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사 곧 없어집니다.. 암호화폐 사기극 공범, 언론

류승연 2021. 4. 1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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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코인 사기 ②] 홍보기사 내보내고 문제되면 삭제하고 나몰라라

비트코인 가격이 연일 들썩이면서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투자 열풍이 거세지는 만큼 대박을 꿈꾸는 투자자를 노리는 사기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 실태를 세 차례에 걸처 조명해 봅니다. <편집자말>

[류승연 기자]

  
 일부 인터넷 언론사들이 다단계 업체의 홍보 기사를 써준 뒤, 해당 업체에 문제가 생기면 기사를 삭제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 구글 화면 캡처
 
40대 박수영(가명)씨는 지난해 11월 인터넷을 검색하다 한 인터넷 언론사 기사를 보고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와이즐링(Wiseling)'이라는 이름의 핀란드 금융투자회사에 투자하라는 권유를 받은 뒤였다.

지인을 통해 듣게 된 와이즐링의 투자 수익률은 믿기 힘든 정도였다. 투자 원금에 대한 '하루 치' 수익율은 2~2.7%. 하루 만에 시중 은행 1년치 이자를 벌어들일 수 있는 셈이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를 사서 100일간 전자지갑에 넣어두는 게 계약 조건의 전부였다. 심지어 지인들에게 추천하면 수익률은 더 올라갔다. 지인은 "와이즐링은 한 국제 보험사에 5억달러어치의 보험도 가입해뒀기 때문에 원금까지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었던 박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에 회사명을 검색해봤다. 포털사이트 뉴스 페이지에는 "한국 와이즐링 협회, 독자적인 시스템 활용해 단점 보완"이라는 제목의 기사 몇 개가 올라 있었다. '언론사에서 다룰 정도면 괜찮은 업체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든 박씨는 결심을 굳히고 투자를 시작했다.

그때는 떡하니 기사가 있었건만

하지만 현재 해당 기사는 삭제된 상태다. 지난 2월 와이즐링이 각종 이유를 들어 계좌 출금을 제한하다 하루아침에 유튜브와 SNS 등 모든 소통채널을 닫고 잠적했기 때문이다. 와이즐링이 '스캠'(Scam, 사기)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관련 기사도 종적을 감췄다. 하지만 구글 검색을 통해 기사가 있던 흔적은 확인할 수 있었다.

박씨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매체명을 들어본 적 없는 언론사였지만, 최소한의 검증을 마쳤으리라 하는 믿음이 있었는데 너무 황당하다"고 말했다. 

와이즐링 관련 홍보 기사를 내보냈던 언론사는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다. 이 언론사 관계자에게 홍보 기사를 내게 된 경위에 대해 묻자 "우리가 왜 그 이야기를 해야 하냐, 모르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최근 암호화폐를 앞세운 신종 다단계 코인 사기가 극성을 부리는 가운데, 일부 언론사들이 이렇다 할 검증 없이 이들 회사에 대한 기사를 내주면서 사기 피해를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다단계 업체들이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인터넷 언론사에 기사를 내고, 이를 피해자들에게 다시 공유해 투자금을 유치하면서 피해 규모를 키우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12월 한 인터넷 언론사는 '퓨처넷, 수익 공유 플랫폼을 기반으로 혁신적 경영 방식과 안정적인 수익 구조로 눈길 끌어'라는 제목의 홍보성 기사를 게재했다. 경찰은 지난 2019년 퓨처넷의 다단계 사기 의혹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다.
ⓒ 금융 사기 피해자 포털사이트 카페 화면 캡처
 
일부 언론들의 검증 없는 홍보성 기사 게재는 과거에도 문제였다. 지난 2016년 국내에서만 200억원대 피해를 낳은 다단계 업체 '퓨처넷'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퓨처넷은 지난 2012년 설립된 폴란드 온라인 업체다. 퓨처넷 관계자들은 '퓨처 애드프로'라는 자체 프로그램 내 계좌에 가상화폐를 넣어두고 이 가상화폐로 광고팩이라는 상품을 구입하면, 광고를 보기만 해도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현혹했다. 하지만 지인을 끌어들여야 하는 다단계 구조로 피라미드 사기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경찰은 지난 2019년 2월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 2개월 전까지만 해도 퓨처넷을 홍보하는 기사들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18년 12월, 한 인터넷 언론사는 '퓨처넷, 수익 공유 플랫폼을 기반으로 혁신적 경영 방식과 안정적인 수익 구조로 눈길 끌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또다른 언론사 역시 '수익 공유 플랫폼 기반 퓨처넷, 혁신적 경영방식 & 안정적 수익구조로 눈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내용은 조사 하나 빼놓지 않고 동일했다.

다단계 업체는 이렇게 나간 기사들을 피해자들이 모인 단체 카카오톡방에 공유하며 추가 투자금을 모집하는 홍보 수단으로 사용했다. 

부모님이 다단계 업체로 보이는 V모 암호화폐 거래소에 투자금을 넣었다고 토로한 20대 유정훈(가명)씨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다단계 업체 관계자들은 기사를 공유하며 투자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업체'라는 인상을 쌓으려고 했다"라며 "하지만 언론사들은 사기 업체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 기사를 삭제해 흔적을 지우고 책임을 회피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일부 언론들의 행태를 제어할 마땅한 수단이 없는 것도 문제다. 때문에 비윤리적인 보도를 일삼는 언론들을 규제할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언론의 자유와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국내 인터넷 신문은 허가제 아닌 등록제"라며 "하지만 이와 동시에 돈을 받고 다단계 업체 관련 기사를 내주는 등 유사언론들의 비윤리적이고 위법적인 행태들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도 신문법(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상 언론사에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언론사 등록을 취소하기는 쉽지 않다"며 "이런 유사언론을 퇴출하거나 규제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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