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보인 약한 모습"..英 여왕의 힘겨운 필립공 배웅
필립공(에딘버러 공작)이 17일(현지시간) 영면에 들어갔다. 장례식이 치러진 이 날 오후 3시 영국 전역은 1분간 침묵했고 예포가 발사됐다.
73년 간 부부의 연을 맺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힘겹게 걸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오랜 통치 기간,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영국의 기둥으로서 국민에게 환호받는 모습을 보여주던 여왕이 아마도 처음으로 많은 사람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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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직접 준비해온 필립공
런던 교외 윈저성 내 성조지 예배당에서 열린 필립공의 장례식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조촐하게 치러졌다. 직계 가족과 친척 등 30명만 참석했고 인파가 몰릴 수 있는 행사는 생략됐다. 장례식은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됐다.
필립공은 20여년 전부터 손수 자신의 장례식을 기획해왔다. 자신의 관을 운구할 영구차는 랜드로버 디펜더를 국방색으로 도색하는 등 직접 개조했다. 영구차는 윈저성 내궁에서 출발해 성조지 예배당으로 향했다.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왕자, 해리 왕자 등 직계 가족 9명이 해병대의 호위를 받으며 8분간 영구차를 따라 걸었다. 여왕은 그 뒤에서 차량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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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보인 찰스 왕세자
생중계 화면에는 필립공의 장남인 찰스 왕세자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미국에 머물면서 왕실의 인종차별 의혹을 제기했던 해리 왕자도 자리해 윌리엄 왕자와 한 칸 떨어져 걸었다. 장례식이 끝난 후 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날 왕실 남성들은 장례식 전통대로 제복을 입지 않았다. 왕실과 결별하면서 제복을 입을 수 없게 된 해리 왕자를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운구 행렬이 끝난 뒤 차량에서 내리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힘겨운 걸음걸이로 예배당에 들어가 자리에 홀로 앉은 모습은 전세계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고 WP는 전했다.
그동안 필립공이 앉았던 엘리자베스 2세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코로나19 예방 조치에 따라 거리 두기를 한 것이지만, 찰스 왕세자 커밀라 파커 볼스(콘월 공작 부인) 부부,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 등 부부 참석자들은 나란히 앉았다.
예식도 간소하게 치러졌다. 윈저 주임사제 딘 데이비드 코너는 "우리는 필립공의 여왕을 향한 충성과 국가·영연방을 위한 봉사, 그의 용기와 신앙에 영감을 받았다"는 짤막한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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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조화와 자필 카드
필립공의 관은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꽃과 카드, 영국 해군 상징, 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필립공의 왕실 기(旗)로 꾸며졌다. 관을 덮은 필립공의 기는 사분할로 덴마크 왕가, 그리스 왕가, 영국 마운트배튼 가문, 에딘버러 공작을 의미하는 네개의 상징으로 꾸며졌다. 덴마크의 왕실을 나타내는 국장과 그리스 국기 속 십자가, 마운트배튼 가문을 상징하는 흑백 세로 줄무늬와 에딘버러 성(城)을 형상화한 이미지가 들어갔다.
왕실 기 위에는 흰색 해군모와 검, 여왕이 놓은 흰 장미와 백합, 재스민 화환이 올려졌다. 화환과 함께 자필 카드도 올라갔다.
카드에는 필기체로 쓰인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일부 네티즌과 외신은 "당신의 사랑 릴리벳이(Your Loving Lilibet)"라고 적힌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릴리벳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필립공을 처음 만났을 당시 불렸던 어린 시절 애칭으로, 필립공은 최근까지 여왕을 '릴리벳'이라 부를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하지만 BBC의 해설 방송에 따르면 카드에는 "사랑하는 고인을 기리며(In loving memory)"라고 적혀 있다.
100세 생일을 약 두 달 앞두고 지난 9일 별세한 필립공은 윈저성 내 성조지 예배당 지하의 왕실 묘지에 안치됐다. 예배를 마친 뒤 관이 지하실로 이동할 때 여왕은 한 번 더 고개를 숙였다. 예배당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가장 가까운 곳에는 차남인 앤드류 왕자가 자리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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