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교문 바깥에서 났나요, 안에서 났나요?'
[정치하는엄마들]
▲ 교내에서 발생한 사고의 책임을 기피하고, 사고 발생시 책임소지를 어떻게 해서든 학교 밖으로 내보내려 하는 무사안일주의가 팽배한 학교의 모습을 풍자한 강미정활동가의 그림 |
ⓒ 정치하는엄마들 강미정활동가 |
'사고가 교문 바깥에서 났나요, 안에서 났나요?'
학교 앞에서 가벼운 교통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교장, 교감 선생님이 가장 먼저 한 질문입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어떻게 사고하는지, 이 문장 안에 다 담겨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의 이치를 배우는 곳, 그래서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사람들이 가득한 곳. 10년차 학교도서관 사서인 제가 처음 학교도서관에서 근무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학교는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째서 그렇게까지 허황된 생각을 가질 수 있었는지 의아한 일이지만요.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던 어느 추운 날, 화장실을 가려고 도서관을 나섰다가 복도 한 켠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 2학년 학생을 만났습니다. 너무 깜짝 놀라, 왜 여기서 밥을 먹고 있냐고 묻고는 도서관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방학식이 있던 날이라 급식은 없고, 부모님은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올 수 없으니 도시락을 싸서 보냈는데 교실은 이미 반 친구들 모두 하교했고 돌봄교실은 아직 열지 않았고, 도서관은 원칙적으로 음식물 섭취가 금지된 곳이니 먹을 곳이 없었던 것이죠. 원래도 빈 시간에는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던 학생이어서 얼른 밥을 먹고 도서관에 들어올 요량이었던 겁니다. 학생에게는 오늘은 도서관 안에서 먹어도 된다고 안심을 시키고 따뜻한 물을 한 잔 내주었습니다.
1형 당뇨가 발병한 학생의 어머님이 도서관에서 주사를 맞아도 되겠냐고 물어왔을 때도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가 1형 당뇨 진단을 받은 후 온 가족이 황망하던 중, 식후 꼭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급식을 먹은 후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급식실 바로 옆인 도서관을 생각해낸 것이었습니다.
보건 선생님이 식사를 하러 가시면 문이 닫히는 보건실을 열어달라고 매일 식사 중인 보건 선생님을 찾으러 가기도 힘든 일이니까요. 2017년 1형 당뇨 학생이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호책이 마련되었지만 그 전만 하더라도 학교사회의 1형 당뇨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2017년 '어린이집, 각급 학교 내 소아 당뇨 어린이 보호책'을 발표하고 학교 안에 소아 당뇨 어린이가 안전하게 투약할 공간을 마련하도록 하였으나 약 1만 개의 학교 중 600여 학교는 투약 공간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상황입니다(2018년 교육문화관광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 자료).
만약 보호책 마련 당시 1형 당뇨 어린이가 안전하게 투약할 공간을 더 마련했더라면, 학교 안에서 주사 맞을 곳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었겠지요. 그랬다면 학생도 정식으로 투약 시간을 확보하고 보건실을 사용하겠노라 당당히 요청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1형 당뇨를 앓고 있는 학생에 대한 대책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꽤 오래도록 있어왔으나 이런 절박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은 왜 이렇게 더딜까요.
2017년 개정된 학교보건법에 따라 보건교사는 저혈당쇼크 등 생명이 위급한 '응급상황'에만 투약행위가 가능합니다(2017년 국정감사 이후 학교보건법이 개정되어 제1형 당뇨로 인한 저혈당 쇼크,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인해 생명이 위급한 학생에게는 투약 행위 등의 응급조치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매일 맞아야 하는 인슐린의 투약은 불가합니다).
학교는 그 외 투약으로 인해 발생할지 모르는 문제에 대한 책임소재를 우려하기 때문인지 학생 입장을 고려한 대책 마련에 미온적입니다. 교내에서 발생한 사고의 책임을 다투기 싫어 학교는 어떻게 해서든 문제를 학교 밖으로 내보내려 합니다. 교문 밖에서 발생한 문제는 학교가 책임질 의무도 없고 골치 아플 일도 없죠.
여전히 학교에서는 공부를 못하면 좋은 대학을 못 가고 취직도 못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제자가 사회에 나가 '비정규직밖에' 되기 힘든 세상이라는 걸 모릅니다. 이 세상은 점점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골치 아픈 문제는 모두 문밖으로 밀어내버린 채, 그렇게 학교는 가장 딱딱하게 굳어서 견고하게 도사리고 앉아 변화를 거부하며 한 치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승자를 골라내고 순서대로 줄 세우는 것이 주된 교육 방식이 되면서 우리 모두는 살아남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사회의 규칙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만들게 되죠. 학교사회 역시 늘 시스템 안에 있을 수 있어서 선 밖의 삶을 알 수 없거나,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여 성공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위치성은 선 밖에 있는 사람들을 '노력이 부족하다'거나 '나보다 열심히 하지 않는' 이들로 치부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학교는 처음부터 정해진 규정 안에서 행동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시스템 바깥에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를 쉽게 잊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의 날에는 '옆 친구가 장애인일 때 잘 도와줘야 한다'고 수업을 하면서 그 수업 공간에 있을 수도 있는 장애학생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방학식으로 학교가 일찍 끝나 모두가 귀가한 후에도 남아있어야 하는 학생의 처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미처 고려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추운 겨울날 복도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는 학생. 저는 먼저 발견하였을 뿐이지 누구라도 그 학생을 보았다면 따뜻한 곳으로 데리고 들어갔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혼자 도시락 먹을 곳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곳, 다양한 환경 속의 학생을 가장 먼저 고려하는 곳이 바로 학교가 되기는 어려운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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