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국경세·유럽기후법..ESG하려면 꼭 챙겨야할 이슈는
삼일PwC·사회적가치연구원·매경이코노미 공동기획
생물이 자연계에서 다른 생명체나 환경과 상호의존하며 살아가는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를 생태계라고 한다. 생태계에서 한 생명체의 건강과 생존은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에 달렸다. 생명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체는 물론 무생물과도 긴밀한 상호관계를 맺고 영향력을 주고받아야 한다. 혼자만의 힘으로 나의 건강 상태나 생명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는 이유는 생명체의 존재는 이미 다른 생명체와 맺는 관계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흔히 ESG를 하나의 생태계에 비유하고는 한다. 기업과 개인뿐 아니라 기준을 만드는 표준화 기관과 데이터 제공 기관, 투자자, 정부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의 나이테를 하나씩 늘려가고 있다는 의미다. 결국 ESG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개별 구성원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수다.
▶진화하는 ESG 생태계
▷기업·개인·정부·기관의 상호작용
ESG 생태계에서 기업은 행동의 주체다. 과거의 기업이 이익 극대화만을 목적으로 했다면, 앞으로 기업은 경제적 가치와 더불어 ESG 기반의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새로운 경영 계획을 수립하고 변화를 모색한다. 기업의 핵심 역량을 ESG에 집중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사회적 자원을 재분배하기도 한다.
소비자인 개인과 투자자인 금융사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에 더욱 신경 쓰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환경 오염 물질을 무분별하게 배출하는 기업의 제품을 불매운동하거나 은행이 친환경 기업에 대한 대출 규모를 늘려주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블랙록자산운용이 모든 투자 결정에 ESG 지표를 판단 기준으로 반영하겠다고 밝히면서 얼마나 빠르게 ESG 경영이 확산됐는지를 보면 그 놀라운 파급력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 역시 법인세 감면과 같은 제도와 정책 수단을 통해 기업의 ESG 경영이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ISO(국제표준화기구)를 비롯해 GRI(글로벌 보고 이니셔티브), SASB(지속가능성 회계기준위원회), ICGN(국제기업지배구조네트워크) 등 글로벌 평가 기관도 ESG 생태계를 구성하는 한 축이다. 이들은 대부분 비영리 기관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국제 표준을 만들거나 공시 기준을 확립하는 등 기업이 ESG 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제시한다.
결국 ESG 생태계는 기업 혼자만의 노력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슬기 사회적가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ESG가 단기 유행에 그치지 않고 강화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지속 가능 경영은 또 한 번 진화하고 있다. 정보공개 글로벌 표준화를 위한 여러 기관들의 움직임이 분주하고, 환경뿐 아니라 사회와 거버넌스 분야 정책의 큰 틀도 대전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참여자들의 유기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ESG가 어떻게 기업 경영과 투자의 핵심 척도로 한 단계 더 나아갈지 관심 있게 지켜볼 때”라고 강조했다.
▷탄소국경세 도입 눈앞
ESG 경영을 제대로 하려면 글로벌 움직임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이 분석한 해외 동향은 크게 8가지다. 첫째, ESG 정보공개 표준화다. 서스테이널리스틱스(Sustainalytics)에 따르면 ESG 표준 제정 기관, 데이터 공급업체, 평가 기관이 600개가 넘는다. GRI, SASB 등 대표적인 정보공개 표준을 포함해 2021년 1월 기준 전 세계 374개나 된다. ESG 정보공개 표준화가 절실한 이유다. 2020년 1월 EU집행위원회는 비교 가능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비재무공시 표준을 개발해야 한다는 안건을 발표하기도 했다. 주목해야 할 기관은 IFRS(국제회계기준) 재단이다. 곧 지속가능성 기준위원회(SSB·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를 출범시키는데, 이곳에서의 표준이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를 듯 보인다.
둘째, 유럽기후법(European Climate Law)을 꿰뚫어야 한다. EU집행위원회는 2019년 12월 ‘유럽 그린 딜’을 발표하며, EU가 2050년 전 세계 최초로 탄소중립 대륙이 될 것임을 선포했다. 2020년 3월 법적 기반인 ‘유럽기후법’을 상정했고, 오는 6월까지 유럽의회와 이사회 최종 승인을 받으면 발효된다.
셋째, 탄소국경세 도입이다. 탄소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수입 상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 규제 격차에 따른 가격 차 보전을 위한 세금이다. EU는 2023년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겠다고 예고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탄소국경세 도입 추진 방침을 밝힌 바 있다. EU 입장에서는 탄소배출 감축으로 비용 부담이 커진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탄소국경세 도입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
넷째, EU택소노미(Taxonomy·녹색 분류 체계)를 이해해야 한다. 이는 친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기후 변화 리스크 완화 ▲기후변화 리스크 적응 수자원·해양생태계 보호 ▲자원순환경제로 전환 ▲오염 물질 방지·관리 ▲생물다양성·생태계 복원 등 6대 부문이 녹색으로 인정된다. 2022년 1월부터 공식 적용된다. 기후 변화에 관한 재무적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TCFD(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 의무화 움직임도 빨라졌다. 2020년 유엔책임투자원칙(UN PRI)은 TCFD 채택을 의무화했다.
다섯째, 플라스틱 규제는 더 심해질 것이다. EU는 지난해 순환경제 플랜 2.0을 세우고 35개 과제를 추진 중인데, 플라스틱 규제는 핵심 사안이다. 올해 첫날부터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포장재 폐기물에 대해 세금(1㎏당 0.8유로)을 도입했다. 플라스틱 제품은 한국의 대EU 5대 수출 품목(2019년 기준 21억4000만달러)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여섯째,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을 둘러싼 금융 프레임워크다. 탄소 발자국을 측정하고 이를 탄소회계에 반영하듯, 생물다양성 발자국을 측정하려는 시도가 자본 시장을 중심으로 활발히 벌어진다. MSCI ‘2021 ESG Trends to Watch’는 생물다양성을 ‘향후 기후 변화처럼 폭발적인 ESG 이슈’로 간주했다. 2021년 중국에서 15번째로 열리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 뜨겁게 논의될 전망이다.
일곱째, 스튜어드십과 주주 행동주의는 더욱 강화될 듯 보인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지난해 12월 기후 변화에 적극적이지 않은 기업 이사진 55명의 재선임 반대투표를 행사했다. 또한 탄소 집약적인 440개 기업 이사진 191명을 ‘와치 리스트(On Watch)’에 올렸다. 올해 기후 변화 관련 주주 관여활동(Engagement)을 1000개 이상 기업으로 확장한다.
‘이사회 다양성(Diversity)’에 관한 기관투자자 정보공개 요구도 강해졌다. 세계 3대 자산운용사인 SSGA(State Street Global Advisors)는 2021년부터 투자 대상 기업의 성별·인종 다양성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정책 문서를 공개했다.
마지막으로, ‘공급망 ESG’는 최근 뜨는 분야다. 2015년 영국에서 ‘현대판 노예제 방지법(Modern Slavery Act)’이 만들어진 이후, 2017년 ESG 평가 기관들은 공급망 내 인권 조사 항목을 추가했다. 2017년 글로벌 공급망 평가 기관인 에코바디스(EcoVadis)는 ‘공급망의 강제 노동과 인권지수’를 발표했다. 이어 2018년 대형 유통사 테스코와 타겟은 ‘CDP 공급망 이니셔티브’에 가입하는 등 공급망 인권 문제는 기업 평가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유엔책임투자원칙은 투자 과정에서 인권 항목을 포함하는 5개년 계획을 수립 중이다.
▷금융위원회도 정보공개 의무화
국내 동향도 8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금융위원회의 기업 ESG 정보공개 의무화를 주시해야 한다. 금융위는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와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가 대상이었던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는 2022년부터 1조원 이상, 2026년부터 전체 코스피 상장사로 공개 범위가 확대된다. 환경·사회 정보를 담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도 의무화된다. 매년 100여개 기업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해왔지만, 거래소에 보고서를 공개하는 기업은 20개에 불과했다. 이에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부터 의무적으로 ESG 정보를 공개한다. 2030년 이후 전체 코스피 상장사로 범위가 넓어진다.
둘째, ESG 채권 발행은 이제 유행이 아니라 기본이 됐다. 녹색채권(Green Bond), 사회적채권(Social Bond), 이 둘의 성격을 합친 지속가능채권(Sustainability Bond) 등 특수목적 발행 채권 증가율이 심상치 않다. 전 세계적으로도 성장세가 가파르다.
국내 ESG 채권은 2019년을 기점으로 급증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원화 ESG 채권 발행액은 2018년 9500억원에서 2019년 27조3300억원으로 크게 불어났다. 2020년 11월 기준 ESG 채권 발행액은 51조원에 달했다. 블룸버그 집계 결과, 2020년 8월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발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가별 규모로 따지면 미국, 프랑스, 독일에 이어 4위였다.
셋째, 올해 2015년 도입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의 3기 시즌이 시작된다. 배출권거래제란 각 기업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정해 놓은 뒤 실제 배출량이 이보다 적거나 많을 경우, 그 여분이나 부족분을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3기 시행으로 배출권을 유상으로 구매해야 하는 업종과 배출권 수량이 늘었다.
넷째, 2050년 탄소중립선언이다.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추진 전략으로 ▲경제구조의 저탄소화 ▲신(新)유망 저탄소 산업 생태계 조성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 전환 등 3가지 축을 중심으로 10대 과제를 선정했다. 산업부는 기업 신재생에너지 도입을 위한 ‘한국형 RE100 캠페인’과 석탄화력 발전 30기 폐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20% 확대 등을 담은 제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마무리 지었다.
다섯째, 금융권의 탈석탄 선언이 이어진다. ESG 투자 방법 중 한 가지인 네거티브 스크리닝(Negative Screening), 그중에서도 석탄 투자 배제가 활발하다. 탈석탄 금융 포문을 연 것은 2018년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연기금이다. 이후 DB손해보험, 교직원공제회, 지방행정공제회 등이 연이어 대열에 참가했다. 민간 금융사로는 KB금융이 최초로 석탄 배제를 선언했다.
비금융권의 탈석탄 선언도 이어졌다. 한국전력은 비금융사 최초로 탈석탄에 나섰다. 한전은 베트남 붕앙2 석탄화력 발전 사업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국내외 환경단체와 글로벌 투자가들에게 비판받은 바 있다.
여섯째, 환경부의 ‘K택소노미’도 꼭 챙겨야 할 이슈다. 저탄소경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녹색채권 발행이 필수적이다. 녹색채권 활성화의 첫 시작은 ‘택소노미’다. 녹색 산업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어떤 경제활동이 해당하는지 가리는 작업이다. 환경부는 2021년 상반기까지 녹색 경제활동 판단 기준이 되는 택소노미를 마련한다. 2020년 12월 ‘한국형 녹색채권 안내서’에 대략적인 내용이 공개됐다.
일곱째, 여성 이사 할당제다. OECD 29개 회원국 중 8년 연속 유리천장지수 꼴찌를 기록한 한국이 이 같은 오명을 벗기 위해 여성 임원 할당제를 의무화했다. 2019년 2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여성 임원 할당제’ 조항이 신설됐다. 개정안은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으로 구성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삽입했다. 이에 따라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 기업은 늦어도 2022년 7월부터 이사회에 최소 1명 이상의 여성 등기 임원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개정을 눈여겨봐야 한다. 기관투자자가 타인의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의결권 행사 등을 통해 기업 의사 결정에 개입하는 제도다. 국내에서는 2016년 12월 처음 도입됐다. 금융위는 2021년 1월 “스튜어드십 코드 시행 성과를 평가하고, ESG 관련 수탁자 책임 강화 등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뷰 |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장
ESG 연구 선도 기관으로 거듭날 것
A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사회문제 해결 방안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단순 연구에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역할도 한다. 경제적 가치보다는 사회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고민한다. 기존에 없던 개념을 연구하다 보니 내부에서도 “지금까지는 이런 연구원은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연구 주제의 양대 핵심 축은 ‘측정’과 ‘인센티브’다. 우선 사회적 가치를 ‘측정’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무형적 가치를 보이게 만드는 데 힘을 쏟는다. 이어 많은 기업이나 경제 주체들이 사회문제 해결에 진력할 수 있도록 하는 ‘인센티브 구조’가 무엇인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Q.ESG 관련 기본 내용을 담은 핸드북을 내놨다. 어떤 내용을 핵심으로 담았는지, 왜 만들게 됐는지 궁금하다.
A ESG 열풍이 한창 불고 있지만 국내 기업의 ESG에 대한 이해도는 피상적이고, 수세적인 접근법에 그친다. 이에 연구원으로서의 ESG 혹은 사회적 가치의 창달과 확산에 도움이 될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ESG의 진정한 의미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큰 트렌드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연구를 거쳐 ‘ESG 핸드북’을 만들었다. 핸드북에는 ESG 생태계를 구성하는 주요 기관과 글로벌 이니셔티브들의 형성 과정, 올해 ESG 동향, ESG 필수용어 등을 선별해 담았다.
Q.ESG 경영으로 유명했던 프랑스 식품 기업 ‘다농’의 CEO가 실적 부진 책임을 안고 물러났다.
A 유념해야 할 점이다. ESG 경영도 결국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다. 회사 실적과 사회적 성과와의 균형이 담보되지 않고서는 ESG 경영의 성공을 장담하기는 힘들다.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성과와의 균형감을 이뤄가는 감각이 CEO에게 필요하다.
다농의 경우는 CEO였던 파베르 경영 방식이 양자 균형을 주장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와의 갈등을 야기한 게 해임의 주요 원인이었다. 블루벨캐피털(Bluebell Capital) 측은 파베르 CEO의 ESG 경영 자체를 비판하지 않았다. 다만, 인식 개선은 필요하다. ESG 경영은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중장기 경영 전략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Q.앞으로 사회적가치연구원의 목표가 궁금하다.
A 눈 위에 길을 만드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눈이 녹기를 기다리는 것과 눈을 밟아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 연구원은 사회적가치라는 알려지지 않은 새하얀 눈길을 뚜벅뚜벅 밟아 길을 만들어왔다고 자부한다. ESG도 아직까지는 제대로 길이 만들어져 있지는 않다. 사회적 가치, ESG에 대해 누구보다 선도적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연구원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명순영·류지민·반진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4호 (2021.04.14~2021.04.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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