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듣고 날뛰는 양떼, 걷어찰까.. 품에 안을까..

2021. 4. 16.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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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사명 넘어 소명을 붙들라 <11>
김연희(가운데) 목사와 성도들이 2019년 11월 서울 성북구 신생중앙교회에서 교회설립 42주년 기념 사랑의 쌀 나누기 행사 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지금이야 성도들의 눈빛과 표정만 봐도 문제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지만 초기엔 둔한 눈치와 불 같은 성질 때문에 참 힘들었다. 설교 준비가 어려워 기도원에 올라가 울기도 수십 번이었다. 맡겨진 양떼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몰라 그 책임감에 눌려 숨도 못 쉬며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기도밖에 방법이 없었다. 교회에 어려움이 생기거나 기도의 분위기가 식을 때, 환우가 생길 때마다 40일 작정 새벽기도를 선포했다. 그렇게 새벽 4~6시엔 성도들과 함께 기도했다. 오전 6시부터 8시까지는 홀로 기도했다.

기도가 어려워지면 금식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했다. 3일 금식기도는 물론 7일, 21일 금식기도를 드렸다. 문제라는 바람과 풍랑이 잠잠해진 후 돌이켜 보면 고민과 노력은 내가 해도 답은 기도뿐이었음을 절감했다.

하나님의 비전을 실현하고 양떼를 이끌다 장애물에 부딪히면 전 교인 새벽기도를 선포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음성과 환상으로, 혹은 사람을 통해 응답해 주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어주신 지혜와 은혜로 위기를 극복했다. 그러자 성도들이 은혜를 받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교회가 부흥됐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어려운 일이 발생했다. 제각각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받은 상처를 못 견디는 사람도 생겨났다. 심지어 나에게 시시비비를 따지는 사람, 남 탓하는 사람,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그 생각과 기준이 달랐다.

그러다 문제가 생겨 한 명이라도 교회를 떠나면 손가락 하나를 잃은 것처럼 허전하고 아팠다. 그리고 모든 게 내 탓 같았다. 어느 날 한 성도가 유난히 다른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민에 빠졌다. 내가 나서자니 자신의 행동이 공동체 안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알게 되면 그도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있을 순 없었다.

“아버지, 어떻게 해야 양들을 올바로 인도하는 목자가 될 수 있습니까. 저는 양들을 올바로 인도하는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한참을 기도하다 강대상에서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도 ‘내가 기도를 하다 잠이 든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일어나려고 하는데, 손에 수천 가닥의 고삐가 쥐여 있었다.

앞을 바라보니 예배당 안에 온통 양들이 가득하고 고삐는 그들 하나하나와 연결된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예배당 벽이 아닌 탁 트인 공간이었다. 내가 그들을 인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유독 팽팽하게 느껴지는 고삐가 있었다. 무리 뒤쪽에 한 마리가 버티며 따라오지 않고 있었다. 그 고삐에만 힘을 줘서 당기니 중간쯤까지 끌려왔지만 거기서 딱 버티고 서서 더 오지 않았다.

그 녀석이 어찌나 미운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는지 순간 기분이 상했다. 그때 음성이 들려왔다. “이때에는 어쩌겠느냐.” “주여, 저렇게 말을 안 들으면 발로 뻥 차고 때려서 내보내야 합니다.” “그래, 그럼 해봐라.”

고삐를 잠시 내려놓고 말 안 듣는 양의 엉덩이를 찼다. 맞은 양이 ‘메에’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하게 앞만 보던 수천 마리의 양이 일제히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기하게 양들이 말을 했다. “무슨 목자가 저래. 무슨 목자가 고집쟁이 양하고 똑같이 굴어. 양이 잘못하긴 했지만 너무 한 거 아냐.”

깜짝 놀라 강대상으로 올라와 고삐를 붙들었다. 그러나 이미 여러 마리가 저쪽으로 도망가고 고삐도 뒤엉켜 당기면 당길수록 그 매듭이 꼬였다. 그때 다시 음성이 들렸다. “그 방법으로 되겠느냐?” 사방으로 흩어지는 양을 붙잡기 위해 고삐를 붙들고는 쩔쩔매며 말했다. “주여, 안 됩니다.”

그리고 손안의 고삐가 일렬로 정돈되더니 아까와 같은 장면이 또다시 펼쳐졌다. 무리 중 한 마리가 중간에 버티고 서 있고 나머지는 순하게 따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음성이 들려왔다. “그 양을 품에 안으라.”

고삐를 한쪽 손에 틀어쥐고 무리 사이로 내려가 버티는 양을 품에 안았다. 막상 품에 안으니 다소곳해지고 나머지 양들은 무리를 이탈하지 않고 따라왔다. 품속의 고집쟁이 양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이 녀석이 너무 힘들어서, 더는 갈 기운이 없어 그러고 있었구나.’

그러다 꿈에서 깼다. 마음속에 “정면 대결을 하지 말라”는 음성과 함께 모세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세의 지팡이가 손에서 떨어졌을 때 지팡이는 뱀으로 변해 모세를 물려고 덤볐다. 모세가 지팡이의 꼬리를 잡아 품에 품었다 빼자 능력의 지팡이가 되었다.

성도와 목회자의 관계도 그런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서든 성도가 목회자의 손을 놓쳤다고 생각하면 그는 상심하거나 반대한다. 그러나 목회자가 성도를 품으면 목회자를 돕는 든든한 지팡이가 된다.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고 그때마다 목회를 돕는 지팡이 같은 든든한 일꾼을 얻게 됐다.

김연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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