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먼저' 백신 이기주의.. 한국은 접종률 126개국 중 92위
각국의 코로나19 백신 수급 상황이 세계질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정 백신을 개발한 주요 강대국이 자신들이 개발했으니 먼저 공급받겠다는 ‘선점논리’를 내세우면서 국가 간 ‘백신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지는 모양새다. 아스트라제네카(AZ)와 얀센 백신에서 혈전 생성 등 부작용이 보고되면서 아직까지 별다른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은 모더나와 화이자 백신의 희소성이 높아진 탓이다. 한국도 위탁생산 체계를 시급히 갖춰 백신접종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민일보가 18일 전 세계 코로나19 백신 생산량을 종합해보니 G2(미국·중국) 등을 포함한 강대국이 개발과 생산, 유통 과정을 독점하고 있었다. 영국 과학정보 분석업체 에어피니티에 따르면 이날까지 전 세계 코로나19 백신 생산량은 11억4200만여 도즈 수준으로 추산됐다.
국가별 생산량을 보면 5개국(지역)에 전체 생산량 대부분이 쏠려 있다. 에어피니티는 지난 15일까지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중국 인도 5곳이 최소 9억9000만 도즈 이상을 생산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들 5곳이 전 세계 백신 생산량의 87%를 차지하는 것이다. 미국 의학전문매체 악시오스는 “한국을 포함해 러시아 스위스 브라질에서도 백신이 생산되지만 5개국에 비해선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적다”고 분석했다.
주요 강대국의 백신 수출 물량은 소량이다. 미국은 2억3800만 도즈 중 300만 도즈만 수출한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생산량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EU 역시 전체 생산량의 36%를 조금 넘는 7000만 도즈만 수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국가는 최근 AZ와 얀센 백신에서 혈전이 만들어진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즉각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의 주문을 늘렸다. 두 백신은 모두 미국과 유럽 제약사들이 개발했다.
중국은 전체 생산량의 절반 수준인 1억6600만 도즈를 수출했다. 중국은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 37개국에 백신을 기증하고 70여 개국과는 공급 계약을 맺었다. 남미에 있는 가이아나는 중국이 백신 기증을 결정한 직후 대만과 체결한 대표사무소 설치 협정을 파기하기도 했다. 에어피니티는 “주요 선진국이 ‘백신 선점논리’를 내세우는 동안 개발도상국은 중국에 백신을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백신들의 ‘생산거점’이 유럽과 북미에 쏠려 있는 것도 백신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로 꼽힌다. 미국 듀크대 건강혁신연구소는 주요 5대 백신(AZ, 화이자, 모더나, 얀센, 노바백스)의 생산거점 74곳 중 유럽과 북미에 있는 공장이 59곳으로 전체의 79.7%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아시아에는 12곳이었고, 남미는 2곳, 아프리카는 단 1곳에 불과했다.
아시아 생산거점 12곳 중 한국 내 거점은 2곳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경북 안동에서 6월 출시되는 노바백스 백신을 위탁생산할 예정이고, GC녹십자는 모더나 백신의 국내 유통과정을 전담하고 있다. AZ 백신의 경우 SK바이오사이언스가 위탁생산하고 있지만 국내 공급과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선진국이 백신을 독점하면서 국가경제 규모별로 마련한 백신들도 제각각이 됐다. 듀크대 건강혁신연구소는 지난 16일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GNI) 1만2536달러 이상의 선진국이 모더나 백신의 97.1%를 구매했다고 집계했다. 화이자 백신의 경우 73.4%를 독점했다.
이에 반해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은 1인당 GNI 1035달러 이상 4045달러 이하 하위중소득국이 전체의 69.5%를 구매했다. 중국 시노팜 백신도 같은 소득수준의 국가들이 56.22%를 구매했다.
이렇다보니 주요 강대국의 ‘특정 백신’ 수급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집계에 따르면 17일 오전 6시(현지시간) 기준으로 미국에서 코로나19 백신을 1회 이상 접종받은 인구는 1억2800만여명에 달한다. 접종 가능 인구의 49.7% 수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화이자 백신이 1억708만여회가 사용됐고 모더나 백신도 9071만회분이 쓰였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도 화이자 백신 5000만회분을 계약보다 2분기 빠른 올해 2분기에 받을 계획이다. 주요 외신들은 “다음 달 말까지 백신 생산량이 20억 도즈를 넘길 것으로 보이지만 추가 생산량의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에 우선 공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예측했다.
백신이 보여주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은 국제위상에 걸맞은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5대 백신을 골고루 계약하긴 했지만, 선진국에 밀려 수급이 늦어지면서 접종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가 매일 집계하는 ‘전 세계 백신 접종 추적’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17일 현재 인구 100명당 3명의 접종률을 보이고 있다. 추산할 수 있는 126개국 중 92위권 수준이다. 2회 이상 접종한 완전접종률은 0.1%다. 한국보다 접종속도가 느린 뉴질랜드(2.2명)와 페루(2.1명)도 완전접종률은 각각 0.6%와 1.5%로 우리보다 높다.
경제규모에 비해서도 한국의 백신 접종률은 낮다. NYT가 자체적으로 집계한 고소득 국가 48개국 중 한국의 100명당 접종속도는 44위 수준이다. 우리나라보다 뒤처진 나라들은 뉴질랜드와 일본, 트리니다드토바고와 모리셔스 정도다.
정부도 뒤늦게 해외 백신 위탁생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보건당국은 국내 한 제약사가 8월부터 해외 백신을 위탁생산할 수 있는 내용의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이 해외 백신을 모더나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접종 중 부작용이 덜 드러난 백신을 위탁생산하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라면서 “외교적, 경제적 거래를 통해 해외 백신 생산기술을 습득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윤태 정우진 임송수 기자 trul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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