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여성 끔찍한 날들 시작될 것"

전수진 2021. 4. 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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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9월 미군 철수' 발표에 불안
"탈레반 또 득세 땐 여성탄압 걱정"
"학교 졸업 못하나" 젊은층 공포 커
"20년 전과 달라, 독립할 때" 자성도
지난 12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에서 국방부가 온몸을 손발만 빼고 가리는 부르카를 입은 전사자 부인들에게 식량을 배급하고 있다. 아프간 여성들은 9월 11일 미군 철수 이후 여성 인권을 탄압하는 이슬람 무장세력인 탈레반의 귀환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우리는 어쩌라고요.(What about Us)”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목소리를 전한 기사에 이런 제목을 달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미국이 치른 전쟁 중 가장 길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이젠 끝내야 하고 미군이 집으로 돌아와야 할 때”라며 철군 시점을 올해 9월 11일로 못 박았다. 2001년 9·11테러로 촉발된 전쟁의 마침표를 20년 되는 날 찍겠다는 발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역시 철군을 공식화했다.

철군 자체는 예상된 수순이지만 아프간 현지엔 긴장감이 맴돈다. 특히 미국의 개입으로 아프간에서 설 자리를 잃었던 이슬람 무장단체인 탈레반의 귀환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

탈레반은 여성의 인권을 혹독하게 탄압했다. 여성이 학교에 다니는 것은 물론 자유로운 외출도 허용하지 않았다. NYT는 “미군 철수와 함께 탈레반이 다시 득세해 2001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여성들의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영국 가디언 역시 이날 “끔찍한 날들이 다시 시작된다”는 제목으로 아프간 수도 카불 등 현지 여성의 목소리를 전했다.

불안감은 특히 젊은 층에 퍼져있다. 탈레반의 폭정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부모로부터 끔찍했던 시절에 대해 듣고 자란 이들이다. 카불의 파르디스 고등학교에 다니는 와히다 사데키(17)는 NYT에 “안개 속인 내 미래가 너무 걱정된다”며 “만약 탈레반이 돌아온다면 나는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릴 것 같다”고 말했다.

아프간 서북부 헤라트 대학교에 다니는 20대 바시레 헤이다리는 가디언에 “탈레반이 돌아올 것이고, 끔찍한 나날들이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내가 치는 마지막 시험이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졸업장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가디언은 “(탈레반 집권 당시였던) 바시레의 어머니 세대는 이 캠퍼스에 접근할 수도 없었다”고 전했다. 이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살마 에흐라리는 가디언에 “탈레반이 다시 득세한다면 그건 탈레반 탓이 아니라 미국 탓”이라며 “탈레반의 캐릭터를 알고도 철군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반면 희망 섞인 목소리도 있다. 미군 철수가 탈레반의 득세로 자동적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현재 아프간엔 정부가 존재하고, 탈레반도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탈레반 측은 여성 교육을 허가하겠다고 밝히는 등 과거보다는 전향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탈레반에 희망을 거는 이들은 소수다. 여기에 벌써 “정부군과 탈레반과의 내전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다고 NYT는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믿을 건 자기 자신뿐이라는 의식도 아프간 여성 사이에서 확산 중이다. 아프간 정부에서 탈레반과의 협상도 담당했던 파티마 가일라니는 NYT에 “이젠 우리가 (미국에서) 독립할 때가 됐다”며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닥칠지 말하긴 어렵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미래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일라니는 “지난 20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며 “교육 덕에 아프간 여성은 20년 전과는 달라졌고,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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