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협약 주역 "기후변화 시대 키워드는 나무, 자연의 힘 키워야"

김정연 2021. 4. 1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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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UNFCCC 사무총장 피게레스 인터뷰
22일 기후정상회의 앞서 기후 위기 조언
2017년 방한 당시 중앙일보와 인터뷰 가진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전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중앙포토

"제가 사는 이곳에도 숲이 마르고, 농사에 쓸 물도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못한다면 농사를 계속하기 어려워질 겁니다."
코스타리카 출신인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65) 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를 몸으로 느낀다고 했다. 그는 "미국 워싱턴 DC의 벚꽃도 원래보다 일찍, 더 많이 핀다고 한다"며 "코스타리카도 기온 상승으로 산의 나무가 자라는 한계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22일 기후정상회의에 "청정 경제로 가야" 조언

피게레스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UNFCCC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2015 파리협약'을 이끌었다. 사진 UNFCCC

피게레스는 2015년 UNFCCC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195개국이 참여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이끌었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2도 내로 억제키로 한 파리협약은 인류가 기후 변화에 대응하려 맺은 가장 강력한 약속으로 꼽힌다. 2017년엔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단체인 글로벌 옵티미즘을 설립하고, 아마존·버라이즌 등 민간 기업들의 탄소 배출 감소도 독려했다.

오는 22일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도로 기후정상회의가 열린다. 기후 위기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각국 정상들이 머리를 맞대는 자리다. 중앙일보는 회의에 앞서 파리협약 주역인 피게레스에게 현 상황과 미래 전망을 물었다.

그는 "지금은 정책, 기술, 대중의 공감 등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모든 것이 갖춰진 타이밍"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깨끗하고 더 안전한 탈 탄소 경제로 나아갈 동력은 확실히 갖춰졌다. 이제 각국이 청정 경제, 그리고 다음 단계의 경제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가올 기후 변화 적응기는 '나무'의 시대
피게레스가 생각하는 기후 위기의 키워드는 뭘까. 그는 '나무'를 내세운다. 지난 2월 국내에 번역 출간된 저서 『한 배를 탄 지구인을 위한 가이드』에 산업혁명시대 '석탄'이 키워드인 것과 달리,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시대엔 나무가 새로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썼다. 이른바 석탄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피게레스는 "나무는 사바나와 늪지 등 모든 생태계를 아우른 표현이다. 결국 자연 생태계를 전반적으로 회복시켜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시스템 전환이 새 시대의 큰 화두다. 하지만 자연이 탄소를 흡수하고 스스로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동시에 진행돼야 할 근본적 해결책이다"고 강조했다.


2021년은 기후 위기서 중요한해 "美 역할 크다"
올해는 특히 기후 위기 대응에 있어 중요한해다. 6년 전 맺은 파리협약을 얼마나 잘 이행했는지 전 세계 국가가 모여서 점검을 하게 된다. 올 11월 UNFCCC 총회에선 2030년,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전략이 새로 논의될 예정이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최종 합의안이 결정된 후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당시 UNFCCC 사무총장, 반기문 당시 UN 사무총장, 로랑 파비우스 당시 프랑스 외무부장관,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환호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이를 위해선 선진국, 그중에서도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번 기후 회의는 바이든 대통령이 주도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기엔 파리협약 탈퇴 등 환경 문제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피게레스는 "미국은 그나마 민간과 시민사회에서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꾸준히 해온 덕분에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곧바로 정책 전환이 가능했다"면서 "기후 위기 대응의 국제적 공조에는 리더쉽이 필요하다. 모든 나라가 노력했지만 결국 미국이 이번 기후정상회의를 이끌었지 않나"라고 말했다.

개발도상국엔 탈 탄소 패러다임이 '반전 카드'가 될 수도 있다. 그는 "화석연료 인프라가 적은 개도국엔 지금이 오히려 기회다. 탄소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건너뛰고 최신 기술의 재생에너지를 도입할 타이밍"이라면서 "지난해 재생에너지 공급이 엄청 늘면서 값이 싸졌다. 앞으로 점점 더 공급이 늘게 되면 어떤 화석 연료보다 더 싼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韓 '탄소 중립' 선언 좋지만 석탄발전 중단해야"

22일 기후정상회담을 앞두고 방한한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가 17일 한정애 환경부장관과 면담을 가졌다. 연합뉴스

피게레스는 한국의 탈 탄소 정책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한 건 훌륭한 결정이었다. 다만 2050년 목표 지점에 더해 이제는 2030년, 2035년 등 단기적 목표도 구체적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석탄 사용을 완전히 끝낼 수 있는 나라다. 20세기 기술은 이제 그만 쓰고 21세기에 경쟁력 있는 기술을 사용하는 에너지 구조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며 석탄발전 중단을 강하게 요구했다.


"기후변화, 내 세대 못 풀어도 방향 전환은 해야"
그에겐 30대 딸이 둘 있다. 그중 한 명은 투자 분야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노력한다. "두 딸 모두 기후변화를 매우 걱정한다. 그들의 삶이 영원히 영향받을 걸 알고 있고, 많은 준비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고 전했다.

기후변화의 해답도 그의 두 딸 같은 '미래 세대'를 생각하는 데 있다고 했다.
"우리는 아직 기후변화에 늦게 대응하고 있어요. 기후위기를 피할 새도 없이 그대로 맞게 될 미래세대를 생각하면 이건 세대 간 연대로 함께 풀어야 할 문제인데, 내 세대에서 풀지 못하더라도 방향 전환은 꼭 해놓아야 합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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