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섬, 그곳에 삶이 있다

글 정경숙 2021. 4. 1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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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에 비친 인천 ④] 남촌도림동

'인천, 그림이 되다.' 낡은가 하면 새롭고, 평범한가 싶으면서도 특별한. 골목길만 지나도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도시, 인천. 추억이 그리움으로, 때론 일상으로 흐르는 공간이 작가의 화폭에 담겼다. 그 따뜻하고 섬세한 붓 터치를 따라, 인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이번 호는 노희정 화백이 그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섬, 도시의 '노스탤지어 ; 그리움' 남촌도림동이다. <기자말>

[글 정경숙, 사진 임학현]

 언덕 위의 집 53x33.3cm Watercolor on paper(2000년). 남동구 개발제한구역은 순도 100%의 자연을 품고 있다. 흙길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언덕 위 낮은 집 그리운 고향 풍경이 펼쳐진다.
ⓒ 노희정
공씨네 모여 사는, 찬 우물 마을

봄이 무르익었다. 인천 남동구 수산동의 한 농가 비닐하우스에도 작물이 싱그럽게 자라고 있다. 토마토가 싹을 틔운 지 이제 두 달. 꽃망울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농부의 마음은 분주하다. 며칠 후 꽃이 피면 벌들을 풀어놓고, 줄기를 바로 세우고, 겹 순도 계속 따줘야 한다.

하지만 땅을 밟고 땀 흘릴수록 생기가 도는 것이 농사꾼 아니던가. "열매를 떠올리면 아무리 일해도 힘들지 않아요." 햇살 따사로운 오월이면, 귀한 땀방울이 알알이 탐스러운 결실을 맺을 것이다.
 
 공진균, 방옥애 부부. 그들 꿈이 자라는 온실은, '첨단자동화 온실 설치 시범사업'으로 인천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지원받았다.
ⓒ 임학현 포토그래퍼
공진균(59)씨는 대대손손 수산동에 뿌리내려 왔다. 주발을 엎어놓은 듯 산이 아담하게 봉긋 솟아 있는 동네. 오래도록 터를 잡고 살기 좋아 수산리(壽山里)로 불려왔다. 도심 곁인데 냉정(冷井), 발촌(鉢村), 경신(慶信), 능골 등 자연 부락이 아직 남아 있다.

그가 태어나 살고 있는 '찬 우물', 냉정마을은 곡부공씨(曲阜孔氏) 어촌공파(漁村公派)의 집성촌이다.

"한 가족인데 내 것, 네 것이 어디 있었겠어요.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시제(時祭)를 올리고, 어르신 생신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열었지요.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농사도 품앗이로 지었어요."

하지만 어른들이 하나둘 세상을 등지고 이웃들도 동네를 떠나갔다. 농가가 사라진 자리엔 외지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그렇게 고집스럽게 전통을 이어가던 집성촌도 어느덧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게 됐다. 고른 한낮, 어디선가 때아닌 닭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공진균, 방옥애 부부. 그들 꿈이 자라는 온실은, '첨단자동화 온실 설치 시범사업'으로 인천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지원받았다.
ⓒ 임학현 포토그래퍼
가을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

개발의 강풍에서 비껴간, 도시의 섬. 길이 없으니 차도 다니지 않았다. 30여 년 전, 아내는 털커덩털커덩 경운기를 타고 경기도 화성에서 이 마을로 흘러들어왔다. 방옥애(58)씨는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며 농부의 아내로 살아갈 생각에 마음 조였다. 하지만 자연의 들숨과 날숨에 호흡을 맞추며 살아온 세월. 흙이라곤 만져본 적 없던 새댁은 땅과 맞대어 살아가는 베테랑 농사꾼이 됐다.

"내 땅에서 짓는 농사잖아요. 힘들어도 보람돼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이제 고향이잖아요."

낮은 집 바로 옆에 높다란 아파트 숲이 들어서고, 차가 싱싱 달리는 고속도로가 나고. 긴긴 시간이 느리게 흐르던 마을도 어느덧 변해왔다. 하지만 그 안엔 나고 자란 삶과 나름의 이야기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머물고 있다.
 
 봄의 소리 55.2x35.5cm Watercolor on paper(2000년). 봄 햇살이 겨울의 빗장을 연, 남촌도림동의 배 농장 풍경. 사월이면 순백색 꽃눈이 흩날리고, 가을이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것이다.
ⓒ 노희정
서명찬(59)씨는 1983년 충남 천안에서 인천으로 왔다. 농업학교를 나온 그는 관련된 직장 일을 하다, 15년 전 수산동 언덕에서 배나무를 키우기 시작했다. 햇살과 빗물은 열매를 자라게 하고 바람은 당도를 끌어 올린다. 이 일대는 밤낮의 온도 차가 크고 바닷바람이 불어와 맛 좋은 배가 자라기 적당하다. 도심이 지척이고 남촌농산물도매시장이 있어 판로도 넓다.
 
 배나무 유인 작업 중인 서명찬씨. 가을을 기다리며, 농사꾼은 오늘도 나무를 가꾼다.
ⓒ 임학현 포토그래퍼
지금 밭에선 나무에 햇살이 고루 스며들도록 가지를 묶어주는 유인 작업이 한창이다. 이제 사월이면 순백색 꽃눈이 흩날리고, 여름 가고 가을이 오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것이다.
"난 가을을 기다리며 살아요." 농부는 매일 아침 햇살을 받으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밭으로 간다. 손길 닿는 만큼 하루하루 자라나는 나무를 보노라면 가슴 부듯하다. 땀 흘린 만큼 거두며 살아가는 것. 도시 한복판에서의 노스탤지어, 농부들이 찾아가는 행복이다.
 
 남촌동 옛 4번 버스 종점 모퉁이 버려진 땅에 주민들이 가꾼 꽃밭
ⓒ 임학현 포토그래퍼
그리운 4번 버스 종점, 정겨운 우리 동네

남촌동(南村洞) 옛 4번 버스 종점. 마을에서 하나뿐인 버스가 종일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지친 몸을 뉘던 곳. 그 안엔 600살 먹은 은행나무가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굴곡진 시간을 묵묵히 견뎌왔을 나무를, 마을 사람들은 사랑한다. 지금도 해마다 음력 칠월이면 당제(堂祭)를 지낸다. 어느 해 여름 태풍으로 나무가 쓰러질 뻔했을 땐 주민들이 비비람 속에서 나무를 지켜냈다.

"어릴 땐 동네 사람 모두 이 나무 그늘에서 여름을 났어요. 그네 타고 윷놀이하며 어울려 놀았죠. 행복했던 기억을 오늘 되살리는 게 도시재생의 시작입니다."

잊혀가던 이곳은 주민 힘으로 쉼터가 된다. 벌써 버려진 땅에 꽃을 심어놓았다. 동네 사람들이 다시 나무 아래서 어울릴 그 날을 그리며, 주민협의체 '십시일반'의 김채언(57) 회장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남촌 주민협의체 '십시일반'의 김채언 회장(오른쪽)과 최경애 사무국장(왼쪽). 주민이 함께 그린 벽화 앞에서.
ⓒ 임학현 포토그래퍼
올해 초 인천시가 주관하는 도시재생사업인 '더불어 마을사업'에 남촌로93번길 일대 약 4만5000㎡가 최종 선정됐다. 이 사업으로 남촌은 3년간 40억 원을 들여 주거 환경을 개선하게 된다. 주민 스스로 만들어가는 주거지 재생으로, 지난해 준비 단계인 '더불어 마을 희망지 사업'부터 마을에 새 숨을 불어넣었다. 골목 정원을 가꾸고, 재활용 정거장을 만들고, 낡은 담벼락엔 은행나무, 제비, 돌고래 등 지역을 상징하는 그림을 곱게 그려 넣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힘을 모았기에 가능했습니다." 인생이라는 길. 남촌 사람들은 서로 보폭을 맞추고 따뜻한 두 손을 맞잡으며, 그 길을 함께 걷고 있다.

'십시일반'의 최경애(57) 사무국장은 남촌 토박이다. 학창 시절 집에서 멀찍이 떨어진 학교에 가기 위해 논밭 사잇길을 걷고 또 걸어야 했다. 선생님들이 대체 넌 어디 살기에 신발에 흙을 잔뜩 묻히고 다니느냐 물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남촌...'이라고 답했다.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또 당연한 듯 살아왔다. 하지만 마을의 흔적을 돌아보고 어루만지면서 '내가 고향을 사랑하는구나' 깨닫게 됐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남촌!'에 산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살기 좋은 '우리 동네'를 만들고 싶다.
 
 '우리 동네 홍 반장' 이재선 할아버지. 마을 사람들이 꾸민 빌라 벽면 한편엔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 임학현 포토그래퍼
산 넘어 꽃 피는 남촌
 

이재선(77) 할아버지는 동네 일이라면 무엇이든 언제든 발 벗고 나서 '우리 동네 홍 반장'으로 통한다. 그는 충청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평생 일만 하다, 나이 들어 인천으로 왔다. 청학동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해 살다, 그 집 팔아서 아들 장가가는 데 보태주고 홀로 남촌 빌라촌으로 왔다. 후미진 골목까지 햇살이 닿는 이 동네는, 온 힘을 다해 살아온 그의 삶을 끝까지 어루만질 것이다.
 
 남촌 풍경 18x14cm Oil on canvas(1995년). 1990년대 개발의 바람이 불기 전 남촌의 전원 풍경. 주민 중심의 '도시재생'으로 남촌에 다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 노희정
소금꽃이 하얗게 피던 땅에 시커먼 공장 굴뚝이 솟아났다. 1985년 4월, 남동구 폐염전 지대가 국가산업단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수도권에 있던 공장들이 인천 바다 가까이 터를 옮기고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남촌이 그 배후 도시가 됐다. 농가를 허문 자리에 쉽게쉽게 지은 빌라가 다닥다닥 들어섰다.

주민공동체 '꽃 피는 남촌 두레'의 공병화(62) 회장은 그 변화의 물결 한가운데 있었다. '아, 이제 우리 동네도 바뀌는구나.' 1990년대 '깡촌' 남촌동에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아쉬움을 뒤로하고 앞날을 기대하기도 했다. 현실은 달랐다.

"그때 집들이 제대로 지어졌으면 좋았으련만.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라, 개발업자에 휘둘려 날림으로 집을 올리고 땅도 제값에 넘기지 못했어요. 그러다 건물이 노후화되고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떠나갔지요. 동네에 온기가 사라져갔습니다."

봄은 다시 왔다. 2019년 인천도시재생지원센터의 '원도심 도시재생 주민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남촌은 '주민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사업'이 한창이다. 주민들은 그동안 도시재생대학에서 마을의 앞날을 고민하고, 신문을 만들어 동네 소식을 전하고, 두부를 빚어 이웃과 정을 나눴다. 작지만 큰 변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 그들이 내다보는 미래다.

"지역 경제를 이끌어가는 산업단지가 있고 교통이 발달한 얼마나 멋진 곳인가요. 다시 돌아오고 싶고,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야지요."  
 
 남촌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청호는, 작가의 집이자 작업실이다. 그 앞 벽화는 주민들이 함께 그렸다.
ⓒ 임학현 포토그래퍼
동화 같은 현실, 내일도 해피엔딩
 

'섬 같은 마을이다. 섬은 생각하게 한다.' 동화 작가 함영연(57)은 남촌을 섬이라 부른다. 마음의 온도를 딱 알맞게 보듬어 안으며 작가로 살게 해주는 동네가 고맙다. 강릉, 파도가 파랗게 달려드는 동쪽 바다에서 인천, 잔잔한 서쪽 바다로 왔다. 창 밖으로 논밭이 내려다보이는 지은 지 30년 된 오래된 아파트에서 10년을 보냈다. 글 쓰고 또 글을 쓰고 책을 내고, 미동도 없이 고요히 흘러간 시간이었다.
잠시 머무는 정거장이기도 했다. 537번 버스를 타고 인천터미널을 지나 서울에서 하루를 보내고 오후 11시가 다 돼서야 집으로 왔다. 동네에 대해 특별히 여긴 적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사랑하고 있었다. 인천남촌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작품에 나오고, 작가의 말 말미에 '인천 남촌마을에서'라고 자신도 모르게 써놓았다는 걸, 훗날에서야 알게 됐다.
 
 동화 작가 함영연은 방정환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우수 콘텐츠 선정작인 저서 <석수장이의 마지막 고인돌>을 들고, '남촌어울림커뮤니티센터' 도서관에서.
ⓒ 임학현 포토그래퍼
"알고 보니, 이 마을을 참 좋아하고 있었어요.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이 머물고 있는 마을을 널리 알려야 하는 소명이 있습니다. 언젠간 나도 인천, 남촌의 작가로 불리겠지요."
그가 문학 중에서도 동화를 택한 이유는 세상에 밝은 기운을 퍼트리기 때문이다. 시와 소설을 지을 땐 깊은 사색에 침잠해 마침내 힘겨웠으나, 동화를 쓸 때는 행복했다. 그가 '보배롭다'고 말하는 은행나무 곁 작은 성당과 그 옆의 학교도 언젠간 그의 손끝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리라. 고단해도 꿈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빛나는 보통 사람들의 삶. 동화보다 동화 같은 현실 속 남촌의 이야기가.  
 
▲ 인천 스케치 그림을 그린 노희정 작가 노희정은 인천을 대표하는 원로 작가다. 1940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 네 살부터 인천에 살며 창영초, 인천중, 제물포고를 거쳐 서라벌예대를 졸업했다. 중학생 시절 처음 붓을 잡은 그는 1982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작품인 '면面'을 비롯해, 사라진 소래 협궤 열차 길을 그린 '흘러간 세월의 노래', '인천역 내려가는 길', '홍예문' 등 인천 사람들에게 친숙한 공간을 특유의 감각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 인천원로작가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와 인천미술협회. 인천구상작가회, 아라회 등 다양한 미술 단체에서 고문을 맡고 있다.
ⓒ 노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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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에서 발행하는 종합 매거진 <굿모닝인천> 2021년 4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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