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살 때마다 교장에 신고하냐" 교사 95% 재산등록 반대
“민주주의 국가가 맞나 싶다.”
인천의 한 중학교 A교사는 정부가 추진 중인 교원의 재산 등록 의무화와 관련된 기사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공직자 부동산 투기 대책이라지만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범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A교사는 “부동산 투기와 별로 관계없는 교사들까지 감시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재산 공개가 범죄에 악용되거나 교권침해와 같은 부작용으로 이어질까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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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 재산 등록 둘러싼 갈등 커질 듯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악화되자 지난달 29일 재산등록 대상을 전체 공무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교원의 95%가 정부의 ‘재산 등록 의무화’에 반대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가 18일 공개한 교원 6626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5.2%(6306명)가 정부의 교원‧공무원의 재산 등록 의무화에 반대했다. 전체 교원과 공무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매도해 사기를 저하시키고(65.4%, 복수응답),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책임을 교원‧공무원에게 전가한다(60.9%)는 이유다.
설문조사에서 교사 88.3%는 재산등록제가 사실상 재산 공개나 다름없다고 답했다. 앞서 인사혁신처가 “재산등록제는 재산을 등록하는 것이지 공개하는 게 아니다”고 했지만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교사들은 재산 등록 과정에서 학교 관리자,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이 알게 되기 때문에 사실상 공개와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다.
정부가 해야할 일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87.3%(복수응답)가 전체 교원‧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재산등록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고 답했다. ‘차명 투기 적발 강화 등 실효성 있는 투기 근절안 마련’(73.5%)과 ‘부동산 투기 공직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32.4%) 등이 뒤를 이었다. 하윤수 한국교총 회장은 “정부와 여당은 더 이상 교원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말고 재산등록 추진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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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육연맹 “유례없는 일” 우려
세계 최대 교원단체인 세계교육연맹(EI‧Education International)도 한국의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교원‧공무원 재산 등록에 우려를 표했다. 데이비드 에드워즈 EI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한국교총에 보낸 서한에서 “모든 공무원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의무 재산등록제도를 도입하겠다는 한국의 계획에 우려를 표한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교사 등 일반공무원에게 (재산등록을) 적용하는 경우는 들은 바 없다”고 했다. EI에는 전세계 178개국, 384개 교원단체‧노조가 소속돼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교사노조연맹도 반발하고 있다. 전교조는 “하위직 공무원까지 재산등록을 하겠다는 발표를 들으며 우리는 부동산 투기의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에 허탈함을 느낀다”고 했다. 교사노조연맹도 “부동산 재산등록 범위는 부동산 관련 업무 공직자와 고위직 공무원, 선출직 공무원으로 한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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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살때마다 교장에게 신고하란거냐”
하지만 교원의 재산 등록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2일 공직자와 그의 배우자, 직계존비속이 토지‧주택 등 부동산 매매거래를 하는 경우 소속 기관장에게 사전 신고토록 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법이 통과되면 앞으로 집을 살 때마다 교장에게 신고하라는 건데, 명백한 사생활 침해”라며 “정부가 잘못한 일을 교사에게 떠넘기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한국교총은 지난 이달 30일까지 전국 유‧초‧중‧고 교사와 대학 교원, 예비교원을 대상으로 정부의 교원 재산등록 방안을 철회시키기 위한 청원 운동을 진행 중이다. 김동석 한국교총 교권복지본부장은 “현재까지 6만명 가까이 동참했다”며 “여당‧정부가 교직 사회의 뜻을 무시하고 강행한다면 교원·공무원 단체와 함께 강력하게 반대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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