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득의 공감의 장] 언제까지 선수폭행을 보고만 있어야 하나

데스크 2021. 4.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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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최숙현 법' 생겼지만..성적 지상주의·인권침해 여전
적발·처벌위주 아닌 체육시스템의 근본적 쇄신있어야
지난해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 이른바 '최숙현법'이 통과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2018년 평창올림픽 이후 소위 ‘미투(Me too)’라는 성폭행 사실 공개 흐름에 동참하며 고통의 날들을 보낸 유명 빙상선수가 13개월여 만에 전국대회 정상에 올라 주위를 뭉클하게 한 바 있다.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딴 그 선수에 대해 담당 국가대표팀 코치는 상하관계의 위력을 이용하여 수년간 상습적인 폭행과 심지어 성폭행까지 자행하여 성폭행 혐의로만 징역 10년 6개월의 형을 받았다.


재판과정에서 그는 “일부 폭행과 폭언을 인정하지만, 훈육과 지도 차원에서 했던 것으로 반성하고 있다”라며 일부 폭행은 인정하고 성폭행 사실은 완강히 부인하였지만, 재판부는 “죄책이 무겁고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며 중형을 선고하였다. 훈육과 지도 차원에서는 신체 폭행을 가할 수 있다는 지도자의 인식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지난해 6월 26일 경북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팀 최숙현 선수가 감독과 팀닥터(운동처방사), 동료 선수들로부터 가혹행위 피해를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故) 최숙현 선수는 2015년부터 4차례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2017년 전국 체전 철인3종경기에 출전한 유망주였다. 이런 선수가 지속적인 폭행 등에게서 벗어나려 경주시청, 대한체육회, 철인3종협회 등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각 단체의 대응이 지지부진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놀라운 것은 최숙현 선수를 폭행하고 추행하던 팀닥터라는 자는 마치 미국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한 것처럼 속인 뒤 선수들에게 마사지 등 의료 행위를 하였다는 점이다. 일부 체육지도자들이 폭력, 성추행의 전과를 숨기고 다시 취업한 예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거짓 자격으로 선수들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주먹구구식, 연줄 위주의 인사패턴을 보여준다.


최숙현 선수의 희생이 체육계의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하였다. 소위 최숙현법이라 하여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하여, 체육계 인권침해 및 스포츠 비리 근절을 위한 전담 기구인 스포츠 윤리센터를 설립해 스포츠 비리 조사권을 대폭 강화하고, 직장운동경기부(실업팀) 선수 표준계약서 마련, 취약 지점 영상정보처리기기(CCTV) 설치, 선수 관리 담당자 등록 등 체육계 인권침해를 해소하기 위한 법적 근거 등이 포함되었다. 그런데 폭력조사나 처벌이 강화되고 법원도 종전과 달리 엄하게 벌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음에도 스포츠계의 폭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근래 언론의 기사 제목만 검색해도, “몽둥이와 주먹으로 온몸 폭행…후배 때린 태권도 운동부 선배들”, “경찰, 중학생 선수들 폭행한 축구 감독 구속영장 신청”, "하키채로 학생 폭행…학부모에겐 6000만원 받아", “라켓으로 초등학교 선수 상습 폭행…테니스 코치 입건” 등, 수도 없다. 그냥 또 터진 체육계 폭력에 불과하다. 수원에 있는 중학교의 하키 감독은 툭 하면 손찌검하고 스틱으로 온몸을 때렸다. "정강이나 명치 맞는 건 약과였고 스틱으로 맞을 때 머리 실핀이 두피에 꽂혀 피가 땀처럼 흐른 경우도 잦았다.”라는 기사에선 피를 흘리는 어린 여학생의 모습이 겹쳐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12월 발표한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의하면, 초등학생 선수부터 실업 선수까지 모두 10명 중 1명 이상이 신체 폭력 피해 경험이 있었다. 특히 대학생 선수는 3명 중 1명이 신체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합숙 시 폭력 피해가 더 컸다. 신체 폭력의 가해자는 지도자가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선배였는데, 초등학생보다는 중학생, 고등학생 선수로 갈수록 선배의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문화체육부 장관은 스포츠윤리센터가 기존의 체육계 내부 절차로부터 독립된 구제 절차를 마련해 어떤 경우에도 피해자를 우선으로 하는 든든한 장치라고 말했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스포츠인권진흥실과 스포츠비리조사실로 나누어 인권팀은 선수폭력, 성폭력 사건을 담당하고, 조사팀은 조직 비리, 횡령 등 체육계 비리를 조사하는 기능을 가진다. 종전 대한체육회 산하에 클린스포츠센터가 있었지만 선수 폭행 등을 조사하며 제 식구 감싸기 등으로 비난받아 오다 최숙현법과 함께 이 기구가 신설된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 해결은 외면한 채 별도의 조직을 만든다고 하여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스포츠윤리센터의 경우 경찰 등 공무원 파견권을 부여하는 등 법적 권한을 대폭 강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사 권한을 가진 직원은 아주 소수이고 특별사법권도 부여받지 못하여 전직 경찰관 등을 10여명 전문조사위원으로 채용하여 조사 능력을 높이려고 하고 있으나, 그 전문조사위원조차 정규직이 아니고 1년 단위로, 성과급으로 채용되다 보니 윤리센터의 조사기능이 겉돌고 있다. 쏟아지는 엄청난 민원에 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선수폭력에 대해서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적발·처벌 위주가 아니라 체육계 지도 방법의 근본적 수술이 요구된다. 폭력에 시달리는 선수를 잃고 나서 지도자나 선배 선수를 엄벌에 처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스포츠윤리센터가 신설되고 계속되는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순간에도 선수들에 대한 폭행은 계속되고 있다. 단기적 성과에 급급한 성적 만능주의의 현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선수 육성이 수반되어야 한다. 폭력으로 성적을 향상할 수 있다는 나쁜 관습을 빨리 버리고 선진 교육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주요 경기 감독을 외국인에게 내어 주고서도 지도 방법의 개선을 등한시하고, 지연· 학연과 같은 파벌주의의 타파에 손 놓고 있는 대한체육회 등 단체의 기능을 정리하여야 한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등은 대한체육회에서 분리하여 전담 기구에서 인재를 초기부터 발굴하여 단계적으로 양성시킬 수 있도록 정비할 필요가 있다.


운동선수 가운데는 천부적 재능을 타고나거나, 자신만의 창의력으로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둔 경우도 있다. 체육 지도자들이 규격화된 교육방식을 요구하고 살아남기 위한 기술만 고집하고 기초교육을 등한시하고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다 보니 우리 선수들이 단명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체육이 감독이나 코치가 선발, 진학, 취업 등에 전권을 가지도록 해 둔 상태에서는 그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공부하는 운동선수, 과학적 지도, 능력 위주의 선수 선발 등은 좋은 말이다. 이런 환경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체육계에만 맡겨 둘 수가 없다. 체육 시스템의 근본적 쇄신이 있어야만 계속되는 선수 폭력을 막을 수 있다.


글/서영득 법무법인 정론 변호사

데일리안 데스크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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