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稅판짜기.. 바이든식 판 흔들기
미국이 쏘아 올린 ‘법인세 최저한세’ 이야기에 전 세계가 눈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논의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법인세 바닥 경쟁을 멈춰야 한다”며 글로벌 법인세율 하한선을 두자고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의 제안은 일종의 ‘글로벌 증세동맹’을 제안한 것이다. 지금은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가운데서도 프랑스 32%, 헝가리 9%, 아일랜드 12.5% 등 법인세율이 천차만별이다. 미국이 제안한 법인세 최저세율은 21%다.
지난 30년간 주요국들은 기업 유치를 위해 ‘바닥을 향한 경쟁’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앞다퉈 법인세를 인하해왔다. 실제 1985년 48.1%였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법인세율 평균치는 지난해 23.3%로 반 토막 났다. 일단 유럽 주요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즉각 환영의 의사를 밝히면서 논의는 일견 급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
법인세 최저한세는 최근 갑자기 부상한 이슈는 아니다. 이미 ‘디지털세’라는 이름으로 EU와 OECD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논의되던 주제였다. 디지털세란 구글·페이스북 등 고정 사업장 없이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다국적 기업에 매기는 세금을 말한다.
미국이 지난 8일 한국을 포함한 139국에 전달한 법인세 증세 방안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를 막기 위해 글로벌한 최저 법인세율을 설정하고, 다국적 기업의 경우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법인세를 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미국의 태도다. 미국은 그동안 디지털세 도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뒤 적극적인 자세로 돌변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2조2500억 달러(2500조원) 규모의 인프라 개선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재원 조달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법인세는 국민적 저항도 적고, 트럼프 대통령 시절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크게 낮춰놨기 때문에 인상의 명분도 있다.
그런데 왜 미국은 ‘나홀로’ 증세가 아닌 ‘동반 증세’를 택했을까. 미국은 혼자서 법인세를 올릴 경우 조세 부담을 느낀 기업이 세율이 낮은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다 함께 법인세 하한선을 인상함으로써 국내 법인세 인상 충격을 완화하려고 한 것이다.
강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미주팀 부연구위원은 16일 “미국이 OECD 디지털세 합의와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설정 논의를 자국에 유리하도록 이끌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세계 주요국이 환영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험난한 과정이 예상되기도 한다. 일단 과연 미국이 제시한 주장을 각국 정부가 일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지금도 각국의 법인세 최저세율은 모두 제각각이다. 특히 스위스·아일랜드 등 낮은 세율을 무기로 기업들을 유치해왔던 국가들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다른 나라의 세금까지 간섭하는 것은 강대국의 ‘월권’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만일 ‘증세 동맹’에 단 하나의 국가라도 일탈하게 되면 동맹이란 단어가 무의미해지게 된다.
반면 적극적 일탈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최대한 모든 국가가 편입될 수 있도록 전 국가적 설득이 선행될 것”이라며 “글로벌 경제 체제 안에 편입이 안 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게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내 여론도 변수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공화당을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비등하고 있다. 디지털플랫폼 경제 시대를 주도하는 기업을 겨냥해 법인세를 올리면 그만큼 해당 기업들의 투자 여력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강 부연구위원은 “상원에서 의석수가 팽팽한 민주당과 공화당이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면 의회 통과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밖에 자국에 유리하게 디지털세 논의를 이끌어 가려는 미국과 유럽국가 간 이견이 표출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새로운 제안에 더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가 OECD와 함께 2년 동안 논의해 온 조세회피(BEPS) 대응방안을 함께 놓고 검토해야 할 단계”라고 말했다.
한국은 수출 기업이 많은 만큼 세계의 디지털세 논의 경과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일단 한국은 법인세율이 최고 27.5%(지방세 포함)로 높은 편이어서 최저 법인세율을 별도로 조정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삼성·LG·현대차 등 다국적 수출 기업들이다. 이들은 글로벌 법인세 부과 방식이 어떻게 확정되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외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다만 현재 논의되는 디지털세가 글로벌 IT 기업 등 다국적 기업을 주 타깃으로 하는 터여서 제조업 위주인 우리 기업이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 정부나 기업에 구체적으로 미칠 영향은 더 두고 봐야 하고 디지털세가 본격 도입된다고 해도 세부 변수에 따라서 유동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계 각국의 움직임은 법인세 제도의 허점 보완은 부분적 이유이고 국익 확장이 핵심”이라며 “글로벌 추세에 발맞추되 조세 체계를 국익 중심으로 개편하고 ‘우리 기업은 우리가 지킨다’는 각오로 탈규제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G20은 국제 조세체계 개선 최종 합의안을 올해 7월까지 내놓기로 했다. 다만 쟁점이 많아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이후 다자조약 체결·비준, 각국 세제 개편 등 일정을 고려하면 실제 과세까지는 최소 2∼3년이 소요될 전망이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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