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폰 꺼진 밤9시, 그때도 결재란엔 文 사인 없었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는 16일 지명 사실이 발표된 뒤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오늘 아침 9시쯤에 대통령의 최종 인사 결재가 났다고 하더라”며 “산적한 난제를 잘 마무리해야 할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전날(15일) 밤엔 전화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오후 내내 전화를 받지 않더니 오후 9시 무렵엔 휴대전화 전원이 결국 꺼졌다. 이 때부터 취재 기자들 사이에선 "김 후보자가 낙점을 받은 모양"이란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자의 말을 100% 믿는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 발표 당일 오전 9시에야 최종 결재를 했다는 뜻이 된다. 오후 1시 30분 인사 발표를 불과 4시간 30분 앞둔 시점이다. 문 대통령 주변 인사들 사이에선 "그만큼 문 대통령이 총리 인선을 놓고 막판까지 고심을 했다는 뜻"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총리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세균 총리는 이미 지난 1월 문 대통령에게 사퇴의 뜻을 밝혔다. 이에 앞서 청와대가 정 총리의 사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 연말부터 후임자 물색을 시작했다는 소문도 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의 결심이 이렇게까지 늦어진 이유는 뭘까. 여권 인사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문 대통령의 머릿속엔 ‘여성 총리’가 우선 순위였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이미 “내각의 30%를 여성 장관으로 채우겠다”고 공약했는데, 최근 김현미(국토교통부)·강경화(외교부)·추미애(법무부)·박영선(중소벤처기업부) 등 여성 장관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물러나면서 여성 장관의 수는 계속 줄었다.
개각 발표 직전까지 유은혜 사회부총리, 김영란 전 대법관, 이미경 전 의원,박영선 전 장관 등의 이름이 하마평에 오른 것도 이런 이유였다.
하지만 여성 중에서 총리 후보자를 낙점하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특히 가족의 반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혹독한 인사청문회와 신상털이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여성 장관 구하기가 여의치 않다. 인사청문회를 가족이 반대하거나 또는 배우자가 검증동의서를 안 쓰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어느 정권이나 임기말이 되면 국무총리나 장관 감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한 명 한 명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정권 초와는 다르다. 위기속에서 등판해야 하고, 정권의 레임덕(권력 누수)이 본격화되면서 자칫 청문회에서 낙마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여권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특히 총리의 경우 여성 인사를 계속 물색했지만, 정말 적임자를 구하기가 어려웠다”며 “문 대통령이 정말 여성 총리 기용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면 2019년 두번째 총리 인선 때 결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여성 총리'만큼이나 문 대통령이 애착을 보인 것이 임기말 정책 성과를 내기 위한 ‘경제형 총리'였다.
이 컨셉이 부상하면서 김영주 전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총리 후보로 급부상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과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청와대와 여권 관계자들이 설득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고사했다.
문 대통령은 결국 '화합형 총리 모델'로는 최고의 적임자였던 김부겸 후보자를 지명했다. 김 후보자의 지명에는 4ㆍ7 재ㆍ보선에서 여당 후보들이 참패한 것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청와대의 예상을 넘는 민심의 이반이 확인되면서 중도확장과 통합에 대한 요구가 거세졌기 때문이다.
선거패배의 당사자인 민주당 입장에서 화합형 총리 인선을 통한 국면 전환은 절실한 과제였다. 민주당의 친문 핵심 중진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내가 아는 총리 후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김부겸 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민주당에선 김 후보자를 미는 사람이 많았다.
16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부겸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가 하고 있는 국정기조를 분명히 뒷받침하며, 재·보선에 나타난 국민의 질책에 대해 분명히 답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협치와 포용, 국민통합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 야당과 협의하고 협조 구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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