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때문? 외국인이 서울시장 투표권 갖게 된 이유
지난 4·7 재보선에선 외국인의 서울시장 투표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 선거 관련 기사마다 ‘왜 외국인이 우리 정치에 개입하냐’, ‘외국인 투표권을 막아야 한다’ 등 댓글이 따라붙었다.
이는 지난해 총선 때부터 나타난 비교적 새로운 현상이다. 실제로 총선을 한 달 앞둔 지난해 3월 2일 청와대 국민청원 웹페이지엔 ‘중국인 영주권자의 지방선거 투표권 박탈해야 합니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21만5646명의 참여를 끌어내기도 했다.
청와대는 이 청원에 “(외국인도) 지역주민으로서 지역사회의 기초적인 정치 의사 형성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구현하려는 취지”라고 답했다. 이와 함께 뉴질랜드ㆍ덴마크ㆍ네덜란드 등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선거권을 주는 다른 나라를 예로 들었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투표권을 지닌 외국인은 3만8126명이었다. 전체 선거인 수 842만 5869명의 0.45%다. 선거인 중 80%는 중국인으로 추정된다. 수적으로는 외국인 투표권이 선거 결과를 결정적으로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외국인이 지방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일부 시민들은 이를 놀라워하기도 한다.
영주권 취득 후 3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선거권을 준 건 벌써 15년이나 된 일이다. 2006년 지방선거부터 외국인 영주권자는 표를 던졌다. 당시 뉴스는 한국에서 첫 투표를 한 외국인들의 감격에 초점을 맞췄다. 외국인이 우리 지방정부 리더십 선출에 개입한다는 비판 여론은 찾기 어려웠다.
그런 사안이 15년이 흘러 최근 정반대 여론 흐름을 맞이했다. 외국인 투표권자 대부분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에 불만을 제기하는 여론이다. 그렇다면 2006년 당시 국회는 왜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선거권을 주는 법을 통과했을까. 당시 분위기는 지금과 뭐가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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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라는 과제
외국인 지방선거 선거권이 주요 사안으로 국회에서 처음 거론된 건 김대중 정부 시절인 16대 국회(2000~2004년)였다. 새로운 세기를 맞은 김대중 정부는 ‘세계화’를 새 천 년의 시대적 과제로 인식했다. 전국 각지에서 세계 문화를 테마로 한 축제들이 이어졌다. 외국인이 등장하는 TV 프로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국회에서도 이에 응답하듯 세계화에 발맞춘 여러 법안을 내놨는데 그중 하나가 외국인 지방선거 선거권을 주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이었다. 2001년 5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여야는 한국에 오래 머문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선거권을 주기로 합의했다. 21세기 시대적 조류에 부응하고,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구현한다는 차원이었다. 특히 외국인이더라도 지방세를 내고 자치 법규와 지자체의 결정과 명령에 따르는 등 의무를 준수하는 만큼 이에 합당한 권리를 부여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2002년 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이 사안이 올라가자 외국인 선거권은 없던 일이 됐다. 여야 의원들은 외국인 선거권 조항에 맹폭을 퍼부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들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이에 동조하면서 조항은 삭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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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그리고 재일동포
17대 국회(2004~2008년) 들어 다시 논의가 시작됐다. 그런데 논의의 결이 사뭇 달랐다. 세계화와 지역주민의 권리 대신 ‘재일동포’라는 단어가 전면에 등장했다.
2005년 6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선거권을 주는 근거로 재일동포의 권리를 내세웠다. 당시 일본엔 60만명으로 추정되는 재일동포가 살고 있었다. 그중 영주권자는 40만명으로 추정됐다. 재일동포를 대변하는 단체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에 따르면,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최대 과제 중 하나는 일본 지방선거 선거권을 얻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가 먼저 선거법을 바꾼 뒤, 일본 정부를 설득하자는 게 정개특위의 논리였다.
하지만 이 역시 처음엔 반대에 부딪혔다. 2005년 6월 통일외교통상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일본과 미리 이야기해서 우리도 할 테니 너희도 하라는 식의 ‘상호주의’로 해야 하지, 일방적으로 일정 기간 거주한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준다는 건 곤란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당시 여당 측에선 “우리는 주고 있는데 너희는 왜 안 주느냐는 식으로 (일본 정부를) 유도하기 위해 먼저 개방하자는 취지”라고 반박했다. 당시 국회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비롯해 민주노동당ㆍ새천년민주당 등 진보 계열 의석수가 과반이었던 시기기도 해서 최종적으론 외국인 지방선거 선거권을 신설하도록 공직선거법이 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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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설득됐나
그렇다면 당시 국회 의도대로 일본은 재일동포에게 지방선거 선거권을 줬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일본의 경우 논의 자체는 우리보다 빨랐다. 1995년 2월 일본최고재판소가 “외국인 영주권자에 대한 선거권 부여는 위헌이 아니며 입법 정책상의 문제”라고 판시했다. 판결 직후 일본 내에서도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선거권을 주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논의 때마다 보수 성향의 자민당이 “이보다는 국적법을 개정해서 외국인 영주권자가 일본에 귀화하는 요건을 완화하자. 외국인을 귀화시켜서 선거권을 주는 게 자연스럽다”고 주장하면서 번번이 무산됐다.
일본의 작은 마을인 시가현 마이하라초가 2002년 3월 주민투표에서 일본 최초로 외국인 영주권자 13명에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적이 있지만, 지자체장 선거엔 아직 외국인이 참여한 적이 없다. 현재는 한일 관계도 경색돼 있어 이 논의를 언제 다시 꺼낼 수 있을지도 난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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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준다. 하지만 반쪽짜리.
다른 나라는 어떨까. 우선 민주주의 선거 제도를 채택한 나라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에 외국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곳은 거의 없다. 다만 지방선거 투표권의 경우,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한 나라는 꽤 있다. 특히 EU(유럽연합)는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통해 EU 소속 시민이면 EU 소속 국가 도시 중 어디에 살든 그 나라의 국민과 같은 조건 아래 지방선거에 투표하고 후보자가 될 권리가 있다고 정해놨다. 더 나아가 스웨덴ㆍ덴마크ㆍ노르웨이ㆍ핀란드ㆍ네덜란드 같은 개방적인 북유럽 국가는 EU 소속이 아닌 외국인에게도 이 권리를 열어놨다.
영국을 비롯해 호주ㆍ뉴질랜드ㆍ인도ㆍ캐나다 등 영연방 국가들은 서로 지방선거 선거권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들은 '코먼웰스(Commonwealth)'라는 명칭으로 묶이며, 이들끼리 개최하는 올림픽도 있을 정도로 역사와 물리적 거리를 넘어 외교적으로 끈끈한 사이다.
미국의 경우 주별로 일부 지방선거에 선거권을 주는 곳이 있지만, 국가 전체로 볼 때 사실상 외국인이 지방선거 선거권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특히 미국 이민법은 매우 강력한 편이라 외국인이 실수나 고의로 투표를 할 경우 추방당할 수 있다.
중국이나 북한의 경우 겉으론 선거가 있지만, 여느 민주주의 국가처럼 제대로 작동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연히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선거권을 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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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국회가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선거권을 주기로 한 목적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세계화, 지역주민의 권리, 그리고 재일동포의 일본 선거권 취득이다. 현재 상황을 놓고 보면 세 목적 중 외국인에게 지역주민 권리를 부여한 부분만 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인·화교가 90%에 육박하므로 세계화와는 거리가 있고, 아직 재일동포 선거권도 일본으로부터 얻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2000년대 중반 벨기에도 이런 진통을 겪었다. 벨기에는 2004년 터키나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에 대해 지방선거 선거권을 주도록 선거법을 바꿨다. 지역 사회 일꾼을 뽑는 권리를 줘서 이들을 벨기에 사회에 통합시키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막상 지방선거를 치러보니 외국인 투표 참여율은 매우 저조했고, 외국인 선거권에 반대하는 보수층 여론이 강해지면서 갈등만 커졌다. 다문화사회 통합을 목적으로 한 외국인 선거권 논의는 국가민족주의, 반(反)세계화 흐름에 부딪히며 세계 곳곳에서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영상=김지선ㆍ정수경 PD, 김지현ㆍ이가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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