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청각장애 학생이 한 교실에..특수학교 내 '일률적 교육'

노유림 2021. 4. 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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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의 현주소①]어디에도 없는 전문 교육
일반학교도, 특수학교도 청각장애 교육 지원 제대로 못해
게티이미지뱅크

특수교육은 대상의 특별한 교육적 요구에 맞춰 이뤄지는 것이다. 신체적·지적 장애 등으로 특별한 교육적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이 주로 특수교육을 받는다. 관련법은 특수교육 현장에서 장애 특성을 고려한 개별화 교육은 물론 비장애학생과 장애학생이 한데 모여 수업을 듣는 통합교육을 시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통합교육을 받는 청각장애학생에 대한 교육적 지원은 미흡한 상황이다. 장애 특성에 맞는 교육이 이뤄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교사·학생 간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통합교육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지원하려 거점 특수교육지원센터가 마련돼있으나 이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청각장애학교(농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도 충분치 못하다. 농학교의 설립 목적은 청각장애 학생에 특화된 교육을 시행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최근 농학교에서 청각장애 학생이 줄면서 중도·중복장애학생 재학 비율이 점차 높아졌다. 이에 청각장애 특수학교임에도 발달장애 학생과 청각장애 학생이 한 곳에서 수업을 듣게 됐다.

농학교에서 청각장애 학생이 줄고 있다

중증 청각장애인 지모씨(28)는 유아기에 농학교를 다니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초등학교에 진학했다. 지씨는 비장애학생들과 통합교육을 받았으나 수어 교육은 따로 받지 못했다. 지씨는 16일 “어릴 때는 수어를 잠깐 배웠지만 수어를 하면 구어를 하지 않게 된다는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지씨는 말하기와 듣기, 언어 지도 등 청인(청각장애가 없는 비장애인)기준 재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구개음화, 경음화 등이 반영되지 않은 문자 그대로의 발음으로 교육이 이뤄졌다. 그는 “‘횟집’의 실제 발음은 ‘횓찝’인데 보이는 문자대로만 발음하라고 교육받는 등 오류가 많았다”며 “청력이 남아있더라도 나이가 들면 소실되기 때문에 수어 교육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수어의 중요성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게티 이미지뱅크

지씨 외에도 많은 청각장애 학생들이 통합교육을 받는다. 지난해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일반학교 재학·특수교육지원센터 지원 등 통합교육을 받는 청각장애 학생은 약 79%에 달했다. 전체 특수교육대상자 중 통합교육을 받는 이들이 약 72%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청각장애 학생은 통합교육 환경에 있는 비율이 높은 셈이다.

그러나 일반 학교에서는 비장애학생과 장애학생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는 통합교육에 의의를 둘 뿐 전문 특수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장애 영역별 특성에 맞춘 교육이 미흡하다는 의미다. 국내 모 농학교의 A교사는 “청각장애 학생들은 월에 1~2회 정도 주요 교과 시간에 특수·순회교육을 받기 위해 별도의 공간으로 이동하게 된다”며 “그러나 이때 비장애학생들의 수업 진도와 차이가 생겨 수행 평가 등에서 청각장애학생들이 불이익을 보는 경우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국내에는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농학교가 몇 군데 설립돼 있다. 그럼에도 청각장애 학생이 일반학교로 진학해 통합교육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남대학교 초·중등특수교육과 강창욱 교수는 “국내에서 인공와우 수술이 확산되고 세계적으로도 통합교육이 활성화되는 추세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강 교수는 “하지만 국내 일반학교 현장에서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통합교육이 섣부르게 도입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학교에서는 장애영역별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잦다. 게다가 따돌림 등 학교폭력 문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나 이런 부분에 대한 대책 마련은 소홀했다는 것이다.

장애 영역은 제각각인데…일률적 교육에 ‘난감’
게티이미지뱅크

일반학교의 통합교육이 안팎에서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는 반면에 농학교는 재학생 수가 점점 감소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청각장애(난청)학생 현황 및 교육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농학교 재학생은 2006년 당시 1526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647명을 기록, 14년 새 학생수가 2배 이상 급감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농학교에서는 청각장애 학생이 줄어듦에 따라 발달장애, 중도·중복장애 학생 재학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농학교 등 장애영역별 특수학교가 마련돼 있음에도 장애 영역을 구분해 학생을 받아야 한다는 법적 강제성은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6조, 20조, 22조 등 관련 조항에 따르면 특수교육 대상자는 장애 유형 및 정도에 따른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해당 조항을 어기더라도 별도의 처벌은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청각장애 학생을 위해 설립된 특수학교에 발달장애, 중복장애 학생 등이 입학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농학교에서 중·고등 교육과정을 이수한 중증 청각장애인 최유진(27)씨는 농학교에서 발달장애 학생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그는 농학교에 다닐 때 “10명 중 4명 꼴로 발달장애 학생이 있었다”며 “장애 영역별로 구분 교육을 하는 교사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발달장애 학생 수준에 맞게 문제지를 먼저 챙겨준 후 청각장애 학생을 챙겨주는 식으로 교육이 이뤄지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농학교에서조차 청각장애 유형에 맞는 전문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꼬집었다. 청각장애 학생과 발달장애 학생이 함께 있을 경우 상대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은 발달장애 학생들에 맞춰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A교사는 “장애 학생의 교육적 요구는 해당 학생의 장애 영역을 반드시 반영하여야 한다”면서도 “한 명의 교사가 학급 내 다양한 장애의 학생별로 장애 영역을 고려해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특수교사들이 장애영역별 교육을 위해 노력하더라도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일률적인 교육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노유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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