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관리하던 큐레이션, 일상 넘어 경험과 취향을 조율하다
객관화된 정보부터 경험·생각 곁들인 관점 제안까지
넓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관객들을 상대로 작품이나 유물에 대해 유창하게 설명한다. 미디어를 통해 인식된 큐레이터(curator)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은 포괄적이다. 작품 수집과 보존, 분석 교육, 그리고 전시를 총괄적으로 담당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콘텐츠를 목적과 가치에 따라 구성하거나 배포 혹은 추천하는 큐레이션(curation)은 작품들을 분석하고 담고 있는 의미와 객관적인 정보, 또 현재와 연결되는 지점들을 찾아내 전달하는 큐레이터의 역할에서 파생됐다. 그리고 이 큐레이션은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콘텐츠가 쏟아지는 곳은 단연 온라인이다. 텍스트, 영상, 사진, 음악이 넘쳐난다. ‘새로운 콘텐츠’를 어디서 어떻게 접해야 하는지조차 길을 잃기 쉽다. 글로벌 회사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 취향 데이터로 취향 등을 구분해 ‘큐레이션’에 나선다.
2억명의 유료 가입자를 보유한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는 고객의 시청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큐레이션이 전세계적으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유튜브도 큐레이션 서비스 공을 들이고 있다. 2015년 AI를 도입해 시청 영상, 시간, 댓글 등을 통해 개인별 추천 시스템을 강화했다. 최근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개그맨 최준, 2PM의 '우리집'의 역주행이 유튜브의 추천 시스템에 의해 발굴된 재평가된 콘텐츠다.
지난 2월 국내에 진출한 스포티파이는 전체 6000만 개 이상의 음원과 40억 개 이상의 플레이리스트를 바탕으로 상황이나 기분에 맞는 큐레이션 기능으로 ‘음원계 넷플릭스’라고 불린다. 스포티파이는 우리나라 음원사이트와 달리 최신곡, 차트 카테고리가 없다. 오로지 검색과 추천을 기반으로 한다. 사용자가 들었던 음악을 중심으로 매일 데일리 믹스, 월요일 마다 디스커버 위클리 플레이리스트가 제공된다.
10만 권의 도서 콘텐츠를 보유한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는 오늘의 책, 한 달 이내에 출간된 책, 밀리봐봐와 100인의 인생책, 이번주 취향별 추천 책이란 주제로 도서를 추천하고 있다. 회원들의 참여를 유도해 정보를 공유하는 이럴 땐 이럴 책도 운용 중이다.
그러다보니 음악, 영상, 책 등과 관련된 몇몇 어플을 활용하다보면, 자신이 일정하게 찾아보는 패턴에 따른 취향을 알게 된다. 이 시점에서 큐레이션은 ‘개인화된 콘텐츠’를 구성하게 한 셈이다.
물론 온라인에서만 큐레이션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경험이나 취향, 습득한 정보를 통해 인간이 전달하는 큐레이션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이들은 질 좋은 콘텐츠를 수집, 공유하며 기존의 콘텐츠에 새로운 가치를 덧붙여 사용자에게 전달한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라시트포(LACITPO)는 안경과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취향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편집숍이다. 편집숍의 가장 큰 장점은 제품을 원하는 대로 선보이고, 생각을 가감 없이 재해석할 수 있다는데 있다. 홍의완 대표는 “카테고리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나눠 우리가 원하는 섹터에 모아놓는다. 브랜드별 디스플레이는 물론, 스타일별 섹터를 나눠 그에 해당하는 제품들을 추천하는데, 이는 제품의 직접 비교가 가능하고, 서로의 시너지를 내기도 하면서, 해당 카테고리에 취향이 있는 고객에게 편의성을 강조한 디스플레이다”라고 라시포트의 차별점을 설명했다
홍대표는 안경 큐레이션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에 두고 있는 점은 ‘각자의 색깔’이라고 강조했다. 기본적인 콘셉트는 뚜렷하되, 틀에 갇히진 않아야 한다는 신념이다. 다만 디렉터와 소비자는 언제든 생각이 바뀌고, 취향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며 라시포트를 운영하고 있다.
아크앤북은 대형서점과 독립서점의 편리성을 결합시킨 라이프 스타일을 큐레이션한다. 아크앤북은 여행, 스타일, 일상 등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책을 추천하고 진열한다. 이외에도 책 큐레이터로 유튜버 공백, 김윤아 작가, 아트 디렉터 정소희, 팟캐스트 ‘시시콜콜 시시알콜’ MC를 내세워 모임을 추진하고 미술 전시 컬래버레이션, 작가와의 만남, 원데이 클래스 등을 진행하며 책을 매개로 라이프스타일의 가치를 높이는데 주력한다.
대형 서점이 사용자의 수치를 바탕으로 베스트셀러를 추천한다면 독립서점은 목적과 개인의 취향을 조준한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가 운영하고 있는 니은서점은 베스트셀러를 팔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주로 노명우 교수가 전공을 살린 인문사회도서를 큐레이션하고 자신이 읽은 책에 밑줄을 긋고 생각을 적어놓은 공유서재를 활용해 큐레이션 속 또 하나의 큐레이션으로 사용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큐레이션의 영역이 확대되며 이색적인 큐레이션도 생겨났다. 키나 플라워는 지난 1월부터 꽃말에 이야기를 엮어 배송해주는 플라워 큐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꽃집에서 흔하게 팔지 않는 꽃을 선별해 꽃의 성향과 정보까지 함께 전달하고 있다.
연인과의 관계를 큐레이션 해주는 유튜버도 있다. 유튜버 김유신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어왔던 관계들 속에서 얻어낸 노하우를 바탕으로 연인 문제로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관계를 큐레이션 한다.
그는 주로 연인 관계에서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에 관한 관계를 살핀다. 김유신은 “서로는 타인이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어떻게 하면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다져나갈 수 있을까. 서로가 윈윈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다”며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건 이해다.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고 우선시로 두는 부분을 밝혔다. 김유신은 제공 받은 정보와 자신이 파악한 취향과 성향을 토대로 문서를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김유신은 관계 큐레이션형 E-book 5종 '이모션', '붉은실', '컨택트', '위즈덤', '센슈얼'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주식, 취미, 향수, 맥주 등의 일상에 밀접한 큐레이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 남들과 똑같은 것을 거부하고 물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사람들과 새로운 관점 제안의 매력으로 큐레이션의 영역은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데일리안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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