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 모르는데 농학교 발령?악순환 만드는 특수교사 양성체계
전문성 부족에 학부모·장애학생·특수교사 모두 난감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이 이뤄지려면 교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발달장애 학생과 청각장애 학생 등이 다니는 특수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이 학생의 장애영역별로 교육을 해야 하지만 현 특수학교에서는 이 같은 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수교사는 어떻게 양성될까. 특수교사 자격증은 지난 2001년 ‘교원자격검정령시행규칙’이 개정되며 유·초·중등 학교 과정별로 발급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장애영역별 전공에 따라 자격증이 발급됐으나 통합교육을 강화하고 특수교사의 수급체제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방안으로 장애영역 표시를 삭제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전공 분야가 없는 의사가 양성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특수성이 강한 장애영역을 고려하지 않고 ‘특수교육’이라는 보편성만을 반영해 교사가 양성된다는 의미다. 대학교 학부 과정에서 장애영역별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채 교육 현장으로 나가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교사까지 지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현재 ‘유치원 및 초등·중등·특수학교 등의 교사자격 취득을 위한 세부기준’에 따르면 특수학교 정교사(2급)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특수교육 학부과정에서 80학점 이상을 이수해야 한다. 이중 특수교육 관련 과목은 기본이수과목 21학점(7과목) 이상을 포함해 42학점 이상을 이수하면 된다.
문제는 일괄적으로 정해진 학점만 이수하면 자격 취득 기준을 충족하게 되므로 장애영역별 전문성을 익히지 않고도 특수교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강남대 초·중등 특수교육과 강창욱 교수는 17일 “행정적으로는 특수교육이라고 통칭하지만 청각장애, 시각장애, 발달장애 등 장애영역별 교육 특수성에서 매우 큰 차이가 있다”며 “그럼에도 관련 교육이 교사 양성과정에서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일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학부생이 장애영역별 전문성을 갖추고 싶어도 기회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장애영역별 특수성을 깊이 있게 반영한 과목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부에서 발표한 ‘청각장애(난청)학생 현황 및 교육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00년 이전에는 장애유형별 특수교사 자격증을 발급했기 때문에 나름의 장애유형별 심화전공 과목이 개설됐다.
그러나 장애유형별 자격이 통합된 지금은 과목별 다양성이 현저히 줄었다. 공주대 특수교육과 최상배 교수는 “특수교사 자격증 발급이 장애영역을 통합하게 돼서 더 이상 대학에서는 장애 영역별 교육에 필요한 전문 과목을 개설할 필요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특수교육대상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지적장애 등을 중심으로 과목이 개설되면서 청각장애나 시각장애학생을 위한 과목은 대폭 축소된 실정이다.
국내 모 농학교의 A교사는 특수교육과 학생들이 “교육봉사와 실습, 개인 차원의 자원봉사 등을 통해 장애영역별 교수역량을 기르게 된다”면서도 “실습은 한 달 정도 단 하나의 장애영역에 대해서만 이뤄지기 때문에 예비 특수교사가 장애영역별 교수 역량을 갖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농학교에서 중·고등 교육과정을 이수한 중증 청각장애인 최유진씨(27)는 농학교 교사가 수어를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오히려 몇 달간 교사에게 수어를 가르치며 같이 공부해야 했다.
특수학교 교사순환제의 문제점도 적잖다. 몇 년 주기로 교육청에서 교사를 새로 발령시키는데 정작 새로 오는 교사마다 수어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교사순환제는 교사가 다양한 환경을 경험해야 한다는 취지로 운영되지만, 최씨는 “(수어를 모르는 교사가) 농학교에서 어떻게 교육을 할 건지 되려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특수교사 양성과정에서 장애 영역별 특수성에 대한 교육이 부족해 수어를 모르는 교사가 농학교로 발령 나는 경우는 빈번하다. 초임 발령뿐만 아니라 교사순환제로 인한 발령 때도 마찬가지다.
학교유형과 학교과정별 교사의 수어능력을 살핀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농학교 교사 중 ‘수어로 의사소통하기 어려운 정도’는 15.3%(13명), ‘수어 수용능력이 낮으며 간단한 수어 표현이 가능한 정도’는 36.5%(31명)로 조사됐다. 전반적으로 교사의 수어 의사소통 능력이 낮다는 결과다. ‘수어 수용능력과 표현능력이 유창한 정도’라고 답한 건 10.6%(9명)에 그쳤다.
최 교수는 “청각장애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는 언어지도 방법, 청력도 해석, 수어교육 등 다양한 능력을 갖춰야 하지만 현 상황에서 특수교사가 청각장애 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기가 어렵다”고 했다. 특수교사의 전문성 약화가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현장에서 학생 지도·상담 등이 충분히 이뤄지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청각장애 거점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특수교사들도 전문성이 부족한 현실이다. 수어를 비롯한 청각장애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 소통조차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8조에서는 특수교사에 대한 교육 및 연수를 정기 실시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으나 이 역시 준수하지 않더라도 별도의 처벌규정은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청각장애 학생과 학부모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에 놓였다. 통합교육을 받는 상황에서는 특수교육지원센터 교사가, 농학교에 다니는 상황에서는 농학교 교사가 청각장애 특수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적잖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수교사를 양성하는 체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수교육지원센터·농학교에서 근무하는 특수교사가 각 학생의 장애 유형에 맞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특수교사 자격제도의 실효성을 언급하며 “대학원에서 장애유형별교육 전공 과정을 개설하고 자격증 취득과정을 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 내 특수교사 유형에 청각장애교사 또는 시각장애교사 자격증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강 교수는 “현행 특수교육 전공에서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통일된 학점 기준을 폐지하고 장애영역별 과목 등을 다양하게 개설해 대학별 특성에 따라 학점 기준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무엇보다 특수교육의 본질적 의미를 살리는 교사 양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수교육은 양적 개념이나 집단적 개념으로 보면 안 된다. 각 특수교육 대상자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지원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장애영역별 전문 교육을 바탕으로 특수교사가 양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유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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