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맥주만 마신 남자…"잘 익은 맥주선 바나나향이 난다"
“수석 브루마스터로서 하는 일이요? 매일 오전 11시 관능검사부터 시작하죠.”
맥주 제조의 전 공정을 관리하는 양조 기술자인 김종호(54) 오비맥주 수석 브루마스터(Brew Master)에게 일과를 묻자, 이름부터 야릇한 관능검사 얘길 꺼낸다.
김 수석 브루마스터는 웃으면서 “그 관능이 아니고, 오감(五感)을 동원해 제품의 품질을 검사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관능(官能)이란 단어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어 생긴 오해다.
365일 맥주 맛 균일하게 유지하는 게 내 일
그는 “매일 맥주의 원재료들, 물부터 시작해 맥아·부재료·효모 등을 점검하고 맥주 맛·색깔·상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어제 만든 맥주와 오늘 만든 맥주 맛이 다르지 않게 일관되도록 하는 게 수석 브루마스터의 가장 중요한 임무여서다.
직업이 양조 기술자이니 갖가지 맥주를 만드는 게 주요 업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답변이었다. 그는 “신제품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제1 임무는 오비맥주의 각양각색 맥주가 가진 고유의 맛과 향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기후 변화 때문에 맥주 원재료인 보리 상태가 매년 다르다.
브루마스터로서 맥주의 미세한 맛의 변화를 잡아내야 하기 때문에 미각과 후각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는 “향이 강한 위스키와 소주·와인은 입에 대지 않는다”면서 “그러다 보니 맥주만 마신다”고 웃었다. 오비맥주는 국내에 청주·이천과 광주광역시 세 곳에 생산 공장이 있다. 그는 1~2주 간격으로 각 공장에 머물며 제조 전 공정을 관리하고 있다. 브루마스터가 된 게 2006년이니 올해로 15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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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간 카스 맛·품질 담당
관리하는 맥주 가운데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건 ‘카스’. 1992년 오비맥주의 전신 중 하나인 진로쿠어스에 입사한 후 2년 차인 94년 카스 개발팀에 들어가며 맺은 첫 인연 때문이다. 카스는 오비맥주의 대표 효자 상품이다. 2012년 오비맥주가 경쟁 회사를 추월하는 데 기여했고, 이후로도 10년간 국내 맥주 시장점유율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카스의 시장점유율은 40%로 조사됐다.
“94년 탄생한 후 지난달 ‘올 뉴 카스’ 리뉴얼까지 27년이 흘렀어요. 외동딸이 올해 25살인데 카스는 또 다른 제 자식 같아요.”
김 수석 브루마스터가 카스 출시부터 시작해 27년간 맛과 품질을 담당했으니, ‘자식 같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그는 당초 2019년 말 AB인베브 아시아태평양 이노베이션센터 AD(Associate Director)로 발령 났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생산되는 AB인베브의 모든 맥주 제품의 맛을 관리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김 수석 브루마스터를 한국에 주저앉혔다. 아태 이노베이션센터가 코로나19 발원지 중국 우한에 있는 바람에 가지 못하면서다.
그는 “한국에 머물게 되면서 지난해 ‘올 뉴 카스’ 리뉴얼에 자연스럽게 관여하게 됐다. 질긴 인연이라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올 뉴 카스 맛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는 “상쾌하고 톡 쏘는 카스 고유의 특성은 유지하면서 몇 가지 요소를 업그레이드했다”고 말했다. 최상급 정제 홉으로 바꾸고, 섭씨 0℃, 72시간 저온 숙성을 통해 깔끔하고 신선한 맛을 더했다. 이런 이미지를 강조하려고 갈색 병도 투명 병으로 바꿨다.
맥주 가장 맛있게 마시려면…
맥주를 가장 맛있게 마시는 방법을 물었다. “맥주가 맛있게 익었을 때는 코끝에 바나나 또는 사과·플로럴 향이 납니다. 3~6도가 맥주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온도에요. 올 뉴 카스 라벨에 온도 센서를 적용했는데, 밝은 파란색으로 변하며 하얀 눈꽃 송이 모양이 나타납니다. 그때 드시면 됩니다.” 또 “탄산이 날아갈 수 있어서 맥주를 가급적 흔들어 마시지 않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그가 지난 30년간 오비맥주에 있으며 맛본 맥주만 수백 가지다. 오비맥주 빼고 해외 어디 맥주가 가장 맛있느냐고 물었다. “전 세계 라거 맥주 중 카스가 가장 맛있는 맥주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제품에 자부심이 있습니다.” 인터뷰 마지막까지 카스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풍겼다.
이천=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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