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 택배갈등에도..기사들이 저상차량 안 쓰는 이유는

최민우 2021. 4. 1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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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서울 강동구 A아파트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관계자, 롯데택배ㆍ우체국택배 택배기사들이 택배 물품을 단지 앞에 내려놓고 있다. 택배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오늘부터 물품을 아파트 단지 앞까지만 배송하고 찾아오시는 입주민 고객께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A아파트는 이달 1일부터 택배차량의 단지 내 지상도로 이용을 막고 손수레로 각 세대까지 배송하거나 제한 높이 2.3m인 지하주차장에 출입할 수 있는 저상차량을 이용하도록 했다. 연합뉴스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택배 갈등’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파트 단지 입주민들은 단지 내 차량 운행이 안정성을 해친다며 ‘저상차량’을 통한 지하주차장 출입을 통한 배송이나 아파트 입구에서 손수레를 활용해 물품을 운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는 택배기사의 건강 문제, 비용 등의 문제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전직 택배기사라고 밝힌 한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택배 기사들이 저상차량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를 조목조목 밝혀 눈길을 끈다. 이 글은 3년 전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에서 ‘택배 갈등’이 불거진 당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저상차, 극심한 신체적 고통과 스트레스

글쓴이에 따르면 지하 주차장 진입이 가능한 저상차량의 경우 택배기사가 허리를 숙이고 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체력 소모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글쓴이는 “수시로 탑 안으로 들락날락하며 물건을 챙기고 정리도 해야 하는데 허리가 아프다”고 썼다.

일반적으로 택배차량에 이용되는 ‘탑차’는 1.5t이하 트럭에 2.5~3m 높이의 짐칸이 결합된 형태다. 3m 높이 짐칸을 ‘하이탑’이라 부른다. 하지만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층 높이는 대부분 2.3m로 규정돼 있어 택배 차량 진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고덕동 A아파트의 지하주차장 높이도 2.3m로 일반 택배 차량 진입이 불가능하다. 이에 지하 주차장을 통해 택배를 배송하려면 저상차량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에 택배노조 측은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저상차량은 허리를 굽힌 채 작업해야 해 노동 강도가 극심해지고 몸이 망가진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서울 강동구 A아파트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세대별 배송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택배노조는 기자회견에서 "택배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오늘부터 물품을 아파트 단지 앞까지만 배송하고 찾아오시는 입주민 고객께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A아파트는 이달 1일부터 택배차량의 단지 내 지상도로 이용을 막고 손수레로 각 세대까지 배송하거나 제한 높이 2.3m인 지하주차장에 출입할 수 있는 저상차량을 이용하도록 했다. 연합뉴스

부족한 적재공간, 아파트 택배에 부적합

글쓴이는 또 아파트 택배의 특성을 열거하며 저상차량은 물건 적대 공간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파트 택배는 2ℓ 생수 묶음이나 계절 과일, 절임배추 등 대량의 배달물품이 많다”며 “이걸 다 싣고 출발하려면 하이탑이 훨씬 유리하다”고 적었다.

또 “택배 특성상 시간이 늘 부족하기 때문에 영업소에서 물건을 싣고 가야하는데 두번 왔다갔다 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했다.

통상 택배기사들은 하루에 120개 안팎, 명절 때는 250개 가량의 짐을 배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물건을 모두 배달하기 위해서는 시간 절약이 필수다. 일반 택배 차량을 저상차량으로 바꿀 경우 배송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진일 택배노조 정책국장은 과거 라디오에 출연해 “아파트 입구에서 차를 세우고 카트를 이용해 배달할 경우 30분 정도 걸릴 배송이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걸려 다른 배송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택배기사 대부분 '차량 비용' 부담해야

또 택배기사들이 저상차량 전환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문제도 있다. 글쓴이에 따르면 택배기사 대부분이 개인사업자로 현재 운행하는 차량을 저상차량으로 개조하는데 드는 비용을 직접 부담해야 한다. 배달 건수당 700~800원 가량의 수수료를 받는 택배기사들이 이 비용을 부담하긴 어렵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글쓴이는 “택배기사들은 차량도 본인 구매고 유류비나 통신비도 다 본인 부담인데 하나의 아파트 단지를 위해 저상탑차를 구매하는 건 말도 안된다”며 “저상탑차로 들어오라는 것은 우리 아파트 들어오지 말란 얘기”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택배노조는 “택배사와 기사들의 관계는 전형적인 ‘갑을관계’로 택배사가 저상차량으로 교체를 요구하면 기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저상차량 도입은 택배기사들의 고통을 유발하는 배송방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고덕동 A아파트 입주민들은 지난 1일부터 단지 내 지상도로로 차량이 다니지 못하도록 전면 통제했다. 공원형 아파트로 설계돼 택배차량이 지상으로 다니면 단지 내에서 안전사고의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택배노조는 이같은 통보를 ‘갑질’로 규정하며 가구별 배송을 중단하는 강수를 뒀다. 택배 물품을 아파트 입구까지만 운반하겠다는 것이다.

진경호 택배노조위원장은 “사태 해결 때까지 계속 아파트 입구에서 물품을 분류하고 입주민들에게 직접 전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매일 오후 10시까지 물품을 전하고 남은 건 차량에 실었다가 이튿날 아침 입주민들에게 전달할 방침이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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