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후계동 사람들

2021. 4. 15.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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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동엔 삼형제가 있다.

후계동 사람들은 세상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빗겨 서 있지만 행복하다.

후계동과 그곳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투영된 것 같다.

배고픈 아이들에게 치킨을 선물하고 택배 기사를 위해 문고리에 음료수를 달아놓으며 생존자를 찾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는 곳, 우리가 사는 이곳이 후계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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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영 문화스포츠레저부장


후계동엔 삼형제가 있다. 아내와 별거 중인 신용불량자 첫째와 실패한 영화감독인 노총각 셋째는 홀어머니와 함께 낡은 아파트에 산다. 대기업에 다니며 번듯한 아파트에 따로 사는 둘째의 가정은 위기다. 빚 독촉에 시달리며 언어장애 할머니를 홀로 돌보는, 둘째 회사의 파견직 스물한 살 여자도 있다. 축구보다 음주를 더 좋아하는 조기축구회 회원들, 손님과 주인이 따로 없는 동네 술집 주인, 실패의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무명 배우도 산다. 후계동 사람들은 세상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빗겨 서 있지만 행복하다. 돈에 치이고 권력에 밟혀도 서로 보듬고 손잡아주며 일어선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역주행 중인 드라마 ‘나의 아저씨’ 이야기다. 2018년 방영된 16부작 드라마인데 지난겨울에야 정주행했다. 연작 드라마를 1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다 본 것은 처음이었다. ‘띵작’ ‘인생작’이라 부르는 데 100% 공감했다.

초반부는 불편했다.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 칙칙하고 음침한 이야기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힘들게 했다. 드라마의 진가는 회차가 거듭되면서 드러났다. 돈과 권력이 위세를 부리는 냉혹한 현실 속에 있지만 가슴은 따뜻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가진 자,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위로하는 이분법은 없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이 외로움과 불쌍함을 면제해주진 않는다. 각자 상처와 아픔을 안고 있지만 서로 돕고 위로하며 치유 받는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이 드라마를 완주하고 극찬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그는 지난해 10월 트위터에 “16화까지 못 볼 줄 알았는데, 인간의 심리를 완벽히 묘사한 작품이다. 엄청난 각본, 환상적인 연출, 최고의 출연진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썼다. 그만 그런 게 아니다. 이 드라마를 본 세계 각국의 시청자들이 한국인과 같은 대목에서 아파하고 기뻐하며 공감하는 리뷰를 남겼다.

‘나의 아저씨’의 배경인 후계동은 가상의 공간이지만, 어딘가 꼭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서울 용산역 인근 백빈건널목, 서소문아파트, 회현동 남산육교 같은 촬영 장소엔 후계동의 냄새라도 맡고 싶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후계동과 그곳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투영된 것 같다.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통념을 버렸다. ‘나의 아저씨’는 드라마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니다. 배고픈 아이들에게 치킨을 선물하고 택배 기사를 위해 문고리에 음료수를 달아놓으며 생존자를 찾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는 곳, 우리가 사는 이곳이 후계동이다. 우리가 매일 만나고 지나치는 이들이 후계동 사람들이다.

‘나의 아저씨’는 줄여서 ‘나저씨’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사람, ‘나저씨’를 아는 사람을 만나면 동질감을 느낀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도 품는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 돈과 권력에 취한 사람들은 이 드라마의 따뜻함이 불편할 것이고 그래서 끝까지 보지 못할 것이라는 짐작이 있어서다.

‘따뜻함 결핍’에 빠진 정치인과 관료, 부자들이 이 드라마를 봤으면 좋겠다. 손톱만큼의 권력이라도 쥐면 힘없는 이를 밟고 싶어 하는 사람들, 말과 글로 죄를 짓는 악플러들도 보길 권한다. 그들도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던 적이 한 번은 있었을 것이다. 인내심을 갖고 정주행한다면, 극중 지안(아이유)의 대사처럼 “내가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준 사람”인가 자문해보길 바란다.

고단한 세상, 외롭고 지친 이들을 위로해 준 ‘나의 아저씨’ 작가와 감독, 배우, 스태프들도 후계동 사람들처럼 행복하길 빈다.

송세영 문화스포츠레저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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