간 부부의 연을 맺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배웅을 받으며 지난 17일(현지시간) 영면에 들어갔다. 장례식이 치러진 이날 오후 3시 영국 전역은 1분간 침묵했고 예포가 발사됐다. 여왕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힘겹게 걸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오랜 통치 기간,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영국의 기둥으로서 국민에게 환호받는 모습을 보여주던 여왕이 아마도 처음으로 많은 사람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런던 교외 윈저성 내 성조지 예배당에서 열린 필립공의 장례식은 코로나19 사태로 조촐하게 치러졌다. 직계가족과 친척 등 30명만 참석했고 인파가 몰릴 수 있는 행사는 생략됐다. 장례식은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됐다.

필립공은 20여 년 전부터 자신의 장례식을 기획해 왔다. 필립공이 국방색으로 직접 개조한 랜드로버 디펜더가 관을 실었다.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왕자, 해리 왕자 등 직계 가족 9명이 해병대 호위를 받으며 8분간 영구차를 따라 걸었다. 여왕은 그 뒤에서 차량으로 이동했다.

17일 부군 필립공 장례식에 홀로 떨어져 앉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AP=연합뉴스]

생중계 화면에는 필립공과 여왕의 장남인 찰스 왕세자가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미국에 머물면서 왕실의 인종차별 의혹을 제기했던 해리 왕자도 자리해 윌리엄 왕자와 나란히 걸었다. 이날 왕실 남성들은 장례식 전통대로 제복을 입지 않았다. 왕실을 떠나면서 제복을 입을 수 없게 된 해리 왕자를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여왕은 운구 행렬이 끝난 뒤 차량에서 내리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힘겨운 걸음걸이로 예배당에 들어가 자리에 홀로 앉은 모습이 세계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고 WP는 전했다. 그동안 필립공이 앉았던 여왕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윈저 주임사제 딘 데이비드 코너는 “우리는 필립공의 여왕을 향한 충성과 국가·영연방을 위한 봉사, 그의 용기와 신앙에 영감을 받았다”는 짤막한 메시지를 전했다.

필립공의 관은 여왕의 남편이자 그리스·덴마크 왕실, 영국 해군인 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꾸며졌다. 관을 덮은 필립공의 왕실 기(旗)는 덴마크 왕실의 국장과 그리스 국기 속 십자가, 마운트배튼 가문을 상징하는 흑백 세로 줄무늬와 에든버러성을 형상화한 이미지가 담겼다. 관 위에는 해군모와 검, 여왕이 놓은 흰 장미와 백합, 재스민 화환이 올려졌다. 화환과 함께 자필 카드도 올라갔다. BBC의 해설 방송에 따르면 카드에는 "사랑하는 고인을 기리며(In loving memory)”라고 적혀 있다. 100세 생일을 두 달 앞두고 지난 9일 별세한 필립공은 윈저성 내 성조지 예배당 지하의 왕실 묘지에 안치됐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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