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의 골목길투어, 이렇게 알찬 여행이 있나

운민 2021. 4. 1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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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별곡] 수원 5편

[운민 기자]

[기사수정 : 6월 3일 오전 10시 33분]

화성행궁도 살펴보았으니 이제는 화성의 내부에 골목마다 깃들어 있는 이야기를 찾아 둘러볼 시간이다. 수원화성과 한양도성은 흡사 어린 조카와 삼촌뻘의 관계와 유사하다. 크기는 한양도성의 4분의 1정도 밖에 안 되지만 성 내부에 흐르는 하천이라던지(청계천과 수원천) 종로거리가 있고, 궁전이 있는 것까지 비슷하다.

서울의 종로가 지금의 광화문광장 부근인 육조거리에서 시작해 동대문(흥인지문)까지 이어지는 거리라면 수원의 종로는 장안문(북문)에서 팔달문(남문)까지 이어진다. 수원 화성이 축조된 이래 사람들로 늘 북적이던 거리였으며 경기 남부의 상업 중심지로 자리매김 한 곳이다.

수원 화성과 나란히 흐르는 수원천의 끝 부분에서는 오늘날까지 수원의 대형 시장인 남문, 지동, 영동 시장 등이 10개 넘게 몰려 있어 지금도 늘 사람들로 붐빈다. 한때 수원화성의 보존을 위해 문화재 개발제한 구역으로 묶여 상권이 침체되었지만 지금은 행궁동의 골목 구석구석이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 수원의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한 행리단길의 전경 화성행궁에서 오른쪽으로 담장을 끼고 걷다보면 소위 행리단길이라 불리는 장소가 나온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하여 카페, 작은 서점 등으로 탈바꿈한 거리는 이제 젊은이들이 대거 몰리는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 운민
 
행궁의 오른편 골목에는 오래된 주택들이 많이 몰려있었는데, 젊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낡은 주택의 내부를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하기 시작하면서 거리는 이색적인 카페나 음식점으로 가득한 곳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제는 그 거리를 '행리단길'이라고 사람들은 부른다. 행리단길은 역사적인 분위기만 감돌던 수원 화성을 젊은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찾게 하면서 수원 화성의 색깔을 좀 더 다채롭게 만들고 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서 잠시 여유와 사색의 시간을 즐겨도 좋고, 조그마한 서점을 방문해 독서의 향연을 마음껏 누려도 괜찮다.

행리단길의 오래된 건물들을 보고 있자면 이 건물에는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을지 궁금증이 일어난다. 소위 'O리단길'을 보고 있으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주민들이 살던 터전은 없어지고, 결국에는 프랜차이즈로만 도배되는 비극을 맞게 된다. 하지만 행리단길은 아직까지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행리단길은 아직도 구멍가게, 페인트 가게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상의 풍경을 잃지 않으면서 보행자가 걷기 좋은 환경을 세심하게 배려해 놓았다. 골목마다 벽화는 물론 다양한 조형물을 살펴보며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들고, 차가 다니는 도로와 인도 사이의 턱을 낮추고 높이를 비슷하게 만들어서 차가 다니지 않을 경우에 쉽게 차도조차 걷기 좋은 공간으로 조성한 것이다.

행리단길은 크게 3개 구역으로 나뉜다. 행궁에서 화서문까지 이어지는 화서문 옛길, 옛 신풍초등학교에서 장안문으로 가는 장안문 옛길, 마지막으로 근대화가 나혜석이 나고 자랐던 나혜석 옛길이 있다. 행궁동의 골목마다 많은 이야기와 볼거리를 담고 있다.
 
▲ 행리단길의 한옥보존지구 골목 행리단길에서 장안문 방면으로 걷다보면 한옥들이 대거 몰려있는 구역이 나타난다. 한옥보존지구 골목인데 수원의 전통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장안사랑채와 한옥기술전시관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몰려 있다.
ⓒ 운민
 
특히 화서문과 장안문 사이에는 한옥을 활용한 카페나 게스트 하우스들이 점점 생겨나는 추세인데, 수원화성 한옥 보존지역에 위치한 '장안 사랑채'는 2018년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예절교육, 전통문화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지만 한옥 건축물 자체가 아름다운 곳이므로 사진을 찍기에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또한 행궁동 복지센터 옆으로 가면 나혜석 생가터로 가는 골목길이 나오고 일제강점기 시절 여류화가로 명성을 날리던 나혜석 화가의 관련 작품들을 벽화로 만나볼 수 있다.

현재는 생가터에 비석만 남아있고, 확실한 고증을 하지 못해 기념관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대신 행궁광장의 수원 아이파크 미술관에 가면 그의 작품 몇 점이 상설전시되어 있다. 나혜석에 관한 이야기는 인계동 나혜석 거리를 소개하면서 자세히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수원화성 안쪽에는 행리단길 말고도 다양한 이야기와 볼거리가 숨겨져 있는 장소가 많다. 이번엔 행궁의 왼편 팔달문 방면으로 걸어가 보자. 

서울의 인사동 같은 느낌을 주면서 예쁜 소가구들을 파는 가게가 유독 많은 거리다. 바로 공방거리라 불리는 장소인데 예전에는 다소 칙칙한 느낌을 주는 낡은 상점들만 많았던 기억만 남아있었다.

현재는 예전의 오래된 느낌은 살리면서 간판도, 길도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화랑에 걸린 그림들, 품격이 있는 벼루와 붓 그리고 앙증맞은 공예품들을 보며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지름신의 욕구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공방거리에서 팔달문으로 이어지는 길 중간에 심상치 않아 보이는 건물 한 채가 눈에 띈다.
 
▲ 공방거리의 열린 문화공간인 후소 화성행궁의 왼편 팔달문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흡사 서울의 인사동 거리를 연상시킨다. 그 거리 중간에는 잘 가꾸어진 잔디밭과 부자집의 느낌이 팍팍 풍기는 2층 저택이 위치해있는데 현재는 열린 문화공간인 후소로 사용되고 있다.
ⓒ 운민
 
넓은 잔디밭을 가진 마당에는 소나무 여러 그루가 심어져 있었고, 2층 집의 양옥은 한눈에 봐도 꽤 높으신 분이 살고 계신 부잣집 같아 보였다. 보통 일반 가정집이라면 높은 담장이 쳐져 있을 텐데 그렇지 않을 걸로 보아하니 일반인에게 개방된 문화공간이란 느낌이 확 왔다. 그렇다. 이곳은 수원의 열린 문화공간인 후소다. 원래는 지역 유지인 수원 백병원 원장의 자택이었지만 그분이 사망하고 난 뒤 수원시에서 주택을 구입하여 현재는 모든 시민이 누릴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오랬만에 넓은 잔디밭과 잘 가꾸어진 정원을 보니 기분이 한층 업 되는 것 같았다. 1층과 2층으로 전시실이 나누어져 있는데, 1층에서는 분기마다 다양한 기획전시가 이루어진다. 2층에서는 수원 출신의 유명한 미술사가 오주석(한국의 미 특강,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저자)의 서재와 미술사 자료실을 구비해 놓았다. 
  
공방거리에는 골목 어디를 가던지 연륜이 만만치 않은 가게들과 한옥으로 만든 건물들이 더러 눈에 띈다. 문화공간 후소에서 멀지 않은 골목 어귀쯤에 오래된 한옥 한 채가 눈길을 끈다. 안내판을 천천히 읽어보니 여기가 1961년에 개봉된 신상옥 감독의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찍은 장소라고 한다. 원래는 일제강점기 시절 수원 지역을 대표하는 부자인 최익환의 소유였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고 설명문에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내부구조가 무척 궁금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 영화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를 촬영했었던 공방거리의 한옥건물 공방거리의 골목 이곳저곳을 갸웃거리면 연식이 제법되어 보이는 건물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영화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를 촬영했던 한옥건물이다.
ⓒ 운민
공방거리에는 골목 어디를 가든지 연륜이 만만치 않은 가게들과 한옥으로 만든 건물들이 눈에 띈다. 문화공간 후소에서 멀지 않은 골목 어귀쯤에 오래된 한옥 한 채가 눈길을 끈다. 안내판을 천천히 읽어보니 여기가 1961년에 개봉된 신상옥 감독의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찍은 장소라고 한다. 내부구조가 무척 궁금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나중에 안 사실인데, 사진 촬영이나 취재를 원하는 경우 주인이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니 필요한 사람은 문의해도 좋겠다).
골목을 나오면 곧바로 한데 우물이 보인다. 예전엔 상수도 시설이 따로 없어서 마을마다 공동 우물을 운영했을 터인데 이렇게 도심 한가운데 우물이 남아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화성안 골목, 거리마다 그 도시의 역사, 스토리가 녹아든 장소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다음에 다시 올 때 어떤 식으로 골목이 변할지 기대와 여운을 남기며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 수원 화성 중간을 크게 가르지르는 수원천변 거리 수원화성의 남수문에서 북수문(화흥문)을 가로지르는 수원천을 걷다보면 온갖 잔념이 사라진다. 길가에는 아름드리 버들나무가 심어져 있어 분위기가 좋다.
ⓒ 운민
 
미처 다 소개하진 못했지만 수원 화성 안에서 필자가 제일 추천하는 장소는 수원화성의 중간 부분을 가로지르는 수원천 냇가를 천천히 걸어보는 것이다. 화성의 남쪽 남수문에서 시작해 방화수류정이 있는 화흥문(북수문)까지 수원천이 이어진다. 혹자는 동네 하천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오래된 버들나무와 낮은 주택들이 어우러져 정다운 분위기가 감돈다. 변화가 유독 잦은 화성 주변의 동네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원천은 변함이 없이 흐른다.

아침부터 꽤 많은 명소를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프다. 중국 만두, 갈비 등 먹을 것이 다양하기로 유명한 수원이지만 외지인이 수원에 오면 한 번쯤 한 번씩 가보는 먹자 거리가 있다. 바로 팔달문 안쪽 수원천에서 올라가면 골목 내부에 10여 개의 통닭집이 몰려 있는 거리가 있다.

치킨은 호불호가 크게 없는 음식이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유독 수원 통닭거리에 있는 치킨들은 재래시장의 통닭 같은 친숙한 외관에 양도 푸짐하다. 통닭거리에서 장사가 잘 되는 가게는 용성통닭과 진미통닭의 투톱체제에 가마솥 통닭으로 유명한 매향통닭 정도가 유명했다.

최근에는 영화 <극한직업>에서 갈비 통닭이 크게 화제가 되면서 배경이 되었던 수원 통닭거리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남문 통닭이란 가게에서 영화에서 나왔던 왕갈비 통닭을 재현해 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가게로 몰리게 되었고, 이 가게는 갈비 통닭을 메인으로 걸어 넣고는 가게를 크게 확장함은 물론 프랜차이즈화를 시켜서 전국으로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용성, 진미 등 다른 통닭은 이전에 먹어봤으니 요즘 핫하다는 왕갈비 통닭을 포장해서 그 맛을 보았다.   

사람마다 입맛은 다 다를 테고 각종 리뷰에서 별로라 한 사람도 더러 있었다. 게다가 유명세 덕택인지 가격도 다른 가게에 비해 꽤나 비쌌다. 하지만 확실히 갈비소스 베이스라 맛은 있었다. 햄버거빵에 치킨과 샐러드를 같이 싸 먹는 방식도 상당히 독특했다. 수원 옛 도심에 담긴 골목들을 풍성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이제 수원성 한 바퀴를 돌 차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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