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 대구 간 김부겸 돌아왔다..총리 키워드는 통합
“축하는 무슨…. 산적한 난제를 잘 마무리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1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얘기다. 그는 자신의 인사 배경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국민한테 보여주려는 국정 운영 기조와 관계가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정치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 전 장관을 총리로 내정하면서 보여주려는 메시지를 ‘통합’으로 읽고 있다. 김 후보자도 그런 기대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총리 지명 직후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총리 후보자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협치와 포용, 국민통합에 더 많은 노력 기울이겠다”며 “대한민국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야당과 협의하고 협조 구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후보자에게 ‘통합’이란 단어가 자주 따라붙는 건 그의 정치 역정 때문이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당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TK(대구·경북) 출신이다. 1956년(호적상으로는 1958년 생)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중엔 학생운동을 하며 권노갑·한화갑 등 동교동계 인사들, 이해찬·유시민 등 현재 ‘친문(친 문재인)계’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인사들까지 다양하게 교류했다.
김 후보자는 1988년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1991년엔 ‘3당 합당’ 반대파가 주축인 ‘꼬마 민주당’에 입당해 부대변인을 맡았다. 당시 대변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김 후보자는 당이 쪼개지고 합쳐지는 과정에서 국민의힘의 뿌리인 한나라당 소속인 적도 있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으로 경기 군포에 출마해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2003년 이른바 '탈당파 독수리 5형제'의 일원으로 열린우리당에 합류하며 다시 노 전 대통령과 한배를 탔다. 이후 17·18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당적으로 경기 군포에서 내리 당선됐다. 하지만 2012년 19대 총선 때 돌연 지역구를 대구로 옮기겠다고 선언한다. 김 후보자는 2019년 6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큰 사고 안 치면 군포에서 국회의원 한 두 번 더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갑자기 부끄러워지더라. 우리 당의 불모지인 대구에 연고가 있으니까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자랑스러운 선배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준 감동을 다시 한번 해볼 필요도 있지 않나 싶었다.”
김 후보자는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다. 득표율 40.4%로 선전했지만 결국 낙선했다. 2년 뒤 대구시장 선거에도 나서지만, 권영진 현 대구시장에게 패배했다. 또 2년 뒤, 그는 20대 총선에서 다시 대구 수성갑에 도전한다. 결국 김문수 후보를 상대로 승리하며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던 TK에 민주당 깃발을 꽂는다. 1988년부터 총선이 소선거구제로 바뀐 뒤 대구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의 후보가 당선된 것은 처음이었다.
지역주의 타파로 ‘리틀 노무현’이라고까지 불렸던 김 후보자는 일약 대권 잠룡으로 떠올랐다. 2017년 대선에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현 정부에선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냈다. 지난해 총선에서 다시 대구 수성갑에 도전했으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고, 당권에도 도전했지만, 이낙연 전 대표에게 졌다. 그는 이후 “지역 민심을 고루 듣겠다”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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