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쩌라고요" 美철군에 아프간 여성들, 공포에 떤다
“우리는 어쩌라고요.”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목소리를 전한 기사에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미국이 치른 전쟁 중 가장 길었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을 이젠 끝내야고 미군이 집으로 돌아와야 할 때”라며 철군 시점을 올해 9월11일로못박았다. 2001년 9ㆍ11 테러로 촉발된 전쟁의 마침표를 20년 되는 날 찍겠다는 발표다. 바이든 대통령에 이어 나토, 즉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역시 철군을 공식화했다.
철군 자체는 예상됐던 수순이지만 아프간 현지엔 긴장감이 맴돈다. 특히 미국의 개입으로 아프간에서 설 자리를 잃었던 이슬람 무장단체인 탈레반의 귀환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 탈레반은 원리주의 이슬람 원칙을 내세우며 여성의 인권을 탄압했다. 여성이 학교에 다니는 것은 물론, 자유로운 외출도 허용되지 않았다. NYT는 “미군 철수와 함께 탈레반이 다시 득세해 2001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여성들의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영구 가디언 역시 이날 “끔찍한 날들이 다시 시작된다”는 제목으로 아프간 수도 카불 등 현지 여성의 목소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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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졸업장을 받을 순 있을까”
불안감은 특히 젊은 층에 퍼져있다. 탈레반의 폭정을 직접 경험하진 않았지만, 부모 세대에게 끔찍했던 시절에 대해 듣고 자란 이들이다. 2004년생으로 현재 카불의 파르디스 고등학교에 다니는 와히다사데키(17) 양이 대표적이다. 와히다 양은 NYT에 “안개 속인 내 미래가 너무나 걱정이 된다”며 “만약 탈레반이 돌아온다면 나는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릴 것 같다”고 말했다. 와히다 양은 이어 “탈레반은 여성에게 금지했던 그 모든 조치가 되살아날까 두렵다”고 덧붙였다.
10대뿐 아니라 20대도 마찬가지다. 아프간 서북부 헤라트 지역을 대표하는 헤라트 대학교에 다니는 바시레 헤이다리 학생은 가디언에 “미군이 철수하면 탈레반이 돌아올 것이고, 끔찍한 나날들이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내가 치는 마지막 시험이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졸업장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며 “탈레반이 다시 득세하면 나는 학업도 멈춰야 할 것이고 집 밖으로 자유롭게 나가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탈레반 집권 당시였던) 바시레 학생의 어머니 세대는 젊은 시절 이 캠퍼스에 접근할 수도 없었다”며 “미군 철수와 함께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이 대학 캠퍼스 곳곳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철군 발표 관련 뉴스를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심각하게 읽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살마 에흐라리는 가디언에 “탈레반이 다시 득세한다면 그건 탈레반 탓이 아니라 미국 탓”이라며 “탈레반의 캐릭터를 알고도 철군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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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이젠 우리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할때”
반면 희망 섞인 목소리도 있다. 우선, 미군 철수가 탈레반의 득세로 자동적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현재 아프간엔 부정부패 등 내부 문제가 산적한 정부가 존재하고, 탈레반 역시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탈레반 측 역시 여성 교육을 허가하겠다고 밝히는 등, 과거보다는 전향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탈레반의 개과천선에 희망을 거는 이들은 소수다. 여기에 벌써부터 “정부군과 탈레반과의 내전이 (미국과 나토의 철군 이후) 현실화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아프간인들 사이에선 파다하다고 NYT는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믿을 건 자기 자신뿐이라는 의식도 아프간 여성 사이에선 확산하는 중이다. 아프간 정부에서 탈레반과의 협상도 담당했던 파티마 가일라니는 NYT에 “이젠 우리가 (미국에서) 독립할 때가 됐다”며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닥칠지, 현재로써 말하긴 어렵지만 분명한 건 한 가지, 우리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미래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일라니는 이어 “미군이 아프간에 주둔한 20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며 “교육 덕에 아프간 여성은 20년 전과는 달라졌고,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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