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들의 심리 상태를 파헤쳐봤다

전종보 헬스조선 기자 2021. 4. 1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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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집착·조울 복합 작용.. "차단 후 법적 조치부터"
대다수 스토킹 범죄자들은 상대방을 물건처럼 소유하고 싶어 하는 등 강한 집착을 보인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노력 끝에 목표를 이룰 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러나 최근 이 속담은 스토킹 범죄자들의 집착, 망상 등 심리와 행동을 비유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실제 스토킹 범죄자들은 일정 부분 속담과 유사한 심리·행동을 보인다. 문제는 속담이 목표 달성을 위해 ‘꾸준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그들은 목표에 대한 잘못된 집착과 망상, 광기, 또 그로 인한 폭행, 살인 등 범죄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병적 집착 보이는 스토커… 망상으로 이어져 사실 왜곡

스토킹 범죄자들은 공통적으로 상대방에 대해 병적인 소유욕과 집착을 보인다. ‘병적’에 대한 명확한 의학적 기준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상대방을 물건처럼 소유하고 싶어 하고 이를 거부하는 상대방에게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줄 만큼 강하게 집착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 의사나 감정은 고려하지 않으며, 감정 표출이나 집착 모두 일방적이고 공격적·강제적·맹목적인 양상을 띤다. 실제 ‘노원구 세모녀 살인사건’의 범인 김태현(24) 역시 피해자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인해 피해자의 거부에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집주소를 알아내 찾아가는 등 강한 집착을 보였다.

이처럼 집착이 점점 강해지면 ‘망상장애’에 이른다. 망상장애는 현실에 대한 왜곡된 해석으로 잘못된 신념이 생긴 상태다. 상대방의 감정 또는 상대방과 관련된 인물에 대해 허황된 생각을 갖고 이를 사실로 여긴다. 상대방이 거절 의사를 표하면 이를 긍정적 메시지로 곡해하며, 상대방이 오히려 자신의 집착을 원한다고 착각하는 식이다. 때문에 상대방이 강력히 거절의사를 표현해도 스토킹을 멈추지 않고 집착하는 상황이 되풀이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실제 스토킹 범죄자들의 범행은 망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범죄심리학회 송병호 회장은 “집착이 항상 망상으로 이어지고 모든 스토커가 망상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스토킹 범죄 사례를 보면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망상을 갖고 있는 사례가 많다”며 “망상장애와 성격장애, 조울증, 조현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감정결핍에 의한 피해의식,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

스토킹 범죄자들에게 병적 집착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가해자들을 만나본 범죄 심리 전문가들은 가정, 또는 이성·교우관계 등에서 발생한 감정 결핍이 피해의식으로 이어지면서, 이를 잘못된 방법으로 보완·보상하려는 심리가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성격일 경우, 감정 결핍을 유발한 대상에게 정당한 방식으로 감정을 요구하거나 결핍된 감정을 해소하지 못해 범행을 일으키기도 한다. 송병호 회장은 “내성적 성향의 가해자들은 평소 감정 결핍에 의한 피해의식을 쌓아두다가 영화나 드라마, 뉴스 등을 통해 스토킹 범죄를 접한 후 비슷한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반드시 성격이 소극적이지 않아도, 무모하고 일방적이며 폭력적인 사람, 타인과 대화기술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이 같은 성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이유들이 스토킹 범죄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그들의 범행을 정당화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어떠한 원인에서든 스토킹은 명백한 범죄 행위다.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가해자들의 이 같은 집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하거나 들어줘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잘못 접근하고 이해해줄 경우, 오히려 망상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는 “스토커들은 정상 소통으로 설득이 어려운 상태”라며 “이해하고 도닥여주면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오히려 이를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이로 인해 시간이 지나 거절했을 때 반발이 더 세져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면 정확히 상황을 파악한 후 차단하고, 상식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초기부터 정확한 의사 표시와 함께 법적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체적 위협 있으면 늦어… 처벌·예방 함께 강화돼야

‘노원 세모녀 살인사건’ 이후 스토킹 범죄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특히 그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뿐 아니라, 실제 위협을 가하지 않더라도 스토킹 시도 또는 행위 자체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 예방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윤대현 교수는 “스토킹 피해자는 상당한 위협을 느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지만, 신체적으로 가해지는 위협이 없으면 법적인 처벌이 제한된다”며 “이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가해자를 처벌하고 수습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스토킹 피해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스토킹으로 인해 두려움과 우울증, 불면증, 트라우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많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가해자에 대한 관리·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에서는 이번 사건 이후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13일 국무회의를 열고 ‘스토킹 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 공포안을 심의·의결했으며, 법안을 통해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접근·따라다니기 ▲주거지·직장 등에서 기다리기 ▲연락·물건 보내기 등 불안감과 공포심을 야기하는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했다. 스토킹 범죄 가해자에게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이 내려지고, 흉기 등을 소지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형량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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