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루 세 개를 구멍 내고, 붓 천 개를 닳게 썼다니

이완우 2021. 4. 1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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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상이암의 자연과 잘 어울리는 명필가 창암 이삼만

[이완우 기자]

성수산 상이암은 순천완주고속도로의 임실IC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에 있다. 성수산은 곡우 절기를 맞아 봄의 새싹 잔치가 열렸다. 이른 봄부터 생강나무, 진달래, 산 벚꽃이 차례로 피고 졌다. 이제는 산길 돌무더기 틈에 병꽃나무, 쇠물푸레나무, 매화말발도리가 연두색 잎과 함께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비목의 새싹이 찻잎처럼 윤기가 있다.

온 산의 나무에 새싹이 돋아나는데, 계곡 전체의 나무마다 모두 색채가 다른 듯하다. 다양한 색깔로 꽃이 피면 울긋불긋 하다고 한다. 다양한 연두색으로 나뭇잎이 이곳저곳에서 피어나는데 어떤 표현이 적절할까?

여름의 짙은 녹음은 왕성하지만 단조로운 색깔이다. 늦은 봄의 신록도 통일되어 가는 느낌의 색채다. 이즈음 곡우 절기의 나뭇잎들의 색깔은 '어린 녹색'이다. 꽃보다 예쁜 새잎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꽃 같이 예쁜 새잎이라고 할 만하다.

성수산 상이암은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 태조 이성계의 설화가 전해오는 환희담(歡喜潭) 암각서와 삼청동(三淸洞) 어필각이 으뜸이다. 향로봉으로 불리는 구룡쟁주(九龍爭珠)의 여의주 바위는 언제나 의연하다. 상이암(上耳庵)의 암자 명칭은 '주상(임금)의 귀에 하늘에서 성수만세(聖壽萬歲) 소리가 들렸다'는 설화에서 유래한다.

상이암 칠성각의 명필 편액
 
▲ 상이암 칠성각 편액 천년 고찰 기도터와 잘 어울리는 글씨다
ⓒ 이완우
 
이 암자의 칠성각의 편액은 조선 시대 명필인 창암 이삼만의 글씨다. 기도터로 유명한 천년고찰 암자에서 명필이 정성 들여 쓴 글씨를 만나고, 그 글씨에 어린 생동감 있는 기운을 느끼게 되니 뜻밖의 기쁨이다.

상이암의 칠성각 편액에서 창암 이삼만의 자연스럽게 흘려 쓴 행서체를 본다. '七' 자는 무게와 안정감이 있으면서, 경쾌하게 오른쪽으로 미끄러지는 듯 속도감이 느껴진다.

'星' 자의 부수인 '日'은 간결하다. 글씨 아랫부분인 '生'은 넘어질 듯한데, 마지막 가로획이 힘을 주어 균형을 잡고 있다. 글씨가 힘을 주어 긴장하는 근육처럼 생동감이 있다.

'閣' 자는 단순 명쾌하며, 삐침 부분에 갈필이 나타나 있다. '七星閣' 세 글자에서 생동하는 기운이 느껴진다. 칠성각 편액의 글씨가 한 글자 한 글자마다 기운이 흘러넘치는 그림 한 폭과 같다.

편액 왼편 하단에는 창암 이삼만의 '晩三李' 낙관이 있다. 창암 이삼만(李三晩, 1770~1847)은 추사 김정희(1786~1856), 눌인 조광진(1772~1840)과 함께 조선 후기 삼대 명필의 한 사람이다. 산은 높고 물은 맑은 우리나라의 산수가 그의 행운유수체(行雲流水體)의 자연스러운 조형미로 개성 있게 형상화되었다.
 
▲ 상이암 칠성각 상이암 칠성각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환희담 암각서가 칠성각 앞에 있다.
ⓒ 이완우
 
임실 성수산은 구룡쟁주의 산세로 꿈틀거린다. 아홉 줄기의 바위 능선이 상이암 암자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형국이다. 그 바위 능선 사이의 계곡에는 맑은 물줄기가 흐른다. 창암 이삼만의 글씨는 계곡을 흐르는 물과 같은 유수체(流水體)라고 한다. 산과 물, 임실 성수산의 자연이 그의 글씨와 잘 조화된다.

붓 하나를 인생의 기둥 삼아 살다

창암 이삼만의 부친은 뱀에 물려서 사망했다. 그래서 그는 뱀만 보면 잡아 없앴다. 뱀들도 그를 보면 겁을 먹고 기를 못 썼다고 한다. 전주 인근 지역에서는 음력 정월에 '李三晩' 글씨를 쓴 종이를 집의 기둥에 거꾸로 붙였다. 이렇게 하면 뱀이 집안에 얼씬하지 못한다는 풍습이 있었다.

창암 이삼만은 평생 가난 속에서 자연을 벗하는 시골 서생이었다. 붓 하나를 인생의 기둥 삼아 살았다. 그의 글씨는 용사비등하여 힘과 기운이 넘치고, 행운 유수하여 호탕하고 자유로운 개성적인 명필이었다.

창암 이삼만이 한때 전주 풍남문 근처를 지나다가 부채 장수의 자리를 잠시 지켜준 적이 있었다. 전주 한지가 붙여진 부채를 보자 그는 갑자기 글씨가 쓰고 싶어졌다. 그는 부채마다 글씨를 써 놓았다. 부채 장수가 돌아와서 아까운 부채를 다 버렸다며 화를 내었다.

얼마 후에 중국인 한 사람이 그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부채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았다. 중국인은 그 부채를 모두 샀다. 그래서 창암 이삼만의 쓴 글씨가 중국까지 전해져 유명해졌고, 그의 글씨를 배우러 오기도 했다고 한다.

벼루 세 개를 구멍 내고, 붓 천 개를 닳게 하다
 
▲ 신포정 편액 임실 오수천변 신포정 정자의 편액으로 이삼만의 글씨다
ⓒ 이완우
 
창암 이삼만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와 대조된다. 추사 김정희는 직선의 필획을 잘 구사하였고, 창암 이삼만은 한 획 한 획 무한한 용틀임이 있는 곡선의 필획을 잘 구사하였다. 창암 이삼만의 글씨는 한 획 한 획이 밭을 쟁기로 갈 듯 썼다.
임실 성수산 상이암의 칠성각 편액에서 창암 이삼만의 글씨를 확인하였다. 성수산 상이암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따라가면, 오수 천변의 정자 신포정에서 '신포정' 편액 '薪浦亭' 글씨, 오수 둔덕리 이웅재 고가 옆의 '삼계강사' 편액 '三溪講舍' 글씨가 창암 이삼만의 글씨를 더 만날 수 있다.
 
마천삼연 독진천호
磨穿三硯 禿盡千毫
 
세 개의 벼루를 갈아서 구멍을 내고,
천 개의 붓을 다 닳아 해지게 하였다.

 
이 글귀는 창암 이삼만이 가난 속에서 평생 글씨쓰기 한 길만 정진한 그의 생애를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는 칡뿌리, 대나무, 새의 털을 활용하여 붓을 만들어 글씨를 썼다. 모래 바닥과 바위 표면에 글씨를 썼고, 삼베에도 글씨를 썼다. 벼루 세 개를 먹으로 갈아 구멍을 내었다는 이 이야기는 그의 서도 정진의 태도를 잘 나타낸다.
기도터에서 심신을 수양하고 염원을 기도할 때는 정결하고 독실한 마음이 우선이다. 벼루 세 개를 구멍 내고 붓 천 개를 닳게 한 창암 이삼만의 글씨에서 한 글자 한 글자 기도하는 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 삼계강사 편액 임실 오수 삼계강사의 편액으로 이삼만의 글씨다
ⓒ 이완우
 
창암 이삼만의 글씨에서 선녀의 옷은 바느질 솔기가 없다는 문구가 연상된다. 상이암의 구룡쟁주 명당에는 잠룡이 꿈꾸고 기도하며 승천하려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용사비등의 산세가 수려한 성수산 상이암에 창암 이삼만의 글씨가 잘 어울린다.
임실 성수산에는 옛날의 술병 닮았다는 병꽃이 피고 있다. 매화처럼 예쁜 매화말발도리가 꽃말처럼 애교를 표현하는 계절이다. 임실 성수산 상이암에 칠성각 앞에 다시 서서 명필의 글씨를 보고 또 본다.
 
▲ 매화말발도리 매화꽃처럼 예쁘고, 꽃말은 애교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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