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1년, 남은 질문들①] 더 은밀하고 악랄해진 플랫폼 세상
지난해 불거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주요 가해자인 ‘박사’ 조주빈이 검거된 지 1년이다. 그가 검거된 2020년 3월 16일, 가해자들은 텔레그램을 대거 탈퇴했다. 수십 개에 달하던 성착취물 공유방은 대부분 사라지는 듯했다.
지난 1년간 법과 제도가 바뀌었다. 이로써 여성과 아동이 온라인에서 조금 더 평등하고 안전한 권리 확보의 기초를 닦을 수 있게 되었다. 경찰은 현재까지 3000명이 넘는 가해자를 검거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변화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일단락된 듯한 착시 효과를 일으켰다.
그러나 텔레그램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가해자들은 디스코드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플랫폼을 넘나들며 더욱 지독해진 수법으로 가해를 이어가고 있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지워지지 않는 성착취물은 여전히 피해생존자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있다.
2021년 3월, ‘n번방’ 대응 1년을 맞아 추적단 불꽃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피해생존자의 정의회복과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질문을 던진다. 지난 1년,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가?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나는 매개인 글로벌 플랫폼 및 기술 기업은 어떤 책임이 있는가?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결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나아가 온·오프라인이 하나 되는 시대, 온라인이 여성들에게도 안전한 공간이 되기 위해 시작되어야 할 담론은 무엇일까? 앞으로 총 4회에 걸쳐 게재될 콘텐츠의 첫번째 순서로 추적기는 ‘더욱 은밀하고 악랄하게, 활개 치는 가해자의 플랫폼 세상’을 보도한다.
1년 전 텔레그램 **방(불법촬영 및 유포물이 활발히 공유됐던 방, 1000명 이상 상주)에서 확인했던 피해자 K씨의 불법유포 영상을 올해 3월 12일, ‘디스코드’에서 발견하고 말았다. 1년 전, 유포 피해 발생 후 K씨에게 가해자 재판에 필요한 채증본을 제공한 적이 있었다. 당시 피해자의 영상을 유포한 가해자는 검거 후 현재 복역 중이다. 하지만 피해자 K씨의 피해는 현재 진행 중이다. 가해자가 사라졌어도 피해 영상물이 여러 플랫폼에 남아 익명의 가해자들에 의해 유포되고 있으니 말이다.
가해자들도, 성착취물도 여전히 플랫폼에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n번방’ 사건이 가장 큰 주목을 받던 지난해 3~4월에도 성착취물 판매자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영상이 무엇인지 호기심을 갖고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 검색해보는 이들이 늘자 공급하겠다는 이도 늘었다. 텔레그램뿐 아니라 트위터, 유튜브 그리고 디스코드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래가 오갔다.
조주빈이 잡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성착취물 판매 홍보글 하나가 트위터에 올라왔다. 이 계정은 해당 포스팅 이전에는 그 어떤 게시물도 올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오직 성착취물 판매를 목적으로 트위터에 가입한 것이다. 그를 팔로우하는 사람은 89명이었다.
비슷한 시기 성착취물을 교환하자는 유튜브 영상을 목격했다. 영상에서는 “로리(아동 성착취) 영상 교환할 사람은 댓글에 아이디를 적어”라는 자막이 5초간 재생됐다. ‘n번방’ 판매를 홍보하는 또 다른 영상에도 같은 아이디를 적은 유저를 발견했다. 해당 아이디로 연락해 대화를 시도했다. 그는 문화상품권 3만원에 ‘n번방’ 3번, 4번방 링크를 보내주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지난 2월 중순, 페이스북 불특정 게시물 댓글에 디스코드 대화방 링크가 지속해서 달리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디스코드에) 요 며칠 사이 갑자기 이런 방이 많아졌어요. 방 회원 수는 기본 3,000명, 많게는 8,000명도 있어요” 이날 제보받은 디스코드방 링크만 13개였다. 제보자는 가해자들이 상주하는 대화방에 “아동 청소년 성착취물은 범죄다”라며 채팅을 올렸지만, 회원들은 “네가 여가부(여성가족부)냐? 왜 성욕도 마음대로 못 갖게 하느냐”라고 반박했다. 수십 개의 디스코드방 운영자들은 피해 여성의 신상과 사진을 대화방 공지에 올려 홍보했고, 영상을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돈을 받고 팔아넘겼다.
지난해 4월 29일 ‘n번방 방지법’의 일환으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은 고무적이었다. 불법 성적 촬영물에 대한 반포·판매·임대·제공만 처벌 대상으로 삼던 기존법에서 나아가 소지와 시청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오늘, 텔레그램은 물론 더욱 대중적인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넘나들며 성착취물은 여전히 공유되고 있다. 2021년, 텔레그램은 성착취물 공유의 허브이며 다른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성착취물의 충실한 영업장이자 유통망 역할을 하고 있다.
텔레그램방 모니터링을 시작했던 2019년 7월, 당시 가해자들은 거침없는 언행으로 자신이 사는 지역이나 전과 기록을 채팅창에 흘렸다. 각종 정보를 모아보면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해당 정보를 경찰에 신고해 검거로 이어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마저도 요원하다. 가해자들은 가벼운 개인정보조차 공유하기를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의 경계심이 높아짐에 따라 거래는 더 은밀해졌다. 단체 대화방이 아닌 개인 대화방에서 성착취물 거래가 늘었다. 예전 같으면 방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구걸 몇 번으로 텔레그램 대화방 잠입 취재가 가능했지만 일 년 사이 분위기가 달라졌다. 금전 거래 대신, 서로가 보유한 성착취물을 교환하는 흐름이 두드러졌다. 성착취물끼리 맞바꾸면 적어도 금전거래로 인해 경찰에 추적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성착취물은 일종의 화폐이자 상위방으로 이동하는 입장권으로 기능하고 있다. (‘상위방’이란 성착취물 공유 등 별도의 인증 절차를 거친 소수의 멤버만이 들어갈 수 있는, 본격적으로 불법이 판치는 대화방이다.)
심지어 상위방에 입장하기 위해 교환해야 하는 영상에도 이전보다 까다로운 기준이 붙었다. ‘아무거나 보내면 안 된다’는 뜻이다. 피해자 얼굴이 꼭 나와야 한다던가, 얼굴이 나오더라도 ‘신작’이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신작’이란, 널리 알려진 ‘n번방’이나 ‘박사방’ 사건 피해 영상이 아닌, 그 이후에 만들어진 새로운 성착취물을 말한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성착취물 시청자가 제작자로 변해 권력을 키워가는 악순환을 야기했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착취물을 보려면 나부터 ‘레어 영상’을 소지해야 한다. ‘레어 영상’을 소유하기만 하면, 또 다른 성착취물과 교환을 활발하게 할 수 있고, 이를 미끼로 인기 있는 텔레그램 대화방을 만들 수도 있다. 직접 운영하는 방의 규모가 커지면, 돈을 받고 되팔 수도 있어 수익 창출도 가능하다. 이 흐름에서 기존에 공유 혹은 유포 범죄만 저지르던 가해자들은 새로운 피해자를 물색해 ‘레어’성착취물을 만드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은 국내 성착취 피해 영상을 찾기 어려워지자, 해외 성착취 피해 영상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모여있는 ‘해외방’ 수십 곳의 링크가 한국인들이 활동하는 ‘링크 모음’ 대화방에 수시로 올라왔다. 그중 가해자 대부분이 중국어를 사용하고, 올라온 성착취 영상은 중국인 피해자로 추정되는 일명 ‘중국방’이 가장 활발히 운영됐다. 3월 18일 낮 12시 기준, ‘중국방’에는 22만여 명이 참여하고 있었으며, 이 방에서 공유된 성착취물 개수는 2만 2,694개였다.
‘중국방’에 올라오는 영상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화장실 불법촬영물, 성관계 불법유포물, 딥페이크 등 디지털 성범죄에 해당하는 온갖 불법물을 망라한다. 전 세계 가해자들이 모여 있는 방인 만큼, 업로드되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아 시도 때도 없이 새로운 영상이 올라온다. 놀라운 것은 22만 명이 들어있는 이 방의 개설 시점이 2년 전이라는 것이다. 이 방은 2019년 3월 31일에 개설되어 현재까지 폭파되지 않고 운영되고 있다.
텔레그램 ‘중국방’은 지금도 계속해서 몸덩이가 불어나는 중이다. 3월 3일 참여자가 21만 7,000명이었는데 불과 2주 만에 7000명이 늘어나 총 22만 4,000명이 되었다. 이 방 외에도 6만 명, 4만 명 등 엄청난 수를 자랑하는 대화방들이 계속해서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이 방의 가해자들은 중국어와 태국어, 한국어를 사용한다. 단, 피해자는 아시아권에 국한되지 않았다. 아시아 말고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의 피해자가 등장하는 성착취물이 마구잡이로 업로드된다. 텔레그램성착취 사건을 더는 한국만의 문제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이는 이미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경 없는 인권 침해다.
“다음 주에 또 경찰서를 가야 해요. 또 유포돼서. 계속해서 유포되고 또 지우지 않는 사이트도 있으니까. 걔네(가해자들)가 계속해서 재유포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불법 유포 피해를 입은 피해자 A씨가 범죄 피해 사실을 알게 된 건, “미안한데 너 사진을 본 것 같다”며 지인들에게 연락이 오면서부터였다. 2019년 여름을 회고하던 A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사진은 다수의 불법 사이트에 유포 돼 있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광범위하게 유포된 건 아니었다. 최초 유포자가 또 다른 가해자들과 피해 사진을 교환하고, 판매하면서 유포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최초 유포 시점은 모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피해자가 계속해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3년째 유포 피해가 지속하는 것을 보아 A씨의 피해 사진을 소지한 가해자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짐작됐다.
A씨는 경찰에 신고해 가해자를 잡기 위해서는 어떤 사이트에, 무슨 내용으로 피해 사진이 유포됐는지 일시와 URL 주소를 함께 채증해둬야 한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요즘도 매일 밤 불법 사이트를 뒤져가며 본인의 사진을 찾는다. “불법 사이트 중에서도 돈을 내야 볼 수 있는 게시판을 운영하는 곳이 있어요. 그런 게시판을 모니터링하려고 쓴 사비만 20만원이 넘어요.”A씨는 본인이 피해자라는 걸 알게 된 이후에도 피해에 맞서 당당하게 살고자 노력했다. “고소와 모니터링을 계속하면서 학교도 다니고, 일도 하고,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 엄청 노력했어요. 사실 제정신은 아니었죠. 겉으로만 멀쩡했어요. 시간이 지나도 가해자들은 유포를 멈출 기미가 없고, 오히려 더 (유포 횟수가) 확대되는 것을 보고 모든 걸 버리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택했죠.” 그렇게 A씨는 성형수술을 했고, 이름을 바꾸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근래에는 A씨의 피해 사진뿐 아니라 신상을 유추하려는 댓글도 달린다고 한다. “처음엔 다 틀린 정보의 댓글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진짜 사실이 적혀 있는 거죠.” 그저 텍스트라고 생각했던 위협들이 자신의 실제 신상 정보인 것을 확인하자 A씨의 두려움이 배가됐다. 이른바 ‘신상털기’였다. A씨가 불법 유포와 별개로 맞닥뜨린 또 다른 명백한 디지털 성폭력이었다.
지난 1년간 정부와 국회, 법원, 그리고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와 일부 미디어 등 여러 주체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이야기했다. 정부는 수사 및 피해영상물 삭제 지원을 확대했고 국회는 처벌의 범주를 넓혔으며 법원은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약속했다. 여성단체는 이러한 약속이 실제로 이행되는지를 끊임없이 감시하며 누구보다 가까이서 피해생존자의 일상회복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우리의 추적이 확인한 피해자들의 1년 후는 여전히 암흑이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검색어’를 각종 사이트에 입력해보며 살아가고, 가해자들은 새로운 희생양을 찾아 온라인을 활보한다.
이것이 바로, 국제앰네스티와 추적단 불꽃이 올해, 가해자들이 사실상 무법지대 삼은 이 ‘온라인 공간’에 주목하려는 이유다. 피해생존자 정의회복의 기본 전제는 결국 어딘가에서 돌아다닐 성착취물의 온전한 삭제에 있다. 피해생존자가 원하는 지원이란 ‘불법 사이트 차단’과 ‘유포자 강력 처벌’뿐 아니라 무엇보다 피해 영상이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돌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가해를 영속화하는지, 제도의 변화에도 왜 피해생존자의 고통이 멈추지 않고 삭제된 영상은 왜 되살아나는지에 사회는 아직 뚜렷한 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질문한다. 이 모든 디지털 성범죄가 자행되는 실질적인 판으로 기능하는 온라인 공간에 대해 우리는 어떤 이해를 하고 있을까? 온라인 공간을 운영해 이윤을 취하는 기업들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응답을 하고 있을까? 사진과 동영상 등의 시각 콘텐츠로 광고 이익을 얻는 소셜 플랫폼 기업 또는 수십 테라바이트에 달하는 불법 성착취물을 압축한 대용량 파일 링크를 서비스하는 클라우드 기업은 어떤 책무를 절감하고 있을까?
이를 둘러싼 기존의 담론으로는 이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유엔 비즈니스와 인권 가이드라인 에 따르면, 모든 기업은 그들의 운영과 공급망 전체를 포함하여 그들이 운영하는 모든 곳에서 모든 인권을 존중할 책임이 있다. 기업은 자신의 활동이 인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기여하는 것을 방지해야 하며 그러한 영향이 발생할 때 이를 해결해야 한다. 또한 기업이 직접 영향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기업의 영업 활동이나 제품 혹은 서비스 등과 연결된 관계에서 인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 이를 방지하고 완화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한 2017년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일반 권고 35호에 따라 각국의 기업과 초국가적 기업 등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없애고 이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르면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는 성 고정관념 근절에 초점을 맞춘 메커니즘을 만들거나 강화해야 하고, 그들의 플랫폼에서 저질러지는 모든 성차별에 의한 폭력이 근절되도록 적극 장려해야 한다.
이를 둘러싼 플랫폼 기업 그리고 새로운 기술의 책무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시급하다. 이달 말 게재되는 2번째 콘텐츠에서 우리는 그 책임의 주체를 따라 가본 추적기를 이어간다. 피해생존자들의 정의를 가로막고 있는 눈앞의 방해물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파헤쳐 본다.
추적단불꽃 X국제앰네스티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죽을 뻔 했다”던 서예지의 ‘연탄설’도 거짓이었다?
- 7년의 봄, 세상은 더 가혹해졌다… 97년생 ‘세월호 세대’ 이야기
- 10대 집단 성폭행범 셋, 감형해준 이유 “반성하니까”
- “‘당근’에 장사꾼이?” 의심될 땐 구매 말고 신고를!
- “수면내시경 후 운전했다가”…가드레일 박고 차량 전복[영상]
- 김부선 “강용석 선임한 이유? 불륜 경험 많아 보여서”
- “아들을 찾습니다” 前 남편이 데려간 뒤 행적 묘연
- “오늘 사과 하나 줌” 정인이 양부가 받은 양모 카톡들
- “마스크 잘쓰고 얘기하세요” 말에…초등생 때려 뇌진탕
- “제가 맞을짓 한건가요” 20개월 엄마 운전자의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