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깜깜절벽 화석·문화재 분석..환히 비출 창을 내다

이종길 2021. 4. 1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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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분석정보센터 대전서 15일 개관
시료채취·전처리·분석·보관·데이터베이스까지 체계적 관리
가속질량분석기 등 장비 도입 예정..인력 채용이 과제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분석정보센터

흥수아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장 화석으로 알려져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EBS 등 다양한 매체에서 구석기 시대 화석 인류로 소개했다. 그러나 학술적 근거는 놀라울 정도로 빈약하다. 절대연대 자료조차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1987), 서울대(2007),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2011)에서 진행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은 시료 불량으로 실패했다. 2011년 프랑스 인간고생물학연구소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에선 17~19세기로 분석돼 학계에 충격을 안겼다. 충북대 측은 경화제를 사용한 인골에서 시료가 추출돼 믿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흥수아이가 발견된 1983년만 해도 시료 조사에 대한 인식이나 기술 보급이 미미했다. 당시 경화 처리된 인골은 지금 기술로도 절대연대를 측정하기 어렵다. 캘리포니아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의 이상희 교수는 논문 ‘흥수아이 1호는 과연 구석기 시대 매장 화석인가?(2018)’에서 "여러 정황상 흥수아이가 화석이 아닌 홀로세의 인골일 가능성이 크다"라며 "자료를 파괴하지 않고 탐구할 수 있는 접근법에 대해 모색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인골 발굴 조사

뼈의 연대를 직접 측정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법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이다. 뼈의 모든 부위를 활용할 수 있다. 다만 단백질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긴 뼈나 치아가 대상이어야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신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생명체가 죽으면 탄소 동위원소는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드는데 그 반감기는 5730년"이라며 "남아 있는 탄소 동위원소의 양을 측정해 언제 죽었는지 추정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10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문화재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기기가 없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의류시험연구원 등에서 운영하지만 하나같이 다른 분야에 특화해 전문성이 떨어진다.

채취한 시료를 해외 기관에 의뢰해 분석결과만 받아보는 방법 또한 한계가 있다. 시료 선정은 물론 오염 위험,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높은 단가와 긴 분석시간, 해외 유출도 걸림돌이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어 시료의 25%가 해외로 건너가는 실정이다. 여기서 85%는 일본에 맡겨진다. 시료당 100만원씩 지불한다.

유전자원(고DNA실험실-인골조사)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5일 개관한 문화재분석정보센터는 이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다양한 유물 시료를 보관·관리하며 체계적인 분석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연대측정 실험실, 질량 분석실, 시료 보관실 등을 두고 있다. 지병목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시료 채취는 물론 전처리, 분석, 보관, 데이터베이스까지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하다"라며 "국보·보물 문화재의 지정과 검증 프로세스 구축으로 정책 활용은 물론 빅데이터 기반의 공공자원 개방·공유 등을 서비스하겠다"라고 밝혔다.

핵심 장비들은 아직 들여오지 않았다. 뼈·목재·섬유의 방사성탄소연대를 측정하는 가속질량분석기와 토기·기와·토양의 연대를 측정하는 광발광연대측정기가 바로 그것이다. 오는 8월과 내년에 각각 도입한다. 문화재분석정보센터는 현재 이들 기기의 자리를 비워둔 채 시료 전처리실, 안정동위원소 분석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시료에서 외부 오염물을 제거하고 문화재·유물의 시대 정보가 간직된 성분을 분리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가령 뼈에서는 콜라겐, 나무에서는 셀룰로오스를 추출한다.

뼈·목재·섬유의 방사성탄소연대를 측정하는 가속질량분석기

신 학예연구관은 "시료 채취 후 오염물을 제거하고 흑연화해 시편으로 제작하는 것"이라며 "다양한 재질의 전처리 절차 수립과 국제표준실험실 구축으로 분석 신뢰도가 크게 높아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가속질량분석기는 질량의 차이로 극미량 동위원소를 분석할 수 있다. 목탄의 연대측정 분석이 주를 이룬 고고학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신 학예연구관은 "시료 자체의 신뢰도가 높은 뼈, 목재, 지류, 섬유류뿐 아니라 화장 뼈, 옻칠, 교착제, 토기 내 유기 잔존물을 개선된 전처리법으로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발광연대측정기의 활용도 역시 다양하다. 토기·기와·토층·벽체에 빛에너지를 가할 때 나타나는 물리적 현상으로 토기 등이 빛에 노출된 마지막 시기를 알 수 있다. 신 학예연구관은 "약 50만년 전까지 연대측정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분석정보센터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막 들여온 장비로 체계를 잡아가는 단계다. 지 소장은 "2025년까지 국내외 기관 간 협업, 국제표준실험실 등의 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 인력 수급도 절실하다. 현재 보존과학연구실 연구담당자는 고작 세 명. 가속질량분석기·광발광연대측정기 운영은 물론 국가지정문화재 지정·보존 관련 과학분석, 재질별 문화재 분석 업무를 모두 수행해야 한다.

해외의 문화재 기관들은 고생물유체, 토기·도자기·유리, 지류·직물, 목재 같은 각 분야마다 분석관을 따로 두고 있다. 효율적인 업무 자립부터 선행돼야 흥수아이의 착오를 막을 수 있는 셈이다.

대전=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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