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오염수' 국제재판 어떻게..7년 전 외교부가 '픽'한 논리는

김정연 2021. 4. 1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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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현 원자력 발전소의 모습. AP뉴스

2011년 3월 9일 리플루냐국 서부 해안을 휩쓴 진도 9.0의 대지진과 해일로 이 지역 해안에 위치한 원자력 발전소에 대규모 사고가 발생하였다.… 2013년 8월 17일 리플루냐국 당국은 사고가 발생했던 원전의 냉각수 탱크에서 300㎥의 오염수가 바다로 배출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10월 8일 담수처리시스템에서도 오염수가 누출되었다는 사실도 보고하였다. 다만 국제원자력기구 외에는 리플루냐국이 이와 같은 사실을 별도로 통보한 바는 없다… 알리움국 측 수석대표는 양국 사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유엔 해양법협약의 관계 규정에 따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리플루냐국 측 수석대표는 알리움국이 ICJ에 제소한다면 자국은 관련 규정에 따라 응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014년 12월 열린 제6회 국제법모의재판경연대회 시상식에 참석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수상자들. 뉴스1


지난 2014년 외교부 주최로 열린 ‘제 6회 국제법 모의재판 경연대회’에선 이와 같은 상황이 제시됐다. 대회에 참가한 법학 전공자, 로스쿨 학생들은 리플루냐국과 알리움국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써낼 변론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가상국가로 설정했지만, 리플루냐국은 일본, 알리움국은 한국의 상황과 유사하다.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에 유출된 상황에서 한국이 국제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치를 놓고 7년 전부터 외교부가 고민을 했음을 보여준다. 14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잠정 조치와 함께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라는 지시에 따라 외교부는 방사능 오염수 문제에 대한 국제 사법 절차를 검토 중이다.


변론서, '의무' '투기' '피해' 등 단어 해석 놓고 팽팽

2014 국제법모의재판대회 최우수변론팀의 제소변론요약 일부. 참가학생들은 UN 해양법협약에 명시된 용어에 대해 리플루냐국과 알리움국 양측에서 제시할 수 있는 해석을 제소변론서와 피소변론서를 통해 각각 제시했다. 자료 외교부


외교부 주최 모의재판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은 연세대학교 팀(강빛샘, 김지은, 김혜인, 김승준), 우수상은 경희대학교‧서울대학교 팀(손영현, 고재현, 서정현, 심창현)에게 돌아갔다.

두 팀 모두 유엔 해양법협약(UNCLOS)을 기반으로 리플루냐국의 의무 위반을 지적했다. 연세대 팀은 리플루냐국이 UNCLOS에 따라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배출을 막기 위한 조치를 즉시 취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방사능 오염수 배출은 해양 투기 행위로 UNCLOS 및 런던의정서 위반사항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 53개국이 비준한 런던협약·의정서는 해상 소각, 폐기물 및 기타 물질의 해양투기 및 수출을 금지한다. 또한 UNCLOS에 규정된 해양오염 방지‧경감‧통제 의무도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리플루냐국 측 피소변론서에서는 향후 국제 재판에서 일본 정부가 제시할법한 '의무'의 정의, 국제법 적용 여부, 피해 입증 등 반론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제시했다. 피소변론서는 '주의의무', '투기', '신속한 통고', '피해' 규정 등을 좁게 해석해 "리플루냐국은 방사능 오염수의 배출을 즉시 막아야 할 의무를 지지 않으며, 투기 등 UNCLOS나 런던협약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방사능 오염수가 자연재해로 인해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했고, 주변국에 끼치는 피해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강조해 손해배상의 의무가 없다고 반박했다.


"'미래 환경 보호 조치'하는 게 최신 환경법 원칙"

13일 일본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 발표에 가장 먼저, 직접적 영향을 받는 어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14일 오후 수협중앙회 관계자들은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1

국제법 전문가들과 당시 대회 참가자들은 2014년에 작성된 이 두 변론서의 논리는 지금도 큰 틀에서 유효하다고 말했다. 또한 향후 국제 사법 절차에서 최근의 국제법적 환경 인식을 반영하는 논리를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 대회에서 수상팀들의 변론서는 UNCLOS에 명시된 각 단어와 문구의 정의, 해석의 폭 등을 규명하는데 집중했다. 국제법의 특성상 일반적 용어로 규정된 문구를 개별 상황에서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해석의 폭이 달라질 수 있다. 당시 우수팀 소속이었던 손영현 변호사(법무법인 태신)는 "국제법에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보충적 해석'을 양국에서 각자 주장하게 되는데, 사전주의의무 등 최근의 국제 환경법을 반영해 일본이 좀 더 강한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양법협약에 쓰인 용어를 최신의 환경법 트렌드를 반영해 설득력 있게 해석하고 제시하는 게 관건이 될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김현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법 해석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며 "최근 환경법에선 심각한 환경 피해 우려가 있다면 충분한 과학적 확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지체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전주의 원칙'이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1982년에 제정된 UNCLOS에 보다 강화된 최근의 환경보호 원칙과 기준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는 거다.

김 교수는 “최근의 환경 조약들도 사전주의 원칙을 많이 반영하고 있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응하는 전략도 이 부분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이런 전략이 성과를 거둘 것으로 속단하긴 어렵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국제법 전문가는 "UNCLOS가 만들어졌을 때에 비해 환경 인식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그게 국제법 재판에도 적용될거라고 보기엔 조심스럽다. 재판부가 아직은 보수적일 가능성도 있다"고 걱정했다.


"'올림픽 앞둔 나라인데'…외교, 여론 압박도 중요"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주한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기념촬영 후 이동하는 아이보시 고이치 일본대사를 바라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제정식 후 환담에서 “일본의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대해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바다를 공유한 한국의 우려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법적 논리 외에 외교전·여론전을 통한 국제적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다. 익명을 요청한 국제법 전공 교수는 “국제법의 불명확한 문구에 대한 해석에서 나라간 다툼이 크게 벌어질 수 있다”며 “재판 과정에서 양국이 IAEA 등 국제적 기관의 판단, 국제적 여론을 얻어내는 게 각국의 법령 해석에 대한 재판부의 공감 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손영현 변호사도 "앞서 2019년 WTO가 내린 '한국의 후쿠시마산 수입규제 조치 유지가 타당하다'는 판결은 국제사회에서 방사능 오염수 피해를 직접적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일부 이해할 수 있어서, 그 부분을 강조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여기에 더해 국제적 행사인 올림픽을 앞둔 일본 정부가 국제적 환경원칙도 잘 지키지 않는 국가라는 인식이나 비판여론이 형성되면, 일본 정부가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거란 기대도 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생기후행동 회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건물 앞에서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 방출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기자회견을 마친 회원들이 대사관 앞 경찰 펜스에 핵 폐기물 반대 팻말을 부착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재판 능사 아냐, 국가간 분쟁 부담될수도"
다만 국제 재판의 승패에 매달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 교수는 "한국 정부는 WTO 말고는 국가간 국제 소송을 해본 적이 없고, 재판을 하더라도 국가간 앙금이 남을 수 있다"며 "국제사회 여론이 받쳐준다면, 재판이라는 수단 자체가 일본에 대한 압력 행사가 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국내 재판과 달리 국제법 재판은 한 번 판결이 내려지면 2심, 3심이 없기 때문에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한 국제법 전문가는 "재판에 들어갔다가 승소하지 못할 경우도 부담이고, 국가간 관계에서도 고려해야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이 독도 문제를 국제 재판으로 가져가자는 걸 우리나라는 반대해왔는데, 원전 오염수를 재판으로 가져가면 앞으로 다른 분쟁도 사법적 절차로 가야하는 압박이 생길 수 있다"며 "다른 이슈에도 사법적 대응을 할 준비가 돼 있는지를 생각하면 정부 입장에선 부담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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