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편한 곳에 젊은 사람들이 왜.. 장곡면의 비밀
[박진도 기자]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에 도시의 동 지역에서 1년 이상 거주한 사람 중 46만 645명이 농촌(읍면)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귀농·귀촌 인구는 2017년 51만 명을 정점으로 조금씩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귀촌인은 44만 4464명인 반면에 농사 목적으로 귀농한 사람은 1만 6181명에 지나지 않는다. 지자체는 인구 감소에 대응하여 귀농·귀촌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지만 인구감소를 막지 못하고 있다. 귀촌자의 상당수는 직업, 주거 및 생활환경의 편리성, 자연환경이 양호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로, 순수 농촌지역보다는 도시 주변 농촌 지역으로 이주한다.
▲ 초보 농부와 프로 농부의 만남 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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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자 가운데는 언론 등에서 홍보하는 억대 농부를 꿈꾸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은 규모의 농사를 지으며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1인 귀농 가구의 비중 72.4%, 가구주의 평균 연령 55세, 작물 재배 가구의 평균 재배면적 0.37ha"(<2019 귀농어·귀촌인 통계> 통계청)라는 수치에서 보듯 귀농자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농업에만 종사하는 전업 귀농인은 약 70%이고, 30%는 다른 직업을 함께 갖고 있다. 귀농인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은 농촌에 정착하지 못하고 도시로 되돌아간다. 귀농 가구 수 자체도 2017년 1만 2630호에서 2019년 1만 1442호로 줄었고, 귀농 가구의 평균 가구원 수도 1.55명에서 1.42명으로 감소했다.
귀농을 통해 인구 감소를 억제하고 농촌 마을의 활력을 찾을 방법이 없을까. 개인이 단신으로 귀농해서 정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지역공동체가 귀농인을 품어야 하고, 귀농인이 지역에 녹아들어야 한다.
▲ 홍동밝맑도서관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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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 생협 주요 활동 안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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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장곡면의 생활 여건
홍동면에 이웃한 장곡면에도 10여 년 전부터 귀농인이 늘기 시작했다. 장곡면은 인구 3천 명의 전형적인 순수 농촌 마을이다. 장곡면 소재지를 둘러보았다. 홍동면과는 달리 약국·병원·어린이집·편의점·목욕탕·빵집·커피숍·세탁소·문방구·식당 등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생활편의시설이 전무하다.
기껏해야 치킨집과 식당 한 곳, 다방, 미장원 등이 눈에 띄고, 저녁 6시면 문을 닫는 농협 하나로마트가 그나마 고마운 존재다. 여가를 즐길 문화 공간이나 체육 공간을 찾는 건 사치다. 중학교는 2000년대 초에 문 닫았고, 전교생 40~45명의 초등학교 1개가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필요한 생활물자와 서비스를 광천읍이나 홍성읍에서 구매해야 하는데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홍성군 중심지 홍성읍까지는 버스로 1시간 거리이고, 홍성읍까지 가서 소주 한잔하고 기분을 내고 싶어도 대리운전비가 3만 원이니 엄두를 낼 수 없다.
▲ 홍성 유기농 영농조합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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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생소한 유기 축산을 시작했을까. 이를 주도한 정상진 전 홍성 유기농 대표의 말이다.
"유기농업을 하면서 항생제 등 수의약품으로 오염된 축산 분뇨로는 유기농산물을 생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안정적인 유기농업을 위해 경축순환농업(농업인이 가축분뇨를 사용해 작물을 기르고 볏짚 등 작물의 부산물을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는 농업)이 필요했다."
이들 작목반이 바탕이 되어 2005년 생산자 20명이 모여 장곡면에서 홍성 유기농을 창립하였다. 홍성 유기농은 자연순환농업을 실천하며 지역농업공동체를 지향하는 친환경 농산물 생산자 조직이다.
홍성 유기농은 과거에는 축산이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지금은 친환경 채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축산은 무항생제 소와 돼지를 도축하여 소분 포장을 해서 판매하였으나 2020년 초에 중단하였다. 전문 인력을 구하기 어렵고, 선호 부위는 잘 나가지만 비선호 부위는 헐값에 팔아야 했다.
귀농자의 든든한 후원자
홍성 유기농은 주로 친환경 채소와 벼를 취급한다. 또 두부 및 콩나물을 만들어 학교급식에 공급하고, 무항생제 돈육으로 만든 소시지를 온라인 몰과 두레 생협에 판매한다. 자회사인 포어스(For Us)는 조합원들의 유기농 쌀을 원료로 하는 우리 쌀 카레, 우리 쌀 부침가루와 녹차, 초코라테, 유기농 바질 가루 등 분말 가공품을 생산한다.
홍성 유기농 조합원 104명 가운데 53명이 최근 15년 사이에 귀농한 사람들이다. 104명 조합원 가운데 60대 이상은 24%에 지나지 않고, 40대와 50대(61%)가 주축이다. 우리나라 농업 경영주의 평균 연령이 65.6세(2015년 기준)인 현실에 비추어 보면 홍성 유기농은 젊다. 귀농 조합원 대부분은 배우자와 자녀를 포함해 4~5인 가족을 이루어 인구 증가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렇듯 귀농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장곡면에서는 빈집과 농지를 구하기 어렵다.
▲ 홍동밝맑도서관에서 필자(오른쪽)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홍성 유기농의 정상진(왼쪽) 전 대표와 조대성(가운데)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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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대표를 비롯해 귀농 조합원의 대부분은 비싼 임차료를 지불하고 하우스용 농지를 빌리고 있다. 유기농을 위해서는 장기 계약을 해야 하는데 지주들이 원하지 않아 이게 쉽지 않다.
조 대표가 작성한 귀농자 조합원 20명 현황에 따르면 대부분 노지 혹은 하우스에서 채소를 기른다. 농사 규모는 노지냐 하우스냐에 따라 다르지만 대규모 농가는 없다. 하우스의 경우 1~4동(1동은 200평, 2동이 가장 많다), 노지의 경우 적게는 900평 많게는 5500평 농사다. 홍성 유기농 납품액도 1500만 원~4800만 원으로 '억대 농부'는 없다. 이는 납품액 1천만 원 이상인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통계로 조합원의 대부분은 훨씬 영세하다.
▲ 홍성 유기농 영농조합에서 신선 채소를 포장하는 직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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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유기농도 경영상 어려움이 없지는 않다. 총매출은 2005년 6800만 원에서 2007년 16억 5천3백만 원, 2011년 31억 원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으나 최근에는 성장세가 둔화해 34~38억 원 수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직원 20명의 인건비와 농가 생산비가 상승했지만 판매 가격은 그만큼 인상되지 않았고 3~4년 전부터 가공 사업을 시작하여 초기 투자 비용과 마케팅 비용 등이 들어가 몇 년간 적자 경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출자금의 결손도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2020년 축산 부문의 정리로 소폭 흑자가 나서 간신히 숨통이 트였다. 가공 사업이 정상화 되면 흑자 경영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오해
우리나라의 유기농업은 잘못된 소비자 인식과 인증 제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친환경농업육성법이 제도화된 지 20여 년이 지났다. 초기에 소비자들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 '안전한 농산물'로 슬로건을 정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이 발목을 잡고 있다.
친환경농업의 본질은 환경을 살리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드는 것인데 이런 공익성보다 친환경 농산물의 안전성에 소비자들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자의든 타의든 친환경 농산물에서 잔류 농약이 소량이라도 검출되면, 오염된 자연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이해 없이 가차 없이 인증이 취소되고, 언론은 '속았다'고 비난하고, 그 결과 소비자의 신뢰를 잃게 된다.
유기농업이 발전된 유럽이나 미국에서 친환경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 정상진 전 대표의 말이다.
▲ 홍성 유기농의 가공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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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유기농의 조대성 대표는 2018년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 그가 재배하는 상추에서 허용기준치의 1/700의 농약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이유로 유기농 인증을 취소당했다. 그의 상추하우스는 2년 전까지 관행 농법으로 딸기를 재배하던 땅이다. 조 대표는 유기농법으로 농사지어 토질을 개선하고 잔류 농약을 제거했다.
그 결과 2년이 지난 시점에 잔류 허용 기준치의 1/700까지 낮추었는데 땅을 살리기 위한 갖은 고생의 대가가 인증 취소라니.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이래서는 친환경 유기농업이 발전할 수 없다.
장곡면의 사회적 네트워크
홍성 유기농은 장곡면의 다양한 사회 조직과 연대하여 귀농자들이 정착하여 생활할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홍동면의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는 1958년 설립 이후 '위대한 평민'을 교육이념으로 해 지역의 일꾼을 키우고 있다. 2001년 전공부를 설립하여 학생들이 농고 졸업 후 2년간 유기농업을 공부하지만 실제 농사 짓기는 쉽지 않다.
2012년 전공부 교사 정민철 박사가 졸업생 조대성(현 홍성 유기농 대표) 등과 홍성 유기농의 '채담이 농장 하우스' 1동(200평)을 빌려 '젊은협업농장'을 시작하였다. 젊은협업농장은 농사일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실습농장이다.
길게는 2~3년 같이 일하면서 독립해 가는 형태로 운영되는데 짧게는 몇 개월씩 실습하기도 하고 학생들의 농사 체험도 돕는다. 지난 9년간 젊은협업농장을 거쳐 간(3개월 이상) 사람은 대략 50여 명에 달하는데, 그 가운데 12명이 독립해서 유기농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 홍성 유기농은 홍성군의 지역발전투자협약의 지원을 받아 유기농·친환경 생산자 조직화 사업에서 초보 유기농을 위한 멘토링 역할을 담당한다.
젊은협업농장을 모델로 장곡면 내에 '행복농장'이 설립되었다. 행복농장은 2018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의 '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5년간 매년 6천만 원을 받아 지적장애인, 특수학급 및 대안학교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장곡면에 있는 '또래오래'. 동네 주민들이 모여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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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 '일소공도 협동조합'이 최근(2021년 2월) 홍동면에서 장곡면으로 이전해왔다. '일만 하면 소가 되고 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된다'는 뜻의 일소공도 마을학회가 홍동면과 장곡면 주민 그리고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창립된 것은 2017년이고, 그 이듬해에는 마을연구소 일소공도 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일소공도 협동조합은 충남연구원과 협력하여 총 7회에 걸쳐 주민, 공무원, 연구자 등 연인원 530여 명이 참여하는 공동학습회를 진행했고, 핵심 리더 및 그룹 인터뷰, 주제별 간담회, 종합토론회를 거쳐 '장곡면 2030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일소공도 연구소는 장곡면 발전을 위해서는 1. 농업 소득 증대 2. 환경 및 경관 보존 3. 의료복지(노인 돌봄) 4. 청년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정리하고 이 우선순위에 따라 세부 과제를 설정하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지역 스스로 지역의 미래를 설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장곡면 인구는 1966년 1만 4천 명에서 2020년 2915명으로 줄었다. 귀농·귀촌하는 사람이 는다 해도 지난해 전체 인구는 70명 줄었다. 장곡면이 2030 발전계획에 따라 지속가능한 농촌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기본적으로 마을 주민의 자치역량에 달렸지만,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귀농·귀촌하는지도 중요하다. 홍성 유기농 영농조합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이다.
▲ 13차 홍성 유기농 영농조합 조합원 총회(201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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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박진도 기자는 충남대 명예교수로 지역재단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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