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포기? 민주당 그러다 또 진다

신필규 2021. 4. 1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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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궐선거 그 후] 민주당이 분석해야 할 건 '20대 여성'

[신필규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과 지도부가 8일 여의도 국회에서 4.7재보궐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전원 사퇴한다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한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성범죄로 시작해서 생태탕을 찍더니 흙탕물로 끝났다.'

지난 4월 7일, 퀴어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한 보궐선거 개표방송에서 문화평론가 손희정이 내린 선거 총평이다. 이날 방송에 함께 출연한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의 말처럼 이번 선거는 '퀴어 선거'이자 '젠더 선거'여야만 했다.

두 도시의 시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건 그들의 성범죄 때문이었다. 또한 보궐 선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던 사건은 다름 아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서울퀴어문화축제를 향한 혐오발언이었다. 물론 이후 정치인들은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저마다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한 이후에 당시 서울시장 후보였던 박영선 전 중기부 장관은 사과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전과는 다른 선거 국면을 볼 수 있으리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언제 그랬냐 듯이 여론조사 1, 2위를 다투던 거대 정당의 두 후보는 갑자기 개발 공약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선거철이면 늘 반복되던 네거티브 양상이 다시 재현되어 뜬금없이 '생태탕'과 '페라가모 구두'가 선거의 중심에 섰다.

심지어 이번 선거는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 치러졌다. 그럼에도 방역 정책이나 일상 회복을 주요 의제로 삼은 거대 정당 후보는 없었고 서로의 전문성을 의심하는 네거티브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결국 보궐 선거는 아무런 반전이나 새로운 방향 없이 지루하게 이어졌고 결과는 여론조사의 예측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생태탕 말고 성평등! 페미니스트가 말하는 보궐 선거 | 개표방송 2부 하이라이트 ⓒ 큐플래닛

페미니즘 때문에 선거 망했다?

어쨌거나 보궐 선거가 끝난 이후 선거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은 성찰과 쇄신을 외치기 시작했다. 당 지도부는 사퇴했고 비대위가 꾸려졌다. 초선 의원들을 비롯하여 많은 의원들이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쇄신을 다짐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물론 정당이 과거를 성찰하고 새로 거듭날 의지를 다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문제는 방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쇄신에 적합한 길을 걷고 있을까. 답은 다소 회의적이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선거 리뷰 모임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고 한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우리가 20대 남성의 지지를 잃은 건 페미니즘 때문이다.'

의원 한 사람의 특이한 견해도 아니었고 일부 의원들은 이런 분석을 정설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하지만 이상하다. 해당 기사가 지적한 것처럼 이번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특별히 페미니즘적인 행보를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평등·반성폭력 정책을 주요 의제로 대두시키지도 않았다.

특히나 청년활동가네트워크가 성평등 정책 관련 질의를 여러 선거캠프에 보냈으나 유독 오세훈 캠프만이 답변을 하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당시 뉴미디어본부장을 맡고 있던 정치인 이준석씨가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는 이유로 응답을 거부했으며 '시대착오적 여성주의'라는 발언까지 더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말하자면 박영선 캠프에서 적극적으로 이 사안을 문제 삼으며 상대 후보와 차별점을 드러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혀 그 기회를 잡지 않았다.

왜 그들은 투표를 포기했을까       
 
 7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평중학교에 설치된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소에서 퇴근한 직장인과 시민들이 투표를 하기위해 대기하고 있다.
ⓒ 권우성
 
만약 이 일부 의원들의 문제의식이 더불어민주당의 보편적인 정서로 자리잡아 이들이 페미니즘과 거리를 두겠다고 한다면 보궐 선거 초반 이슈가 되었던 성소수자 인권을 포함하여 다른 소수자 정책도 퇴보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고 나면 어떻게 될까. 20대 남성이 마음을 돌리고 지지율이 올라 더불어민주당은 다음 선거에서 다시 승리할 수 있을까.

사실 이번 보궐선거 국면에서 내 또래의 지인들 중에는 투표를 포기한 사람이 꽤 있었다. 선거를 하기는 했으나 군소후보들에게 표를 준 이들도 많았다. 그들에게 적어도 거대 양당의 두 후보들은 기대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존재였다는 뜻이다.

이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도덕성 검증은 중요한 문제이나 이를 통해 선거의 모든 의제를 덮어버렸던 행보는 구태정치를 답습하는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모습이었다. 내 집 마련은커녕 전셋집 마련에도 긍긍하는 이들에게 후보자들의 개발 공약은 전혀 공감이 가는 약속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부동산 대책'이 아니라 차라리 '주거 대책'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의제들은 간헐적으로 언급이 되었을 뿐 선거기간 내내 제대로 표면화된 적이 없었다. 회의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은 '소수자'라고 하면 단순히 숫자가 작은 집단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수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불평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차별과 배제를 지속적으로 겪는 사람들이 바로 소수자다. 이는 많은 이들이 여성을 사회적 약자 집단으로 분류하는 이유다. 심지어 성소수자조차도 절대적인 수를 따지자면 다른 어떤 사회적 집단보다 그리 작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회의 많은 이들이 적어도 '소수자성' 한 가지 정도는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소수자'라고 하면 보편적 집단과 확연히 구분되는 핍박받는 이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 소수자들은 아주 평범한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와 몸을 부대끼며 살아간다.

특히나 이 소수자 집단에는 안전하지 못한 일터에서 최저시급도 안 되는 돈을 받지만 그나마 자기 자리조차도 불안정한 사각지대 노동자들이 속한다. 한 뼘 남짓한 공간에 살며 계속해서 오르는 임대료 탓에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주거 불안 계층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들은 높은 확률로 20·30대들이다. 이들은 단지 무능하거나 운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본이 없는 이들에게 불평등한 사회체제가 만든 약자들이다. 그렇기에 만약 더불어민주당이 소수자 의제의 관점으로 사회를 분석하기를 포기한다면 그들은 젊은 지지층과 단절될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은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통해 사회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조망하고 이를 해체하여 재설계하고자 하는 인식론이자 정치적 기획이기도 하다. 지난 시간 많은 이들이 페미니즘의 틀을 통해 정치·문화·언론·계급 등 사회의 다양한 분야를 분석해왔다. 우리 사회의 많은 제도와 체제들이 성별이분법과 그에 따른 성역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소수자 집단이 페미니즘을 통해 자신들이 처한 사회적 위치를 이해하고 변화를 이룩하고자 했다.

페미니즘은 여성운동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운동, 장애인권 운동, 기본소득 운동, 대안 공동체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다만 개인적으로 나는 칼로 무 자르듯 운동 영역을 나누고 이름을 붙이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페미니즘만큼 점차 늘어나지만 소외되길 반복해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는 소수자들을 조망하기에 좋은 틀도 없다는 것이다. 즉 더불어민주당은 페미니즘 때문에 진 게 아니라 오히려 페미니즘이 있어야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끝으로 내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라면 왜 20대 남성에게 거부당했는가가 아니라 전임 시장의 성범죄로 인해 선거를 치르게 되었음에도 왜 20대 여성의 44%가 기대할 것도 없는 자신들에게 표를 주었는지를 분석했을 것이다. 그리고 왜 그들이 세대와 성별 중 가장 높은 비율로 군소후보들에게 표를 주었는지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불어민주당은 지금의 지지율조차 잃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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