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못갚자 압류돼 팔렸다, '빨간딱지' 반려견도 붙인다는데
빚을 갚지 못해 재산을 압류당할 때, TV 속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던 ‘빨간딱지’를 반려동물에게도 붙일 수 있을까. 2021년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가능하다”가 정답이다.
민법 제98조는 “본 법에서 물건이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이라고 규정한다. 인간이 아닌 유기체는 물건으로 보기 때문에 반려동물도 법률관계에서 자연스레 물건의 지위가 된다. 법적으로 각 가정에서 키우는 개와 고양이는 결국 텔레비전, 냉장고와 다를 바 없는 물건으로 취급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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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만원, 10만원에 압류된 마당 개 2마리
한 현직 집행관은 “살아있는 반려동물은 압류에 필요한 보관 장소도 지정해야 하고, 가격을 매길 감정사도 불러야 하는 등 절차가 번거롭지만, 채권자가 강력히 요구하면 강아지에 대한 압류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2018년 수원지법 평택지원 집행관 사무소에서 반려동물에 대한 압류 및 처분 사례가 있었다. 집행관이 찾아간 어느 집에는 마당에 키우던 개 2마리가 있었다. 이른바 ‘믹스견’인 두 마리의 개는 집주인이 빚을 갚지 못하자 압류대상이 됐다. 개의 감정가 선정을 위해 감정사를 불렀고 각 15만원과 10만원으로 가격이 책정돼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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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보유 동물 압류 안 돼…이혼 시 반려견 양육료도
다른 나라는 어떨까. 윤철홍 교수(숭실대 법대)는 2018년 ‘민사법 체계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해외 사례를 소개했다. 오스트리아는 1988년, 독일은 1990년, 2002년에는 스위스 민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선언이 담겼다. 스위스 역시 법이 바뀌기 전까지는 반려동물 압류가 가능했다. 하지만 “가정 내에서, 재산 증식 혹은 영업 목적이 아닌 형태로 보유하는 동물은 압류 금지”라는 보완책이 생기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압류는 더는 이뤄지지 않게 됐다.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프랑스 민법은 한 발짝 더 나갔다. 오승규 교수(중원대 법학)는 논문에서 “프랑스에서는 이혼할 때 반려견의 관리권을 아내에게 주고 남편에 대한 반려견 양육비 청구를 인정해야한다는 판결이나 헤어진 배우자에게 귀속된 반려견에 대한 방문·숙박권을 부정한 판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법무부도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 개선과 관련한 본격 논의에 나섰다. 지난 2월 만들어진 ‘사공일가(사회적 공존, 1인가구) T/F팀’(팀장 정재민 법무심의관)은 21일 2차 회의를 열고 동물을 일반 물건과 구분하는 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그 첫걸음으로는 민사집행법상 압류 대상에 반려동물을 제외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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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가족관…상속제도 논의
TF에서 동물 관련 논의만 하는 건 아니다.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 및 가족 제도 변화에 따라 재정비해야 할 제도가 있는지 살펴보는 TF는 상속제도와 관련한 논의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첫 대상은 유류분(遺留分) 제도다. 현행 민법은 상속하는 사람의 의사와 별개로 상속을 받는 사람에게 보장되는 비율을 정해뒀다. 배우자와 직계비속은 법정상속분의 1/2,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1/3이다. TF에서는 유류분 권리자의 범위 축소나 비율 축소에 대해 의견을 모은다.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도 유류분 제도의 위헌성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따져달라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다. 개인 재산 처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제도의 취지상 이를 폐지하기에는 섣부르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 여성 법조인은 “이른바 ‘아들을 낳기 위해 태어난 딸’들도 보장된 상속분을 통해 생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유류분 제도의 도입 취지”라며 “세대나 성별에 따라 유류분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 정도가 다르므로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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