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서엔 진짜 검사 이름도..더 교묘해진 '김민수 검사' 수법
"김민수 검사입니다."
진짜 검사인 줄 알았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전화를 받은 A씨는 그의 지시대로 전북의 한 은행에서 420만원을 찾았다. 인턴 생활을 하며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이었다. '김민수 검사'의 수사 압박에 KTX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인근 주민센터 택배함에 돈을 넣고 검사님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에 당한 것이다. 20일 뒤 A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보이스피싱범들에게 인생을 빼앗긴 절망감과 수치심 때문이었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1년이 넘게 지난 14일, 경찰은 이들 보이스피싱범 일당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A씨를 죽음으로 몰아간 ‘김민수 검사’ 일당은 붙잡혔지만, 지금도 또다른 피해자를 노리는 일당이 움직이고 있다. 수법은 더 교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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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날인 검사 이름 적힌 문서도 등장
직장인 서모(33)씨는 지난 9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전자문서 한장과 메시지를 받았다. 문서에는 서울중앙지검 날인이 찍혀있었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과 금융실명제법 위반이 혐의로 적혀있는 수사기관의 문건이었다. 발신자는 "본인 등록상 주거지로 2회에 걸쳐 해당 서류 발송을 했으나 반송으로 통신 고지 하니 해당 번호로 연락해달라"는 메시지를 함께 보냈다.
중앙지검 형사7부에서 근무하는 박석용 검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같은 문자를 받은 하모(32)씨는 "알아보니 형사7부에 같은 이름의 검사가 실제로 근무중이라 잠시 혼란스러웠다"면서 "검사가 자신의 이름이 도용되고 있는 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씨도 "다른 보이스피싱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같은 검사 이름으로 문서를 보내다니 그 수법이 점점 교묘해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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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 하루 25건, 6억원 피해
형법상 공무원 자격을 사칭해 행사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또 행사할 목적으로 공문서 등을 위조·변조할 경우에는 10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발생 피해액은 2017년 937억원에서 2020년 2228억원으로 3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난해 서울에서만 1일 25건이 발생했고 6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가상화폐와 코로나19 재난 지원금을 가장한 보이스피싱 등 신종 수법도 느는 추세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요즘 검사와 그 방 직원들을 사칭하는 피싱이 많다. 해당 검사도 사실을 알고 있다. 일반인들도 실제 근무하는 검사인지 정도를 공개된 정보로 찾아볼 수 있으니 피싱 수법도 발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기관은 피해자들이 받은 문서처럼 지명수배자한테 통보해주지 않는다. 문서 양식도 황당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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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가짜 확인 '찐센터' 운영
검찰을 사칭한 피싱이 늘면서 서울중앙지검은 보이스피싱 서류가 진짜인지 알려주는 콜센터, 일명 ‘찐센터’(010-3570-8242)를 운영하고 있다. 기자가 직접 연락해 앞선 사례를 문의했더니 찐센터 관계자는 "검사 명의의 문서가 진짜가 맞는지 문의가 여러 번 와서 가짜라고 확인해드리고 있다"면서 "중앙지검이 보낸 서류가 맞는지 진위를 저희가 확인해 시민들께 판별해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 측은 보이스피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금융거래정보요구는 일절 응대하지 말 것 ▶현금지급기로 유인하면 100% 보이스피싱 ▶개인 금융거래 정보를 미리 알고 접근하는 경우에도 내용의 진위를 확인할 것 ▶피해를 본 경우 신속히 지급정지를 요청하고 ▶유출된 금융거래정보는 즉시 폐기할 것 등을 조언한다. 또한 "문자 메시지 등으로 의심스러운 전화번호나 인터넷 주소(URL)는 클릭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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