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 억제→중증·사망 감소..슬며시 방역목표 바꾼 정부

이우림 2021. 4. 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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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직원 1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은 16일 경기 과천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계약이 완료되지 않은 국내 제약사 백신 위탁생산 계획을 섣불리 발표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정부가 16일 셀프 칭찬에 나섰다. 미국과 영국, 독일, 이스라엘, 일본 등 5개 국가와 한국의 코로나19 발생 및 예방접종 상황을 비교하면서 “확진자 증가세에도 인구 100만명당 누적 발생 비율이 현저하게 낮다”고 강조한 것이다. 백신 접종률이 떨어지고 백신 수급 상황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 대한 성찰은 뒤로 밀렸다.

선전하고 있는 부분을 내세우다 보니 방역 목표도 흔들리고 있다. 이날 방역당국은 “코로나19 관리의 최종 목표는 위중증과 사망자를 최소화하는 것”이라며 ‘확산 억제’에 초점을 뒀던 기존 목표와 사뭇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모습이지만 오히려 불안감만 증폭되고 있다”며 “결국 방역 전략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걸 인정하고 전환된 전략을 솔직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요 국가보다 확진자 비율 낮아” 셀프 칭찬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16일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정례 브리핑에 앞서 ‘주요 국가들과의 발생 및 예방접종 상황을 비교한 결과’ 자료를 제시했다. 주요 국가 안에는 미국과 영국, 독일, 이스라엘, 일본이 포함됐다. 방대본은 “최근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아직 주변국보다 지역사회 발생은 높지 않은 상황”이라며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며 일본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고 강조했다. 실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인구 100만 명당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2162명이다. ▶미국 9만4929명 ▶영국 6만4703명 ▶독일 3만6816명 ▶이스라엘 9만6160명 ▶일본 4089명에 비해 낮은 수치다.

하지만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백신 접종률이나 수급 방안에 대한 성찰은 없었다. 표에서 1회 이상 백신을 접종한 비율을 보면 ▶미국 37.1% ▶영국 47.6% ▶독일 16.8% ▶이스라엘 61.8% ▶일본 0.9%인데 반해 한국은 2.5%였다.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백신 접종 속도가 한국보다 월등히 빠른 상황이다. 그러나 방대본은 “아직 주요 국가 대비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률은 낮은 상황이지만 향후 낮은 발생상황을 유지하면서 백신 접종을 지속해서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언급할 뿐이었다.


관리 목표, ‘확산 억제’보다 '위중증·사망’에 방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비상이 걸린 15일 대전 중구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어르신들에게 접종할 화이자 백신을 신중히 준비하고 있다.김성태 기자

당국의 방역 목표도 갑작스레 달라진 모습이었다. 배경택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상황총괄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코로나19 관리의 최종목표는 피해 최소화, 즉 위중증과 사망자를 최소화하는 것”이라며 “요양병원 및 요양시설의 종사자와 입소자를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실시한 결과 병원 및 요양시설 관련 코로나19 확진 환자의 발생 비율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전날 권준욱 방대본 제2부본부장이 “결국 위중ㆍ중증ㆍ사망자 발생을 최소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며 “1차로 65세 이상, 2차로 기저질환자 접종을 통해 방어력이 확보된다면 그 순간이 바로 1단계로 국내에 집단면역이 완성되는 시기”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초 방역당국은 ‘확산 억제’에 집중해왔지만 최근 확산세가 600~700명대를 보이며 확산하자 ‘중증ㆍ사망률’ 감소로 초점을 바꾼 것이다.


전문가 “바뀐 방역 전략 인정하고 솔직한 태도 필요”

백신 접종 현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질병관리청]

정부의 이런 태도에 전문가들은 “당장 임기응변식 대응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솔직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지금의 정부의 모습은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을 쓰는 것밖에 안 된다. 일관성 없이 하니까 말의 앞뒤가 안 맞는 것”이라며 “일관성이 무너지면 결국 국민에게 신뢰를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재훈 가천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전날 백신 위탁생산 계약을 미리 발표한 것을 두고 “던지듯이 발표를 한 모습이다. 계약 전에 발표를 하면 혼란만 가중된다. 확정된 것, 그리고 지킬 수 있는 것만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위중증ㆍ사망자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에 대해선 “결국 방역 전략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라며 “이전에는 확진자 숫자 자체를 줄이기 위해 역학조사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제는 피해 완화 전략을 쓰는 것이다. 이제는 달라진 목표를 깔끔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방역 전략이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코로나19 특성상 확진자 0이라는 목표는 불가능하다. 최근 사망자가 확 줄었는데, 이제는 방역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틀어막고 경제활동을 중단한 채 살 수는 없다. 다만 국민들에게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이런 부분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게 먼저다"라고 말했다.

백신 물량 확보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화이자나 모더나 같은 백신을 최대한 당겨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바이든 대통령을 만난다고 하는데 모든 경제ㆍ외교적 수단을 동원해서 물량 협상에 성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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