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FC서울, 박진섭호에게 일찍 찾아온 위기
[이준목 기자]
2021시즌 명예회복을 노렸던 FC서울 박진섭호에게 예상보다 위기가 일찍 찾아왔다. 서울은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1 하나은행 FA컵 3라운드 서울 이랜드와 홈경기서 0-1로 패했다. 현재 K리그1서 3연패 중이던 서울은 FA컵마저 조기탈락하며 공식전 4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이날 경기는 무려 26년(9304일)만에 수도 서울을 연고로 하는 두 프로축구팀이 만난 '서울 더비'였다. FC서울의 전신 LG치타스는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유공 코끼리(현 제주 유나이티드), 일화 천마(현 성남FC)와 함께 공동으로 서울을 연고로 삼았지만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1996년 안양으로 연고지를 잠시 이전했다가 2004년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2014년 창단한 이랜드는 7년만에 치르는 첫 서울 더비였다.
FC서울은 1부리그, 이랜드는 줄곧 2부에 머무른 탓에 리그에서 만날 기회가 없었던 두 팀은 FA컵을 통하여 역사적인 첫 맞대결을 펼쳤다. 객관적 전력과 이름값에서 앞선 FC서울의 우위가 예상되었으나 이랜드는 탄탄한 전력을 과시하며 후반 40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이랜드 레안드로의 헤딩 결승골에 힘입어 대어를 잡는 데 성공했다.
▲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릴 하나원큐 K리그1 2021 FC서울과 광주FC의 경기에서 FC서울의 박진섭 감독이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 연합뉴스 |
서울로서는 충격이 큰 패배였다. 가뜩이나 리그에서 부진에 빠진 서울은 FA컵에서 반등을 노렸지만 K리그 2부팀에 이변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며 올시즌 우승 트로피 하나를 일찌감치 날렸다. 전반 이른 시간에 조영욱이 부상으로 실려나가는 변수까지 맞이하면서 악재가 겹쳤다.
서울은 지난 몇 년간 롤러코스터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8시즌에는 11위로 강등권까지 떨어졌다가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간신히 기사회생했고, 2019시즌에는 3위로 반등했으나 2020시즌에는 다시 9위에 그치며 하위스플릿으로 추락했다. 특히 지난 시즌에는 성적부진과 맞물려 연이은 감독 교체와 이적 논란 등 사건사고, 구단 운영의 난맥상까지 더해지며 구단 역사상 최악의 시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은 지난해 12월 박진섭 감독을 구단의 제 13대 사령탑으로 선임하며 새 출발을 선언했다. K리그에 유행하고 있는 '스타플레이어 출신 40대 젊은 감독'의 선두주자였던 박 감독은 현역 시절 리그 정상급 측면수비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도자로서도 광주FC의 K리그2 우승과 1부승격, K리그1 파이널A 진출 등의 성과를 올리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FC서울에서 흔들리는 구단의 암흑기를 청산할 구원자로 기대를 모았다.
시즌 개막을 준비할 때만 해도 서울의 분위기는 좋았다. 지난 시즌 성남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국가대표 나상호와 포항에서 검증된 외국인 선수 팔로세비치를 데려오며 공격진을 보강했다. 지난 시즌 후반기에 복귀한 기성용은 새로운 주장으로 선임됐다.
하지만 여전히 스쿼드가 얇고 내구성이 취약한 베테랑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불안요소도 뚜렷했다. 우려는 예상보다 일찍 현실이 됐다. 서울은 시즌 초반 순항하는 듯 했지만 4월 들어 갑작스러운 연패의 늪에 빠지며 위기에 직면했다. 만성적인 부상을 안고 있는 박주영은 올시즌도 경기에 꾸준히 나서지 못하고 있다. 울산 원정에선 모처럼 부상을 털고 돌아온 고요한이 복귀하자마자 울산 김태환의 거친 플레이에 무릎 인대가 손상되며 전치 4개월 진단을 받는 악재가 터졌다.
주장인 기성용은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학폭 루머라는 대형 사건에 휘말리며 곤욕을 치렀다. 이 사건은 현재 법적 공방으로 시비를 가리게 된 상황이다. 물론 기성용은 경기장 안에서는 프로답게 흔들림 없는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주장이자 에이스로 팀을 이끌어야 하는 선수가 불미스러운 논란에 휘말리고 있는 것은 장기적으로 선수나 구단 모두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기성용도 내구성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선수다. K리그에서 복귀했던 지난 시즌 후반기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던 기성용은, 올 시즌도 전북과의 개막전에서 전반만에 교체되는가 하면 지난 포항전과 이랜드전에 근육 부상이 재발하여 잇달아 결장하며 몸상태에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기성용의 정확한 복귀 시점은 미지수다. 올 시즌 서울이 기성용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경기에 꾸준히 출장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박진섭 감독 역시 서울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중이다. 박 감독이 이끌었던 광주와 현재의 서울은, 리그내 위상이나 성적에 대한 눈높이 자체가 다른 팀이다. 서울은 K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출신 감독이었던 황선홍이나 최용수 같은 전임자들조차 팀을 장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구단이다.
박 감독은 광주에서도 고정된 패턴에 의존하지 않고 과감한 전술 변화가 많은 감독이었는데, 박감독이 원하는 풍부한 활동량과 기동력을 지닌 젊은 선수들을 적극 활용했기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반면 서울은 기성용이나 박주영, 오스마르같이 개인능력은 좋지만 박 감독의 추구하는 전술과는 다소 맞지 않는 선수구성에 가깝다. 시즌 초반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박진섭 축구의 색깔이 드러났다기보다는 기성용의 '하드캐리'에 의존한 모양새가 더 컸다.
반면 이랜드전에서 이전에 거의 사용하지 않은 변칙 스리백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오히려 상대의 강력한 압박과 중원싸움에서 압도를 당하는 빌미가 되어버린 것은 박 감독에게도 많은 교훈을 남긴 장면이었다. 성적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스타급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는 빅클럽의 감독으로서 박진섭 감독 역시 자신의 축구철학과 서울의 선수구성에 어울리는 축구 사이에서 적응 기간을 거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은 우승트로피에 대한 기대치는 물론 라이벌전만 해도 서울 더비 외에도 슈퍼매치, 경인더비, 전설더비 등 다양한 이슈의 중심에 있다. 이는 감독에게는 늘 당장의 성과에 대한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몇 년째 지체되고 있는 팀의 세대교체와 리빌딩이라는 과제도 이루어내야 한다. 압박감과 긴장감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지도자로서 서울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 박진섭 감독은 FC서울 사령탑으로서 맞이한 첫 번째 위기를 과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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