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의학②] '백신 효과'도 다른 남녀.. '성차' 알아야 정밀치료

전혜영 헬스조선 기자 2021. 4. 1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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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선 性도 '생물학적 요인' 고려.. 국내서도 '젠더혁신법' 통과

백신 접종 후 남녀의 면역 반응에 차이가 있다면? 코로나19 대응에도 큰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물론 성별에 맞춘 코로나19 대응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만약 ‘성차의학(sex specific medical)’이 자리 잡으면 감염병을 포함한 각종 질환에 대한 ‘성별 대응’이 일반적인 일이 될지 모른다.

남녀는 실제로 같은 질병에 걸려도 다른 증상과 경과를 나타낸다. 생물학적 차이를 넘어, 사회·문화적인 맥락에 따라 다른 종류의 아픔을 호소한다. 특정 질환으로 병원에 방문하는 사람의 비율도 다르다. 성차의학은 그렇게 성별 차이로 비롯되는 질병 양상을 연구하고, 그에 적합한 치료를 제공하려는 의학 분야다. 국내 성차의학 권위자인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는 "성차의학은 남녀 모두의 건강에 도움이 되게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연구 갈래"라고 말했다.

여성은 황열병 백신에 대해 남성보다 더 높은 염증 반응을 보였다./사진=젠더혁신연구센터 제공

◇"여성은 남성보다 항체 반응 더 크게 나타나"

백신 접종 후 나타나는 면역 반응에 정말로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을까. '차이'를 확인한 연구가 있다. 지난 2015년 미국 존스홉킨스 공중보건대 해리 파인스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예방접종 후 항체 반응이 더 크게 나타나거나, 더 빈번한 부작용을 겪는다. 이로 인한 면역 효과 또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백신을 투약할 때는 성별 특성을 반영해 제형·복용량·투약법·보조제 등을 조절해야 한다는 게 연구의 결론이다. 이처럼 성차의학은 백신을 비롯해 공중보건 정책 수립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질병 양상 다른 남녀, 진단과 치료도 달리해야

성차의학을 진단과 치료에 적용하면 환자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치료, 즉 '정밀의학' 실현에 보다 가까워진다. 남녀 간의 질병 양상 차이를 미리 알고 있다면 남성과 여성 환자 모두를 더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나영 교수는 "생식기능, 성호르몬 농도, X와 Y 성염색체에서 표현되는 유전자의 차이, 이 밖에 젠더적(사회적)인 요소와 이들 간의 관계는 의료인의 판단을 돕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예컨대 약 처방에 차이를 두거나, 예방적 치료, 심장 수술에 대한 수용적 태도 등 의료 전반에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차의학의 대표적인 연구 사례로는 ▲뇌 발달 연구 ▲여성 심장질환 ▲남성 골다공증 ▲줄기세포 연구 등이 있는데, 소화기내과 전문의인 김나영 교수는 소화기질환의 성별 차이에 주목했다. 여성과 남성에서 기능성 소화기질환(과민성장증후군, 위식도역류질환 등)의 주요 발생 기전이 다르다는 것. 남성의 기능성 소화기질환은 주로 산, 그렐린 호르몬, TRPV1(캡사이신에 반응하는 수용체) 등으로 인해 발생하지만 여성은 주로 우울, 불안 등 심리적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다. 김나영 교수는 "여성은 스트레스 호르몬에 생리적으로 취약해 스트레스가 곧바로 전신에 전달된다"며 "따라서 여성의 소화기질환을 치료할 때는 심리적 요인을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갑상선질환도 남녀 간 차이가 큰 질환 중 하나다. 여성은 남성보다 갑상선기능항진증 발병률이 높지만, 비교적 치료 기간이 짧고 예후도 좋다. 갑상선기능항진증 치료는 약물·수술·방사선 치료 등으로 이뤄지는데, 이중 수술과 방사선 치료는 갑상선을 제거하는 방법이므로 갑상선 기능 저하를 막기 위해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최근 일산차병원은 여성 특화 병원이라는 강점을 살려 내과 질환 치료에 있어서 성차의학을 도입해 치료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산차병원 내분비내과 임창훈 교수는 "여성의 경우 최대한 약물치료 기간을 길게 설정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치료 계획을 세운다"며 "남성과 여성의 치료 가이드라인을 차별화해 정밀치료를 실현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성에게 많다고 알려진 '심장질환', 여성에게 많다고 알려진 '골다공증'도 성차의학적 진료 개념이 도입되어야 하는 질환이다. 남자는 심장질환을 조심하고, 여자는 골다공증을 조심하라?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오히려 너무 잘 알려진 이 사실 때문에 '여성 심장질환자'와 '남성 골다공증 환자'는 피해를 봤다. 현재 허혈성 심장질환은 미국과 유럽에서 여성의 가장 주요한 사망 원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남성질환으로 간주되어 온 터라, 잘못 진단되거나 치료시기를 놓치는 겨 경우가 많았다. 남성 골다공증도 마찬가지다. 남성도 골다공증에 걸린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치료시기를 놓쳐 골절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했다.

골다공증은 여성질환이라는 인식이 남성 골다공증 환자들의 진단을 늦어지게 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이제는 대세 '성차의학', 의대 수업으로 개설되기도

지난 2017년 한국을 방문한 성차의학 연구자 스탠퍼드대 론다 쉬빙어 석좌교수는 "스탠퍼드에서는 의대 교수들의 약 20%가 성차 개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연구 과정에 반영하고 있다"며 "캐나다에서도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선 성과 젠더 분석을 필수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는 상당수 의학자가 의학 연구와 진료에서 성과 젠더 개념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추세지만, 아직 국내 의학자들의 인지도는 떨어지는 실정이다.

김나영 교수는 "성차의학이라고 하면 일부 의사들도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성(sex)을 연구하는 학문이냐고 질문하곤 한다"며 "최근 들어서는 남녀 간의 병리학적 차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성차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인지하는 경우는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국내에서 성차의학을 다루는 자료나 전문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는 점차 의료계 전반에서 성차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2018년과 2019년, 서울대 의대에는 본과 2학년을 대상으로 '성차의학'이라는 선택과목 수업이 개설됐다. 첫 수업에서는 8명이 신청했지만, 이듬해에는 14명이 참여할 정도로 학생들의 호응이 좋았다. 수업 내용은 ▲소화기질환 ▲심장질환 ▲간질환 ▲약동학·약력학 등에서의 남녀 차이로 구성됐다. 당시 강의에 참여한 김나영 교수는 "수업에 참여한 의대생들은 정밀의학에 성차가 기본이라는 입장에 큰 관심을 보이며 토론에도 열심히 참여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사진-연합뉴스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 통과… "젠더혁신 활발해질 것"

성차의학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고, 남성과 여성 모두의 건강을 지키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성차의학 관점의 의학적 연구가 선행적으로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캐나다 보건연구소는 2010년부터, 유럽위원회는 2014년부터, 미국국립보건원은 2015년부터 연구비 지원서에 성이나 젠더 요소를 고려하고 있는지 명시하도록 했으며 연구 설계부터 분석·보고 과정에 이르기까지 성을 생물학적 요인으로 반드시 고려하도록 규정한 바 있다. 김나영 교수는 "국내서 성차의학의 영향이 미미한 것은 임상 전문가 영역으로의 확산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책과제연구비 배정 등 정책적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성별특성을 반영한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 일명 '젠더혁신법'이 통과됐다. 연구개발에 성별 특성을 고려하고, 기술영향평가를 할 때 대상기술의 성격을 고려해 성별 특성 분석을 반영하며, 과학기술통계와 지표 조사·분석에도 성별 등 특성이 반영되도록 한 것. 이에 앞서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前 여성과총 젠더혁신연구센터)에서 지난해 10월 '성과 젠더요소를 고려한 연구 가이드라인: 의생명분야'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나영 교수는 "이번 개정안 통과와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의 노력으로 남녀 모두를 위한 젠더혁신 연구 확산이 한층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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