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못할 것 좇는 무한한 확장성.. 과학과 연극은 닮았어요"
연출가 전인철(46)이 이끄는 극단 돌파구가 지난 2월부터 매달 관객과 만나고 있다. 2월엔 ‘돌파구 우주극장- SF 낭독공연’이라는 타이틀로 전인철의 ‘최후의 지구인’과 김유림 연출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선보였다. 일본과 한국의 SF 소설가 호시 신이치와 김초엽의 단편소설들을 뽑아서 낭독극으로 선보인 것이다. 특히 전인철은 지난달 청소년극 ‘날아가 버린 새’의 재공연에 이어 오는 20~25일엔 김보영의 SF소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를 무대화한 동명 연극을 선보인다. 코로나19로 연극계가 주춤한 상황에서 돌파구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전인철은 지난 15일 “코로나19 상황에서 공연을 올리는 것 자체가 대학로의 작은 극단엔 위험부담이 크다”면서도 “무대에 대한 극단 배우들의 갈망을 보면서 작게라도 자리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인철은 근래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출가 가운데 한 명이다. 2006년 ‘고요’로 데뷔한 이후 ‘시동라사’ ‘순우삼촌’ ‘목란언니’를 비롯해 ‘노란봉투’ ‘XXL레오타드 안나수이손거울’ ‘피와 씨앗’ ‘국부’ ‘나는 살인자입니다’ 등 다양한 작품을 연출했다. 2012년 ‘목란언니’, 2014년 ‘노란봉투’, 2017년 ‘나는 살인자입니다’는 그에게 여러 연극상을 안겨줬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연출하는 그이지만 2016년 이후 과학과 SF에 관한 관심을 부쩍 드러내고 있다. 군 제대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공부하기 전에 설계도면을 그리는 일을 하는 등 이과 출신이라서 그런 걸까.
“인터파크와 재단법인 카오스가 2016년 빛과 뇌를 테마로 두 차례의 과학콘서트를 개최했어요. 김상욱 정재승 등 과학계 석학들이 참가했는데, 제가 두산아트센터 추천으로 공연을 연출하면서 ‘과학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철학’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후 과학과 SF에 관한 관심이 생겨서 공부하게 됐습니다. 그때 호시 신이치도 알게 됐어요.”
호시 신이치(1926~1997)는 일본 SF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다. 단편소설보다 짧은 ‘쇼트 쇼트’(short-short) 형식의 개척자로 그의 작품은 우화적 요소와 냉소적 위트로 가득하다. 전인철은 2017년 국립극단에서 호시의 작품 가운데 8편을 재구성한 옴니버스 연극 ‘나는 살인자입니다’를 올려 호평받았다. 이 작품은 2019년 일본에도 초청돼 도쿄예술극장에서 공연됐다.
“과학에선 무한히 확장된다는 점이 극장 공간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과학은 인간의 감각으로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좇는다고 생각해요. 극장도 인간의 감각을 벗어난 곳을 그리거든요.”
시각적 스펙터클에 익숙한 관객, 특히 젊은 층에 SF를 무대 문법으로 흥미 있게 풀어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어 이번에 선보이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의 원작소설은 남자 주인공이 다른 행성에 사는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우주를 떠돌며 쓴 편지 15통으로 구성된 서간체 형식이다. 그는 “공연이 올라가는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의 두 면에 영상을 쏘고 다른 두 면은 거울을 부착함으로써 관객이 우주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체험하게 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전인철이 연극과 관련해 과학과 SF에 관한 관심만큼 천착하는 테마는 청소년이다. 청소년극 ‘XXL레오타드 안나수이손거울’ ‘날아가 버린 새’로 호평받았지만, 그는 청소년들을 만날수록 자신을 포함한 기성세대가 그들을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그동안 청소년극이 청소년의 성장을 다뤄왔는데, 요즘 청소년에겐 공감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른에 대한 청소년세대의 반감을 볼 때 미래에는 뜨거운 갈등과 대립이 예상돼요. 한국 사회가 당면할 잠재적 폭탄이 째깍거리는 느낌이에요.”
우연한 계기에서 출발했지만, 과학과 청소년은 전인철이 매진할 화두다.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연극 형식의 실험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코로나로 많은 것이 중단되면서 역설적으로 우리가 모두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깨달았다”며 “지난해 말 ‘XXL레오타드 안나수이손거울’을 재연하면서 배우들이 무대에서 퇴장하지 않도록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여하는 연극인 셈이다. 앞으로 작업에서도 시도해볼 예정인데, 하나의 연출 형식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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