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의 소송 8개월.. 증거 하나 제출 안 한 육군

명숙 2021. 4. 1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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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청기] 변희수 전 육군 하사의 전역 처분 취소 청구 소송 첫 공판

[명숙 기자]

 원고는 변희수. 15일 오전 대전지방법원에서 변희수 하사 전역 처분 취소 소송이 진행됐다.
ⓒ 유지영
"피고 측에게 입증책임이 있는데 증거자료를 하나도 제출하지 않았네요."

15일 대전지방법원에서 고인이 된 변희수 육군 하사의 전역처분 취소소송 첫 심리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판사가 피고인 군법무관에게 한 말이다. 성확정수술(성전환수술) 이후 군에서 쫓겨난 변 하사가 살아있을 적에 제기한 취소소송이다.

벌써 8개월이 흘렀으나 아직 군은 증거자료 하나 제출하지 않았다는데 할 말을 잃었다. 변 하사 측 변호사도 이를 짚었다. 군은 전역심사위원회 심사자료 등 증거자료를 하나도 제출하지 않았다. 모든 재판이 그렇듯 피고가 자신이 상대방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 아니거나 적법한 것이었다는 증거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하고도 근거조차 제출하지 않다니! 군의 태도에 대한 화가 났다.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직업을 박탈한(전역처분한) 군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오만함이다. 굳이 입증할 필요도, 설명도 없다고 여기는 오만함은 우리에게 분노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숱한 사건에서 보아왔던 태도이기도 하다. 동시에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것 같았다. 전역처분과 변 하사의 죽음은 국가폭력이자 사회구조적 폭력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맑아졌다.

입증책임을 가벼이 여기는 가해자들의 당당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편견에 근거해 권리를 박탈할 수 있는 권력으로부터 비롯된다. 군 지휘부에 자의적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권력을 줄 것인가, 그 권력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 모든 구성원에게 권한을 골고루 나눠줄 것인가가 중요한 이유다.

평등하지 않은 군의 구조. 여성 군인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나 동성애 군인 색출 사건 등에서도 보이듯, 군은 성별정체성이나 성적지향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는다. 군의 차별행위에 대해 '군 기강 해이'나 '국방력 약화'라는 말로 대충 얼버무려도 만병통치약처럼 통하는 '비합리적, 비상식적, 반인권적' 인식과 논리, 문화가 팽배한 것이다. 여전히 1950년대식 사고를 하고 있는 군 수뇌부는 분단체제를 볼모 삼아 차별 행위를 정당화하는데 동원한다. 

국가배상이라는 엉뚱한 대답을 한 군
 
 대전지방법원 전경
ⓒ 유지영
 
군은 변 하사가 세상을 떴으니 소송은 안 해도 될 것이라고 여긴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재판부가 소송 승계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재판부가 왜 소송을 이어갔는지는 재판에서 알 수 있었다. 판사는 피고 측인 군법무관에게 물었다.

"피고 측에선 봉급 등은 어떻게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요? 일반소송에서는 무효확인소송으로 가능할 텐데, 가령 취소소송이라고 한다면 전역처분이 취소가 되지 않는 이상 구할 길이 없지 않은 거 아닌가요?" 

피고 측 법률대리인이 법무관은 대답한다.

"저희 처분이 위법하다고 다투고 있기 때문에 국가배상 등의 다른 것으로 하면 됩니다."

판사는 딱 잘라 알려준다. 

"국가배상은 손해 상의 문제구요, 봉급은 군의 지위가 회복돼야 받을 수 있지 않나요? 그런 차원에서 잠정적 판단이기는 하지만 소송 승계를 인정했고요."

법을 잘 모르는 방청인이 내가 듣기에도 군은 이번 재판과 관련해 어떤 준비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송수계는 소송 절차 중단을 막기 위한 제도로, 소송을 낸 원고(변 하사)가 사망한 상황이어서 유가족이 소송수계를 신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재판이 이어진 것이다. 왜 전역취소 소송을 하려는지는 관심 없고 그저 손해만 배상하면 된다고 여긴 것은 아닐까? 

그 외에도 변 하사가 수술하게 된 과정에 대한 답변도 빈약한 논리였다. 변 하사는 국군병원에서 '성주체장애진단'을 받은 뒤에 성확정수술(성전환수술) 얘기를 듣고 수술하려고 휴가를 받았다. 이는 지휘부와 동료들이 안다. 변 하사는 수술 후에도 '계속 복무'를 희망했으나 군은 성기손상이라며 '심신장애 3급 판정'을 하며 강제로 전역 조치했다.

판사가 수술에 대해 상사나 병원의 동의와 승인이 있었던 사실에 대해 어떻게 보냐고 물었다. 군 측 법률대리인은 휴가는 단순한 휴가권의 보장일 뿐이며, 여단장이 수술에 대해 독려해준 것은 개인적 의견일 뿐이라고 했다.

변 하사가 장성급 지휘관인 여단장에게 보고했고 여단장이 격려했는데도 그것은 단순한 개인 의견일 뿐이라니! 인사권자는 육군참모총장이므로 여단장의 응원은 해당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술 후에도 계속 복무할 수 있을 거라는 메시지는 아니었단다. 직접 육군참모총장을 만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뜻인가.

첫 심리고 증거자료도 제출하지 않아 20여 분간의 짧은 재판이었지만 군의 허접하고 잔인한 실체를 본 것 같아 씁쓸했다. 전역처분 때문에 괴로워하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이렇게 달라진 모습이 없을 수가 있나. 

성소수자의 시민권 투쟁
 
 15일은 변희수 하사 전역 처분 취소 소송 1차 변론 기일이었다. 15분 정도 소요된 첫 공판을 마치고 난 이후 대전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맨 왼쪽에 있는 사람이 명숙 활동가이다.
ⓒ 유지영
 
변 하사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최소한의 노력도 보이지 않는 군을 보며 생각한다. 수많은 국가폭력이나 인권침해사건이 그랬듯이 피해자가 증거를 찾고 불법성과 인권침해를 알린다. 씁쓸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여전히 군대에서 성소수자는 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아니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의 직업선택의 자유, 직업안정의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 소위 말하는 시민권이 없다.

그런 점에서 변 하사는 정말로 대단한 용기를 가진 여성이다. 자신의 상황을 끊임없이 동료와 상사에게 논의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 그녀의 용기 덕에 우리는 그녀가 떠난 후에도 성소수자의 시민권 확보를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또 누군가의 목숨에 빚져 만들어내는 존엄과 권리... 하늘의 별이 된 그녀가 더욱 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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