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철과 에릭 클랩튼 그 후..힙합전사 태영호의 진화

성지원 2021. 4. 1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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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who & why]

“쥬랍더빗(Drop the beat)“.


뒤집어 쓴 야구모자가 꽤 잘 어울리고, 덩실덩실 타는 엇박자가 묘하게 어긋날 듯 어긋나지 않는다. 4ㆍ7 서울시장 보궐선거 유세차량에 올라 랩을 하는 그를 보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붙인 별명은 '태미넴(태영호 + 에미넴)'. 또는 '북힙원탑(북한 + 힙합 + onetop)', '국민의힙' 등이다. 영상마다 "민주주의의 쓴맛을 보는 중"이라는 유쾌한 평가가 달려 있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유튜브 채널은 최근 구독자수 25만명을 돌파했다.


김정철과 에릭 클랩튼, 그리고 망명
불과 5년 전만 해도 태영호는 출신성분이 괜찮은 북한 외교관이었다.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이던 2016년 당시 영국 공군기를 타고 극비리에 망명, 그해 8월 한국에 입국했다. 탈북자 가운데 최고위급이었던 그의 탈북과정에 대해 영국 언론은 “스릴러 소설을 방불케 했다”고 보도했다. 태 의원은 언론 인터뷰 등에서 “체제에 모순을 느껴 망명했다”고 설명했다. 또 2019년 뉴욕에서 열린 ‘오슬로 자유 포럼’ 연설에선 이렇게 말했다.

“주영 북한 공사 시절, 에릭 클랩튼 공연을 보러 온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을 보좌해 로열 앨버트 홀에 함께 갔다. 북한에선 록 음악을 듣는 게 금기사항이다. 하지만 김정은의 큰형인 김정철은 에릭 클랩튼의 광팬이었다. (그런 모순적인 모습을 보면서)마음속에 탈북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태 의원은 서울경찰청 소속 경찰관의 24시간 경호를 받는 ‘가’급 경호대상이다. 피습 우려가 있기 때문에 두 명의 경호원과 항상 함께 다닌다. 이 때문에 21대 총선에 서울 강남갑 지역구 후보로 출마한 그를 두고 당시 야인이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경호원을 항상 끌고 다녀야 하는데, 그런 분은 지역구보다는 비례대표로 출마하는 게 정상적”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주의의 쓴맛
국회 입성 후엔 '쓴맛'도 봤다.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4월엔 공식석상에서 20여일 모습을 감췄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고 건강 문제를 제기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제 분석이 틀렸다”고 주장을 철회했고, 여당의 반발 등으로 국회 정보위원회 입성까지 좌절됐다.

15일 의원실에서 만난 태 의원은 지난 1년 간 가장 힘들었던 게 “어깨에 힘을 빼는 것”이었다고 했다. “북한 정부는 굉장히 위계적이고 권위적이다. 그래서 나도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며 “처음엔 (선거운동을 위해)지하철역에 서서 명함을 내밀고 허리를 굽히는 게 힘들었다. 거절을 많이 당했는데 굉장히 멋쩍었다. 1년쯤 되니 이제야 어깨에 힘이 좀 빠진 것 같다”고 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유튜브 '태영호TV'. [유튜브 캡처]

2020년 초 총선을 앞두고 개설한 유튜브 채널에서도 그의 말처럼 힘이 많이 빠졌다. 처음 올린 영상에선 정장과 넥타이 차림에 수십 분 동안 같은 자세로 북한 정세를 설명했다. 당시엔 “일주일에 20회씩 회의를 했다”는 게 의원실 관계자 설명이다. 결국 최근엔 3명의 유튜브 전문 보좌진을 따로 채용해 유튜브팀을 신설했다. PC도 최고사양으로 바꿨다. 태 의원은 “20대, 30대 마음은 제가 절대 알 수가 없다. 항상 보좌진들한테 ‘어떤 걸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본다”고 말했다.

이후엔 콘텐츠가 바뀌었다. 길거리 인사, 랩 유세 영상은 물론, 핫하다는 로제떡볶이 ‘먹방’을 하며 '매운맛'도 봤다. 그것도 ‘라방(라이브 방송)’이다. 구독자들 닉네임을 부르며 “OO님, 제가 뭐부터 먹으면 좋을까요? △△님, 남조선 음식 잘 적응하고 있냐고요?”하고 능청도 떠는 ‘프로유튜버’가 다 됐다. 태 의원의 사무실에는 구독자 10만명을 넘긴 이들만 받을 수 있는 '유튜브 실버버튼'이 놓여있다.


‘이남자’ 몰표 환호할 때 “이대녀 표심 고민해야”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유세 당시 했던 '랩'이 화제가 되고 있다. 유튜브 '태영호TV' 캡처

최근에는 재·보선 결과에 대해 페이스북에 올린 “왜 우리가 ‘이대녀(20대 여성)’의 표심을 못 얻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글이 화제가 됐다. 20대 남성 몰표에 들떠 있는 당을 향한 쓴소리였다. 태 의원은 15일 “유세 차량에 오를 때마다 ‘이번 선거의 계기는 민주당의 권력형 성범죄’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20대 여성들도 우리 당을 훨씬 많이 찍을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막상 결과를 보고 진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30은 ‘답정너’를 제일 싫어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도 그렇다”고 이유를 분석했다. 정강정책 변경 등 중요한 사안을 당원들 의사를 묻지 않고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정해서 하달하는 방식부터가 문제라는 게 태 의원의 주장이다. 최근 당 상황에 대해서도 “선거 끝나자마자 당권경쟁 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제일 싫어할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화제가 된 '랩 유세'에 대해선 “사람들이 부동산 얘기, 돈 얘기만 하면 듣지도 않는다. 한 번 쳐다보게라도 하는 게 중요해서…”라고 말했다.

동료 의원들은 태 의원을 “사고가 열려 있는 사람. 말을 재밌게 잘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태 의원은 “초선 의원 모임 같은 의원들 모임엔 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지역구 의원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면서도 카카오톡을 열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지역구 차원에서 분석한 백서를 기자에게 직접 보내줬다. 국회의원 태영호, 21대 국회에서 민주주의의 쓴맛 매운맛 다 보고 있는 듯하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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